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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사 경험담 (17)

변호사 · l*********
작성일02.17 조회수1,099 댓글33

이어서 쓰는 글입니다.
https://www.teamblind.com/kr/post/T7LPgYg6

처음 글을 올린 것이 재작년 12월인데, 그로부터 1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댓글이 달리고 이따금 대화를 신청해서 질문 주시는 분들도 있다. 아마도 블라인드에서 “결정사 경험담”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내 글들이 주루룩 나와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그동안 해 준 상담(?) 내용 중 크게 도움이 되었다는 말을 들은 것들을 곰곰이 씹어보면, 주로 ‘돌싱남’의 성향과 관련된 것들인 것 같다. 아무래도 연애나 결혼을 다룬 글이나 책들 거의 전부가 암묵적으로 젊은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와 관련된 내용 위주로 정리해 보겠다.

다만, 내가 남성이다보니 남성의 성향에 대한 분석 위주라는 점은 감안하시길.

1. 변하는 것

여성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 주변의 돌싱남들을 보면 이혼 기간이 길수록 재혼 의사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혼자 살아 보니 의외로 편하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나를 포함해서, 내 주변의 돌싱남들이 한결같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식사는 물론이고, 세탁조차도 앱으로 가능한 시대이니 말이다.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는 설문 조사 결과가 있다. 이상적인 배우자상과 관련하여, 재혼 남성들은 초혼 때에 비해 상대방의 성품을 더 중요한 요소로 여긴다는 점이다(한국경제 2011. 11. 9. 기사).
https://www.hankyung.com/article/2011110998047

여기서 ‘성품’이라는 단어는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성품’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성질이나 됨됨이’인데, 무슨 신입사원을 뽑는 것이 아닌 이상 위 설문조사에서의 ‘성품’을 사전적 의미의 성품, 즉 객관적 의미의 ‘인격’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여기서의 ‘성품’은 주관적인 의미의 인격, 아주 쉽게 말해서 ‘내가 느끼는 편안함’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 직업상 내 주변의 돌싱남들은 이혼 전에 한 번 쯤은 나와 상담을 거쳤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이혼 전에 갈등이 심했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런 변화를 보인다. 그에 비해 나처럼 매우 원만하고 조용하게 이혼을 한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재혼 상대의 ‘성품’에 대한 걱정을 덜 하는 것 같다.

2. 변하지 않는 것

확실히, 돌싱남들이 ‘편안함’에 두는 가치가 초혼에 비해 커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걸 너무 확대해석하면 안 된다. 지금 당신 앞에 앉은 남성, 즉 결정사를 통하거나 지인의 소개를 받아서 만나게 된 남성이 원하는 것은 ‘연인’ 또는 ‘배우자’이지 ‘친구’가 아니다. 이 점은 원만하게 이혼한 경우는 물론이고, 격심한 갈등을 거쳐 이혼을 한 경우이건 마찬가지이다. 애초에 ‘친구’를 원하는 남자라면 결정사에 가입할 이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흔히들 ‘나이를 먹어도 여자는 여자다’라고 하는데, 이 말은 분명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이를 먹은 남자가 여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나이를 먹으면서 급격하게 중성화가 되는 남자들도 있다. 그런데 그런 남성이라면 애초에 여성을 사귈 의욕 자체가 별로 없기 때문에 결정사에 가입할 이유도 별로 없다. 반대로, 이혼 후에도 결정사나 지인을 통해 이성을 소개받는 것에 적극적이라면 그 남성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또래에 비해서는 더 남성적인 경향이 강하게 남아 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3. 적극적이기를 기대하면 안 된다.

꽤 많은 질문을 받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요컨대, 남자가 먼저 연락을 한다거나 하지 않는데, 자신에게 관심이 적은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정말로 관심이 없어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해도 좋다.

다른 글에서도 썼지만,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더불어 사회적 성취를 이룬 남성의 경우에는 이성을 대하는 태도도 어렸을 때와는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 이유 중 중요한 점 두 가지만 짚자면, 첫째는 일단 극단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스스로 시간 부족을 느끼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방의 시간을 잡아 먹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둘째는, 사람, 특히 이성에 대한 신중한 태도가 몸에 배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미 투’ 문제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데이트 약속이나 스킨십에 소극적인 남성이라고 해서 바로 ‘이 남자는 나에게 관심이 없나?’하고 지레 포기하기 보다는 어렸을 때에 비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 보기 바란다. 그래도 반응이 없다면 그 때 포기해도 늦지 않다.

4. 밀당 보다는 기브 앤 테이크

앞서 말한 ‘소극적인 경향’에서 비롯된 것 중에 하나가 ‘밀당’을 잘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다. 어렸을 때는 여성이 조금 튕겨도 남성 쪽에서 애가 닳아서 대쉬를 하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그렇지 않다. ‘이 여자가 나를 싫어하나?’하고 지레 포기하기 일쑤이고, 심하면 ‘피곤한 여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대신에 기브 앤 테이크 성향은 더 강해진다. 특히 사회적으로 성취를 이룬 남성들의 경우 ‘세상에 공짜란 없다’라는 개념이 투철하게 장착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작은 호의라도 받으면 그에 대해 자신도 그에 상응하는 호의를 표시하려 할 것이다.

물론 세상에는 호의를 받고도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상대방의 호의를 호의로 해석하는 것에 둔감한 남성도 있다. 그런 남성이라면 그냥 안 만나면 그만이지, 밀당은 방법이 될 수 없는 것이다.

5. 정리에 관하여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고 했다. 사귀다 보면 이별을 결심해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어떻게 헤어지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도 이따금 받는다.

처음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에는 나도 오해해서 ‘혹시 남자분이 스토킹이라도 할까봐 그러세요?’라고 묻기도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제는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대충 눈치를 챈다. 남자가 나빠서, 혹은 싫어서 헤어지는 경우에는 애초에 이런 질문도 안 한다. 보통은 ‘이 남자 뭔가 아쉬운데 다른 남자도 만나 볼까?’라는 마음이 들 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다. 요컨대 다시 돌아 올지도 모르는 것을 감안해서 어떻게든 좋은 관계를 유지한 상태에서 헤어지고 싶어서 혹시 그런 방법이 있는지 묻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쉽지만, 만병통치약 같은 해법은 없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접근하는 수 밖에 없다. 대체로는 잠수이별보다는 차라리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이나 만남 회수를 줄이면서 서서히 헤어지는 편이 더 무난하다. 절대로 피해야 할 최악의 방법은 상대방의 단점을 지적하며 이별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진짜로 두번 다시 보지 않을 생각으로 이별을 통고하는 것이라면 상관 없겠지만, 그게 아니고 돌아 올 생각이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경우라면 이 방법은 절대 피해야 한다. 퇴로를 스스로 끊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내 경험으로 말하자면... 흐지부지 연락이 줄어들어서 헤어진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아예 ‘집에서 다른 남자를 소개해서 만나야 해요’라고 해서 헤어진 경우도 한 번 있었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음에도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기 불편해서 만남이 지속되고 있었던 경우에는 그렇게 흐지부지 되는게 솔직히 편했다.

물론, 정말 괜찮은 여성분의 경우에는 -심지어는 잠수이별을 당했을 때 조차도- ‘내가 좀 더 잘 할 걸’하는 후회가 들었고 마음이 아플 수 밖에 없다. 그러다가 드물게 다시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저 반가울 뿐이지 냉정하게 대한 적은 없었다. 다시 연락이 온 이유가 다시 만나자는 것이 아니라 법률상담이 필요해서인 경우도 있었지만(이건 돌아온 것이 아니라고 해야 할지도...) 그래도 반가운 마음은 다르지 않았다.

요컨대, 사람의 일은 모르는 것이니 헤어질 때도 굳이 원수를 만들 필요는 없는 것이다.

#결정사 #결정사경험담 #돌싱 #재혼

댓글 33

공무원 · 公**

오랜만이라 반갑네요. 종종 또 놀러와서 글 써주세요.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변호사 · l********* 작성자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익명으로 쓰는 일상잡기에 불과한 글이지만, 이런 따뜻한 응원을 주시는 분이 계셔서 저도 글을 쓰는 시간이 조금도 아깝지 않네요.

공무원 · d****

변호사님이 느꼈을 정말 괜찮은 여자분이 어떤 분이실지 궁금하네요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였으면 좋겠어요

변호사 · l********* 작성자

제 다른 글들을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위에서 쓴 "괜찮은 여성분"은 "객관적으로 조건이 좋은 분"이 아니고 "주관적으로 나와 맞는 분"을 의미합니다.

어떤 분들에게서 그런 감정을 느꼈느냐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꺼번에 몰아서 쓸 생각입니다만,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 계기는 정말 다양하죠.

그 다양한 요소 중에서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행동을 기대 이상으로 즐겁게 받아들이는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NAVER · l********

글쓰신 분의 디테일에 감탄하며 읽다보니
1번부터 17번까지 정독하게 되었습니다. :)

평생 연애만하거나 동거만 하는 것보다는
법률혼을 더 염두에 두고 계시니 결정사에 가입하셨을 것 같은데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변호사들은 재혼을 비추하는 경우가 많아서 .. 더 궁금하기도 합니다.)

변호사 · l********* 작성자

안녕하세요, 글에 대한 좋은 평가 감사합니다.

결정사 가입 계기를 물으셨는데, 이것만으로도 글 한 꼭지 거리라서 다음에 좀 상세히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NAVER · l********

바쁘실텐데 글 남겨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시간나실 때 천천히 남겨주셔요. :)

중앙대학교병원 · _********

우와 재밌어요!

변호사 · l********* 작성자

감사합니다!

중앙대학교병원 · _********

그래서 혹시 지금은 좋은분 만나셨나요!

변호사 · l********* 작성자

반쯤 포기한 상태입니다. ㅋ

비브라운코리아 · 바*****

연재글 다 읽고 있어요.
이 주제에 대한 연재가 끝나더라도 다른 주제로 글 많이 써주세요.! 너무 재밌게 읽고 있거든요. 🤓

새회사 · I********

어릴 때는 흐지부지 연락 줄여가며 헤어지는 것에 대해 좋지 못하게 생각했는데… 생각이 달라지네요. 굳이 원수를 만들 이유는 없다. 되새기고 갑니다..

변호사 · l********* 작성자

세상은 생각보다 좁더군요. 다시 마주칠 일이 없을 것 같던 분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간에서 마주치는 일이 이따금 생기니까요. 그런 점에서라도 굳이 적을 만들 이유는 없겠지요^^

의사 · 옹*****

와 연재글 넘 재밌네요

변호사 · l********* 작성자

재미있다는 평이 제일 기쁩니다.

KIS채권평가 · !*******

글이 재밌네요 순식간에 읽었어요
다만 원하시는 분들을 이용하시는 풀링에서 찾는건
사막에서 북극곰찾는꼴이지 않았나 싶네요

돌싱녀+아이있는 비양육
소득,재산 중하
급하지않고 천천히 사람을 알아가며 결혼
직업 있어야하나 전문직×

애초에 저런조건은 노블보단 듀오나 가연같은데 많을거같아요
소득, 재산이 중하인데 노블계열에 돈쓴다는건 그만큼 결혼을 통한 경제적안정이 절실한 분들일텐데 그분들이 안급할까요

이제 노블에서 연락도 안온다고 하시니 듀오나 가연도 이용하셔서 이용후기썰 부탁드립니다

변호사 · l********* 작성자

적절한 분석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말씀입니다. 이제 와서 다시 결정사에 가입한 그 날로 되돌아간다면 듀오나 가연으로 가는 편이 더 적절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결정사에서는 사람을 소개받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네요. 이유는 제 다음 글(18번째 글)에서 언급한 'Sudden Death' 때문입니다.

오해가 없도록 조금 부연하자면, 결정사를 통한 결혼은 객관적 '조건'을 중시하는 사람에게는 적절한 방법이지만, 저처럼 조건보다는 주관적 '경험'을 중시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불리한 방법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 i*********

글을 깔끔하고 설득력 있게 잘 쓰셔서
1편부터 17편까지 쭉 읽었습니다.
댓글도 다 읽었다는 거~ (^-^)v
그만큼 쓰니님 글이
시간을 들여 읽을 가치가 있는 유익한 글이었어요.
두고두고 깊게 생각해 볼 것들도 있었구요.
(이 글 우연히 보고 정독한 나 칭찬해ㅋ)

저는 댓글 하나 쓰는데도 고민하며 쓰는 편이라
쓰니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절한 자료들을 찾아서 적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공을 많이 들이신 게 느껴져
덕분에 좋은 글 잘 읽었다고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어 댓글 남깁니다.

앞으로 쓰실 글도 기대하며 기다리겠습니다.
후속 글 쓰시면 댓글 남겨주세요!

소소한 행복 속에 웃는 날들이 많으시길 바랍니다.
좋은 분도 꼭 만나시길 바라요 :)

변호사 · l********* 작성자

정성 가득 담긴 댓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특히, '시간을 투자하고 공을 많이 들인 글'이라고 평가해 주신 것에 대해서는 더욱 더 감사한 마음을 느낍니다.

사실 1년 넘게 결정사에서 연락이 없어서 더이상 '결정사 경험담'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이상 글을 쓰지 않았는데, 꼭 '경험담'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의미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솟네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댓글 다신 분께도 좋은 날들이 많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공무원 · 노*****

변호사님, 팬층도 생겼으니
결정사 이야기보다 인생의 중대사인 결혼생활이나 이혼관련 경험담이나 느낀점을 주제로 글 부탁드립니다!

공감할 수 있는 글 쓰시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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