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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을수록 부모님이 싫어진다

새회사 · l*******
작성일2021.06.09. 조회수3,637 댓글43

나 같은 사람 혹시 있음..?
나는 흙수저인데 우리 가족 4인이 월 20짜리 오래된 투룸 빌라에서 살았어.
난 고등학생 때까지 내 방이 없었고 백화점도 가본 적 없었어. 교복을 살 때도 옷 수선할 돈이 아까워서 키 클 것을 대비해 펄럭거리는 아빠핏으로만 샀음
그런 게 어릴 때는 왕따의 사유가 되어서 학교에서 고통도 많이 받았어.

근데 나는 그래도 우리 가족이 화목하고 행복한 줄 알았거든? 우리집이 가난한 건 부모님이 못해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적인 문제라고 생각했음. 그래서 가난만 해결되면 다 잘 될 줄 알았어

근데 아니더라
가난한 집은 정신적으로도 가난한 것 같아
우리 부모님은 비겁하거나 교양이 없고 피해망상이 가득하고 게을러

난 지금 나이 서른인데
자라면서 새롭게 알게 되었거나 새삼 인지한 사실들이 하나씩 퍼즐 맞추듯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되더라고

우리 아빠
정말 자상하고 헌신적인 아버지상이었거든
내가 고향에 가면 기차에서 내릴 때 매번 마중 나오고 차로 태워주고.
근데 알고보니 사실 내가 초등학생 때 4년 넘게 바람 피웠어
엄마가 그걸 할머니한테 이르니까 찾아가서 엄마 목도 졸랐대
이건 난 기억에 없고 누나가 알려줬어
없는 살림에 데이트할 돈은 어디서 뽑았는지 참..
그리고 경제 계획에 굉장히 무책임했어
대출받을 때 상환 계획을 세우지 않고 일단 긁었어
그렇게 카드 돌려막기 하면서 우리 집은 빚더미에 앉은 거야
'이렇게 버티다 보면 좋은 날 오겠지' 가 아빠의 입버릇이었는데, 그 좋은 날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으셨어
근데 사실 그 말이 맞아떨어지긴 했지. 결국 내가 커서 돈 벌어서 본인 카드빚 몇천을 다 갚아줬으니까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당신의 딸 아들이 대학교 고등학교 가는 시점에
돈이 한 푼도 없는데 어떻게 퇴근하고 평일 새벽까지 티비만 보고, 주말에는 어떻게 낮잠만 잤는지
나는 그게 이해가 안 돼
바람 피운 건 엄마와의 문제니 나는 용서한다고 치더라도 말이야.
내가 만약 아빠 입장이었으면 주말 알바든 뭐든 아니면 막노동이라도 했을 것 같거든. 나도 지금 투잡해서 돈 벌어서 아빠 빚 갚아드린 거거든? 힘든 건 맞지만 못할 일은 아니야..
근데 아빠는 가장이었는데 어떻게 자기 가족에게 그렇게 무책임했을까

그리고 우리 엄마
불쌍하고 배운 게 없으시고 사고방식이 구시대적인 사람이야
엄마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공장에서 미싱 일을 하셨는데, 매일 손에 상처가 나서 피 흘리면서 퇴근했었어. 토요일도 출근했고 버는 돈 얼마 안 되는 거 꼬박꼬박 아빠한테 주고 생활비 받아서 썼어. 불쌍하지.
힘들게 살아서인지 엄마는 기본적으로 악에 받쳐있고 피해망상적이고 교양이 없어
어릴 때 엄마가 시장에서 과일을 '슬쩍' 해와서 나랑 누나한테 자랑하던 장면이 너무 충격이라 아직도 기억난다
엄마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누구 험담하기 바빴고, 직장에서 매일 다른 아주머니들하고 싸웠어. (서로 화내고 다툰 게 아니라 머리 쥐어뜯고 싸움) 그래서 1년 걸러 한 번씩 공장을 옮겼어
엄마는 나한테 집착해서 내가 이것저것 다 잘 해내고 명성도 떨치고 돈도 많이 벌길 바라셔. 그래서 무책임하게 이것저것 시켜. 예를 들면 유학 가서 박사 학위를 해라 (내가 장학금+학자금 대출로 석사까지 했음..) 라든지. 물론 엄마는 거기에 돈이 얼마나 드는지 그 비용을 어떻게 충당할지, 그리고 박사 학위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얼마나 어려운지, 내가 무슨 리서치를 하는지 등은 몰라.
그냥 그 명예가 탐나는 거지. 위에서 나열한 어렵고 복잡한 것들은 그냥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하고 박사 아들 둔 엄마라는 대리만족감만 주길 바라셔
그리고 엄마는 미신에 집착해서 사주풀이가 무조건 당신의 의사결정에 최우선하는 기준이야.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안 들으시고. 예를 들어서 박사가 그래 ㅋㅋ 나한테 그건 '네 길' 이다 이런 말만 반복해. 사주에 관이 있네뭐네 하면서

내가 부모님 빚을 갚아준 건 아깝지 않아.
키워준 값 했다 생각하고 있어
근데 부모님이 그냥 너무 싫다..
지긋지긋해.
내게 딱히 나쁜 짓을 한 건 아니지만 그냥 한 인간으로서 나하고 너무 안 맞고 불편해
집에 가면 늪에 빠져있는 기분이야
더 힘든 것은 부모님이 스스로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는 것.
근데 내 입에선 도저히 칭찬이나 걱정이 안 나와
예를 들어서 아빠가 '다 떨어진 가방을 십몇년을 썼다' 면서 성실하고 헌신적으로 살아온 아버지를 연기할 때
솔직히 좀 역겹기만 해
그래서 안타까워 해줄 수가 없고 그냥 무시하거나 새 가방을 사드리거나 해.

하지만 이런 나를 스스로 돌아보면
대체 뭐가 문제인지
왜 나는 내 부모님을 사랑하지 못하는지
사실 내 잘못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내가 못난 놈이란 생각도 들어
그 분들이 나한테 손찌검을 한 것도 아니고, 뭐 가정 다 팽개치고 상처준 것도 아니잖아?
그냥 내 기대가 너무 높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그들도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을 텐데 내가 뒤틀려서 이러는 걸까? 하는 마음에 죄책감도 들고.

몇 년 전부터 쭉 느껴오던 감정들이 최근에 뚜렷해지고 있는데
참 괴롭다
혹시 나 같은 사람 있어?
어떻게 됐어? 부모님하고 다시 사이가 좋아졌어?

덧붙여서)
혹시나 해서 노파심에 하는 얘긴데 체인지그라운드 같은 미디어에 블라 글 많이 올리던데 이 글은 가져가지 말아줘.. 내 주변인이나 부모님이 보게 될까 두렵다
이 글은 나중에 지울 거야..

댓글 43

공무원 · l********

거를 타선 하나도 없이 나랑 비슷하거나 똑같네 ㅋㅋ
미안한데 너 낳음당한거야. 나도 낳음당했고...

정인이처럼 구타를 안당했다 뿐이지 명백한 아동학대 맞음 ㅇㅇ
학대의 결과로 성인이 된 내 정신도 지금 온전하지 못한거고...

그래서 난 출산계획 전혀없음.
금전적 가난함과 정서적 가난함은 내 선에서 끝내야 하니까

LG전자 · l*********

근데 이렇게 말했던 친구 결혼하자마자 거의 바로 아이를 가지더라 새로운 가족을 꾸린다는 욕구가 더 컸던거 같음

오성전자 · :*********

잘컸네 짝짝짝 힘내

AhnLab · !*********

참 대단하다.. 여건이 안좋았는데 스스로 옳고 그른거 가리면서 잘 살아왔네. 그냥 적당히 거리두고 살아가는 방법이 현명할 것 같애. 내 부모인걸 부정할 순 없으니까.

국민건강보험공단 · c*****

부모라고 생각하면 용서가 안되는데, 한 인간으로만 바라보면 부모로서 내가 기대한 상과 다른 무책임함도…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겠더라. 가 되더라.
내가 부모가 바라는 자식상에 백프로 부합하는지 돌아보니까 나 또한 뭐 어디 자랑할만한 특출난 자식도 아니었고…
서로 가족으로서 어떤 대단한 역할이나 상을 기대하면 서로 힘들어지기만 하더라구.

삼성생명서비스 · i*****

나랑 조금 비슷하네..

나이들고 새로운 환경,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족의 싫은점들이 점점 많이보여..

태극제약 · w********

공감이 너무 되어서
눈물나

제주항공 · i******

대단하다 그빚을 갚아주고 나였으면 쌩까고 혼자나가살았을듯

한국철도공사 · x*****

댓글 처음 남겨본당 .. 방금 가족만나고 머리아픈 와중에 공감가고 위로되는 글이네,, 고마워 아직 정답은 잘 모르겠지만 즐겁게 잘살자..🥰

메타넷디지털 · z*****

그어떤 글도 위로가 안되었는데 형의 진심 담긴 이 글을 보면서 참많이 울었고위로 받았어. 고마워

새회사 · 웃******

내가 가진 고민에 키워드로 글을 검색하다 쓰니 글을 읽었는데 현재 가진 감정이 나랑 너무 비슷하다,, 그리고 댓글에도 많이 위로 받았어
가족이지만 잠시 거리를 둘 필요가 있어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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