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픽 썸·연애

결정사 경험담 (6)

변호사 · l*********
작성일2022.12.24. 조회수2,412 댓글15

이어서 쓰는 글입니다.
https://www.teamblind.com/kr/post/HrWf8nVQ

이번에는 결정사 또는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분들과의 만남의 전개 과정에 대해서 쓸 생각임.

읽기 전 주의사항
1.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임. 특히 "결정사 경험담 (1)"에 적은 나의 성향을 전제로 한 것임
2. 의도적으로 사실과 다르게 적은 부분이 있을 수 있음. 만난 분들의 사생활은 소중하니까.
3.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표현이 나옴. 역시나 고민되는 부분이고, 가능하면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만 쓰고 싶지만, 그러면 별로 와 닿는 글이 될 수 없어서 부득이 썼으니 양해 바람. 나 이상한 사람 아님.

여기에 추가해서,
4. 이번 글에는 19금스러운 내용도 나옴. 물론 최대한 예의와 품위를 유지해서 쓸 것이고, 그러다보니 다른 글에 비해 조금 더 완곡하게 쓸 수 밖에 없으니, 행간을 읽으시기 바람

5. 쓰다가 삘 받아서 뜬금없이 진지하게 쓴 부분(4. 썸이란?)도 있음. 읽기 귀찮으면 건너뛰어도 무방함

본론 들어갑니다.

0. 프로필 전달
내가 가입한 결정사의 경우, 매칭 매니저가 카톡으로 여성분의 프로필을 전달한다. 연령, 직업, 연봉, 자산, 가족관계, 주소( '동'까지만 기재), 신장, 종교, 취미, 학력, 혼인 이력(초혼, 이혼 또는 사별인지 여부, 가끔 '사실혼'이라고 쓰여 있는 경우도 있음), 자녀사항(연령, 누가 양육하는지) 등이 기재되어 있고, 사진도 보내줌

이런 프로필을 보통 1~2개 씩 보내주는데, 한꺼번에 3~4개씩 줄 때도 있음
그러면 보통 그날 중으로 만날지 여부를 결정해서 알려줘야 함.

이 때 거절하는 경우, '죄송한데, 저하고는 맞지 않을 것 같네요'라는 식으로 완곡하게 거절하곤 하는데, 보통은 쿨하게 다음 프로필을 주는데 이따금 '직접 만나 보시면 분명 마음에 드실 거에요'라며 푸쉬가 들어올 때도 있음.

나에게 응할지 여부를 정하고 OK가 나면 여성 쪽에도 물어보겠다고 함. 그런데 실제로 나에게 먼저 OK 여부를 물어보고 나서 여성 쪽에 물어보는 것인지는 순서가 약간 의심스럽기는 함.

여성 쪽이 OK를 하면, 매칭매니저가 양 쪽에 문자를 보내서 만날 날짜와 시간을 정함.

1. 첫 만남의 모습

보통은 두 사람의 주소 또는 직장의 중간 쯤 되는 장소를 결정사에서 섭외해서 알려주는데, 다른 업체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업체의 경우에는 첫 만남은 예외 없이 카페였음.

보통 카페에서 어색하게 인사하고 얘기를 나누다 오는데, 나는 너무 가벼운 주제로만 얘기하지 않고 상대방의 학부 전공이나 현재의 직업과 관련된 소재도 미리 준비해서 화제로 올리곤 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한 10여분 대화를 하다 보면 뭔가 대화가 막혀서 더 이상 대화를 이어 나가기 힘든 경우도 있었고, 2~3시간 가까이 끊김 없이 대화가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차이는 지적 수준의 차이보다는 지적 호기심의 차이에서 비롯하는 것 같았다. 지적 호기심이 높은 분의 경우에는 모르는 얘기가 나와도 스스럼없이 물어보기도 하고, 평소 관심이 있었던 부분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 등 대화에 적극적이어서 대화가 즐거웠다.

2. 애프터 신청

초면 자리임에도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여성분 쪽이 먼저 애프터 날짜를 잡자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그런 경우는 내 입장에서는 호감도가 대폭 상승한다. 나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먼저 말을 꺼내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대화를 마칠 즈음에 ‘저는 OOO님 또 뵙고 싶기는 한데, OOO님 생각은 어떠신지 모르겠네요. 오늘 조심해서 들어가시구요, 혹시 생각이 있으시면 문자 주세요’라고 말을 건네는 방식을 썼다. 좀 소극적인 방법이기는 한데, 혹시 내가 마음에 들지도 않는데 억지로 애프터를 잡는 일이 생길까봐 그렇게 한 것이다.

문자가 안 오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은 문자를 보내 왔다. 재미있는 것은 문자가 오기까지의 기간인데, 짧을 때는 다음 날 바로 오기도 하고, 오래 걸렸을 때는 한 달 가까이 지나서 나도 속으로 ‘아... 차였구나...’ 하고 있을 때 오기도 했다.

3. 애프터

문자가 와서 구체적으로 애프터 날짜와 장소를 정할 때, 시간은 서로 맞춰서 정했지만, 장소는 예외 없이 여성분이 오기 편한 장소로 했다. 장소는 대체로 식당이었지만, 가끔 카페에서 보자고 하는 분도 있었다. 위치를 여성이 편한 곳으로 잡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최대한 여성분이 편안한 기분으로 만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지방에 계시는 분의 경우에는 서울로 오라고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도 하다. 나와 만나기도 전에 이미 지쳐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4. 썸이란?
애프터까지는 거의 정해진 루틴이고, 과거나 현재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문제는 그 이후인데, 과거에는 애프터 이후 ‘프로포즈’를 통해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에 이르는 중간 기간이 길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보통은 깊은 관계로까지는 가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아마도 그 당시는 성인이 되면 결혼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고, 혼인 연령도 상당히 낮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는 결혼이 당연시되지 않는 시대가 되고, 혼인연령도 과거에 비해 월등히 올라가다 보니(통계청 인구정책 자료를 보면 1960년 기준 여성 초혼 연령이 21.6세였는데 2020년에는 31.08세다. 10년이나 늦어진 것이다) 중간 단계가 길어졌다. 그러다보니 그 긴 기간동안의 남녀 관계의 양상이 달라진 것 같다.

바로 그 ‘길고 달라진 중간 단계’가 이른바 “썸”인 것 같다.
(뜬금없이 진지한 얘기를 하자면, “썸”은 엄연한 사회현상인데도 그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것은 안혜상의 2017년 논문 ‘신자유주의시대 청년세대 친밀성의 재구성, “썸”’이 유일한 것 같고, 이를 부수적으로 다룬 다른 논문 몇 편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논문에서는 “썸”을 일종의 새로운 친밀성의 양식의 문제로만 접근하고 이를 신자유주의 조류의 영향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나는 신자유주의적 조류가 아니라 이런 인구통계학적 현실이 진정한 “썸”의 발생 원인으로 생각한다. 내친 김에 논문이나 쓸까...)

결정사를 통한 만남은 지인을 통한 맞선과는 미묘하게 다르다. 지인을 통한 맞선은 '이 사람과만 교제한다'라는 암묵적 룰이 있지만 결정사를 통한 경우에는 그런 룰은 없다. 그런 점에서 청년세대의 "썸"을 타는 것과 유사한 관계가 되는 것 같다.

아무튼 이 길고 복잡한 “썸타는” 기간이 애프터 이후에 펼쳐지고, 나도 거쳤다.

5. 나의 썸

내가 미혼일 때만 해도 없었던 “썸”이라는 개념이 내게는 꽤 혼란스러웠는데, 도대체 어디까지 진도가 나가야 되는지 잘 몰라서 그랬다.

참고로, “썸”타는 기간 동안의 스킨쉽의 허용 여부와 정도에 대해서는, 앞서 지적한 안혜상의 논문에 실증적 연구가 있다. p.78에 실린 인터뷰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11명의 남녀 중 8명이 성관계까지 허용 가능하고 6명이 실제로도 성관계에 이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그런데 이 설문 결과에서 재미있는 점은,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남성들이 스킨쉽에 더 소극적이다).

내 경우에도 나의 개인적 성향, 시대적 배경(까딱하면 철컹철컹)에 더하여, 여성분들이 혹시라도 ‘나를 쉽게 본다’는 기분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가 더해져 굉장히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여성 쪽에서 확실하게 시그널을 보내지 않는 이상, 스킨쉽은 철저히 조심스러웠다는 뜻이다.

그런데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확실히 신체적 접촉이 없으면 관계의 발전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내 경우에는 몇 개월간 교제를 했음에도 전혀 신체적 접촉이 없었던 케이스도 있었는데, 꽤 좋은 분이었지만, 신체적 접촉에 대해서는 무척 소극적이었다. 그러다보니 나도 ‘이 분은 내가 남자로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왜 나를 만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주기 바라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위험 부담을 안기가 꺼려져서 결국은 포기했다.

6. 실패 연구

뭐... 여기서 글이나 쓰고 있는 것에서 짐작하겠지만, 아직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은 두세달 정도에 관계 지속 여부가 결정이 났다. 그 경우에는 딱히 누가 누구를 정리한다는 개념 없이 흐지부지 관계가 끝났다. 이 경우는 그냥 서로 안 맞는 것이다.

그 이상 만난 경우에는 내 쪽에서 정리하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꽤 오래 잘 만나고 있는데 갑자기 상대방 여성 쪽에서 관계를 정리하는 경우는 당해 봤다.

관계가 좋았고, 내 입장에서는 시간을 두고 조금 더 천천히 상대를 알아 보고 싶었는데도 갑자기 정리당하는 것이기에 당황했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 그런 분 중의 한 분이 울면서 솔직하게 말해 줘서 나중에는 이유를 알았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그 이유였다. 결정사를 통한 만남의 내재적 리스크라고나 할까(혹시 ‘알바’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그건 아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업체에서 알바를 쓸 이유도 전혀 없다).

뭐... 내가 싫어서 정리한 것은 아니니 행복을 빌어 주어야 할지도.^^

#결정사 #결정사경험담 #재혼 #돌싱

댓글 15

공무원 · j*********

그 어느정도 예상했던 까인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변호사 · l********* 작성자

지인의 소개로 만난 경우에는 그런 경우는 없었습니다. 이게 힌트가 될지도...

작성일2022.12.24.

현대백화점면세점 · h******

힌트말고 그냥 말해주면안돼? 글까지 다 쓴 마당에

변호사 · l********* 작성자

결정사에 한 곳만 가입하라는 법은 없죠. 이정도면 어느 정도 대답이 될 것 같네요.

작성일2022.12.24.

공무원 · l*********

익명의 공간에서 댓글 하나하나에 자신의 철학을 담는게 신기해서 1편부터 검색해서 정독하고 왔어요.
읽으면서 느낀점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것이 확실하다는거.. 혹시 여자가 어떤 남자를 만나고 싶어할까?에 대한 고민은 해보셨을까요?

변호사 · l********* 작성자

사람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다 제각각이듯이, 여성분도 원하는 남자가 다들 제각각이겠죠. 그래서 당연히 매 순간 순간 상대방 여성분의 입장에서, 이 분은 어떤 사람을 바라고 있을까, 그리고 내가 그 바램을 어느 정도 충족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죠.

작성일2022.12.24.

캐세이패시픽항공 · i********

생각없이 다른 검색어 키워드 찾아보다 홀린듯이 후루룩 읽었습니다. 블라인드에 올라오면 다소 논쟁이나 시비가 붙을 수 있는 본인의 주관적 입장을 논리적으로 차분하고 설득력있게 적어주신 걸 보면 역시 괜히 글밥 먹는 직업이 아니네요.. 글 재밌게 읽고 갑니다. 제가 애 있는 돌싱이었다면 한번 궁금해서 만나 뵈었을 것 같아요. 이후의 후기도 궁금한데 후속편 나오면 댓글로 링크 부탁드립니다!

변호사 · l********* 작성자

논쟁이나 시비는 어느 정도 각오하고 쓴 글입니다만,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큰 욕을 먹지 않고 있습니다. 뭐, 익명의 공간에서 먹는 욕 정도는 큰 대미지도 아니구요.

아무튼, 오늘 쓴 글의 링크 남깁니다.

https://www.teamblind.com/kr/post/결정사-경험담-7-4Yq1iEj1

작성일2022.12.26.

더존비즈온 · 냉*******

와 지적 수준과 호기심의 차이를 짚는게 명확하네요!! 이 글 시리즈로 보면서 역주행중인데 머리가 즐거워져요 ㅋㅋㅋ
마지막의 그 뚝! 의 황당함은 적응될 수 없을 것 같아요 ㅎㅎ 그게 무서워서 장도 못 담그는 게 더 손해일테니까요 ㅠ

변호사 · l********* 작성자

급마무리되는 케이스는 황당하지만 감수해야 할 부분이죠. 아쉽다면, 미리 싸인을 보내 주었다면 저도 조금은 빨리 결단을 내렸을텐데… 하는 부분입니다.

새회사 · 시*****

ㅎㅎㅎㅎㅎㅅㅎ횰488

공무원 · i*********

호기심이 있어야 리액션과 핑퐁이 가능한 거 같아요~ 벼농사 하셔서 그런지 글이 술술 잘 읽히고 넘 재미있습니다 시리즈 정주행 중!!!

변호사 · l********* 작성자

잘 읽힌다는 말씀이 최고의 칭찬입니다. 감사합니다.

작성일202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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