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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사직의 변을 올렸던 아산병원 흉부외과 교수 22년도 수필

작성일03.20 조회수1,091 댓글15

[제21회 한미수필문학상 대상작]
법으로 막을 수 없는 것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최세훈 교수
2022-01-01

법으로 분명하게 금지하고 있었다. 형량도 꽤 셌다. 아마도 불법 장기적출을 생각하며 만든 법일 것이다. 장기이식법에서는 ‘살아있는 사람으로부터 적출할 수 있는 장기’를 정의하였는데, ‘신장은 정상인 것 2개 중 1개’, ‘간장, 골수의 일부’ 만 포함되어 있을 뿐, ‘폐’는 해당하지 않았다. 이를 어기고, ‘살아있는 사람으로부터 적출할 수 없는 장기 등을 적출한 자’ 는 ‘무기징역 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며, 적출하여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라고 시행령으로 명시되어 있었다.

갓 성인이 된 젊은 여자 환자의 병명은 특발성 폐고혈압증,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폐혈관이 두꺼워져 오른쪽 심장이 폐로 피를 보내기 어려워지는 질환이다. 처음 만나고 몇 달이 지나는 동안, 병은 계속 진행하여 온 몸과 얼굴이 붓다 못해 보라색이 되었고, 호흡곤란과 우심 기능저하가 뚜렷하여,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폐이식이 유일한 근본적인 치료 방법임을 우리 모두 알고 있었으나, 문제는 우리 나라는 뇌사자 장기 기증이 대기자에 비하여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며, 특히 이 질병은 여러 이유로 폐기증을 받을 수 있는 우선순위가 낮아 2년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생체 폐이식은 부모가 각자 1/4 정도의 폐엽 (아버지의 우하엽, 어머니의 좌하엽, 혹은 그 반대)을 아이에게 주는 것으로 아이는 뇌사자 기증을 기다릴 필요가 없이 60~70% 정도의 폐기능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수술법이다. 부모님으로부터 폐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사전 조사에서, 이렇게 딱 들어맞을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폐의 용적과 폐기능, 해부학적인 구조 등이 이상적이었다. 생체폐이식 기술 자체는 이미 30 여년 전에 확립된 방법으로, 가까운 일본에서는 100 례 이상의 경험이 있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서두에서 언급하였듯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생체폐이식의 합법화를 위하여 학회와 개인들이 노력하였으나 전혀 진행되지 못하고 다들 포기하였다.

부모님들은 우리 병원을 찾아올 때부터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었고, 당시 부원장이었던 박OO 교수께서 ‘이 아이 사정이 너무 딱하지 않나, 우리가 해야하지 않겠나.’ 했을 때, 일은 시작되었다.

불법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보호자들과 병원은 온갖 노력을 다 하였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적어 국민 신문고와 여러 정부기관에도 질의를 했고, 병원의 윤리위원회, 대한흉부외과학회, 대한이식학회 등에도 자문을 구했지만, 너무나 분명하게 법으로 금지하는 상황이라 다른 결론이 나올 수는 없었다. 의학적으로, 그리고 윤리적으로도 생체폐이식이 정당함을 확인하는 정도였다. 법무팀과 상의하여, 위법성을 조각하는 사유 (정당행위, 긴급피난, 자구행위 등)에 해당하지 않는가를 따져보았을 때에는, 만약 문제가 되면 다퉈볼 여지가 있겠다는 정도의 답이었다. 정부의 도움을 구하려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를 접촉하려 하였으나, 말단 연구원도 내용을 전해 듣고는 더 이상의 연락을 피하였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면, 그들 모두의 첫 마디가 “꼭 해야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많은 의미가 담긴 질문이었고, 이미 내 스스로가 수십 번 자문자답하였던 질문이었다. 내가 지금 하려는 일은 환자와 운명공동체가 되는 길이다. 성공률이 100%인 수술이 어디 있겠는가? 하물며 국내에서 처음으로 진행하는 난이도가 높은 수술이다. 만약 이 수술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법을 명백히 어기며 무리하게 수술을 진행하였던 것이니, 오랜 법적 분쟁이 있을 수도 있다. 세상은 나를 ‘공명심에 눈이 멀어 무리한 수술을 진행한 사람’이나, ‘병원에 폐를 끼친 사람’이라 기억할 것 같았고, 개인적으로도 망신당하는 것을 넘어 내 스스로의 실력과 판단에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몇 번이고 내 판단이 맞는지, 내가 이성적으로 생각한 것인지, 환자와 보호자의 편에서 판단한 것인지, 내 공명심이 1이라도 섞여 있는지, 다른 방법이 전혀 없는지, 이 수술이 반드시 성공할 것인지를 매일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 즈음에는 자주, 아이가 수술을 앞두고 심장마비가 와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보라색이었던 얼굴이 흙빛이 되고, 숨이 찬 가운데에서도 반짝이던 눈이 빛을 잃고, 혀가 부어 입술 바깥으로 나와있는 상태에서, 심장압박을 하며 ECMO를 넣는 장면이, 마치 눈 앞에서 보듯이 자꾸만 생생하게 떠올라 견디기 힘들었다. ‘아, 이 수술은 진행할 수 밖에 없겠구나. 이 장면을 실제 눈 앞에서 보게 된다면, 어떻게 흉부외과 의사 일을 계속 할 수 있겠는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생체 폐이식을 진행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여, 생명윤리정책과 이식윤리위원회 회의를 드디어 개최할 수 있게 되었다. 정부기관이니 우리가 하려는 불법행위에 대한 면죄부, 아니면 적어도 용인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였지만, 추석 연휴 바로 직전에 모인 참석위원들의 분위기는 호의적이지 않았다. 현재 상황을 충분히 설명한 후 위원들의 토론을 위하여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야 했을 때, 등 뒤로 누군가 “난, 생체폐이식 뿐 아니라 모든 생체 이식에 반대요. 한 명의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두 명의 불량품을 만드는 것이거든. 하, 근데 이 경우는 불량품이 셋이네”라는 말을 하였다. 그 말에 못 참고 돌아서서, “부모가 딸을 살리려고 자신의 폐 일부를 주겠다는 것을 법으로 금지할 수 있는가?” 물었다. “이 생체폐이식은 이미 30년도 전에 확립된 방법이고, 우리는 매년 천 건 이상의 폐엽절제술을 하고 있으며, 건강한 성인은 폐엽을 하나 떼어도 수술 전과 차이 없이 산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불량품이라고? 누가, 아이에게 폐엽을 떼어준 부모를 그렇게 부를 수 있는가? 누가 그런 권리를 주어, 부모가 아이를 살리는 것을 금지하는가? 여러 위원들 같으면 자기 폐 일부를 아이를 살리기 위하여 주지 않겠는가?” 하고 나왔다. 나오면서도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생각하였다.

당시 병원 전체가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영상의학과에서는 당시 도입 단계에 있던 흉부 CT에 기반한 3D 프린팅 기술로 환자와 부모의 폐혈관 구조물을 만들어 주었다. 그 3D 구조물을 가까운 곳에 두고, 앉아서도 누워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이리저리 돌려보고 머리 속으로 시뮬레이션 해보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스스로 의심하던 시기가 지나, 수술을 가까워질 무렵에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생체폐이식 직전 실무회의에는 총 50명이 넘는 의사, 간호사, 행정팀, 법무팀, 증거 보전을 위한 촬영팀 등이 참여했고, 수술동의서도 3 차례에 걸쳐서 자세히 받았다. 집도의는 당시 병원 부원장 직을 맡고 있던 흉부외과 박OO 교수였다. 만약 잘못될 경우, 누가 감옥에 갈 것인지에 대하여 토론도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폐를 적출하는 행위가 불법이기 때문에, 폐이식의 집도의(폐를 붙이는 역할)보다는 적출의(나와 또 다른 선배 흉부외과의사)가 문제가 될 것이라는 해석이 있자, 부원장님은 안전하겠다고 주변 사람들이 안심하는 것 같아 묘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충분히 준비한 상태에서 생체폐이식을 진행하였고, 수술은 더할 나위 없이 성공적이었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발관한 날이 아이의 만 20세 생일날이었던 것은 기분 좋은 우연이었다. 환자는 수술 후 4년이 지난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며, 생체폐이식은 1년 정도 후에 법으로 인정받게 되었으나, 그 이후 아직 우리나라에서 생체폐이식이 시행된 적은 없다. 몇 번의 대상자가 있었지만 부모 어느 한 쪽에 문제가 있거나 아이의 상태가 지나치게 좋지 않아 포기를 하였고, 폐동맥 고혈압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 이식 대기자 등록을 일찍 하고, 폐동맥 고혈압에 사용되는 약제가 국내에서도 허가되어 병의 진행을 늦추며 충분한 시간을 갖고 뇌사 기증자를 기다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생체폐이식을 통하여 우리 폐이식팀 전체가 크게 발전하였다. 백 번을 검토하여 반드시 성공하여야 하는 수술을 같이 성공시키는 과정에서, 여러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였고 팀원 전체가 스스로에게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 팀워크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이후 우리가 진행하는 모든 수술에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수상소감- 서울아산병원 최세훈>

매년 한미수필문학상의 수상작들을 읽으며 나도 언젠가 투고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이제 글을 써야겠다라는 결심을 한 것은 제법 쌀쌀해진 날씨의 늦은 가을, 출근하던 차 속에서였다. 그 무렵에는 가끔 짙은 물안개가 잠실운동장 근처 올림픽대로를 덮는데, 불안한 마음에 비상등을 켜게 하는 물안개도 조금 지나 아침 회진 때가 되면 깨끗이 사라진다. 이전에 흐릿하던 것이 이제는 분명하게 보이고, 불확실하여 불안하던 감정은 다시 떠올리려 해도 되살리기 힘들게 된다. 무엇 하나 확실한 것 없는 인생에서, 반드시 성공하여야 했던 이번 수술 전후에 우리 모두가 같이 겪었던 상황이다. 이제 4년 남짓 지나, 수술의 장기 성적에 대해서도 나의 불안이 어느 정도 확신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었다.

흉부외과의 모든 수술은 강한 팀워크가 유지돼야만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 생체폐이식에 관계했던 이들 중 대부분이 아직도 나의 곁에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그들 모두 당시의 긴장감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때의 감정과 상황을 정리하여 쓴 것이니, 이 글은 내가 썼다기보다는 우리가 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우리 수술장 식구들이 이 글을 즐겁게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흉부외과 의사의 길에 들어선 후배들도. 흉부외과 의사가 된다는 것은 환자를 위해 세상 누구에게라도 당당하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주장할 수 있는, 책임과 의무의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과분한 상을 허락하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를 드리며, 이 기쁨을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 특히 우리 가족에 좀 늦게 합류했지만 매일 사랑의 신비를 깨닫게 하는 사랑하는 막내 딸과 나누고자 한다.

댓글 15

새회사 · !*******

아..... 이 교수님
자정이 지났으니 어제 사직하시고 의업을 떠나신다고 하셨죠... 통탄스러운 밤입니다..

공무원 · l********

수술 약속한 환자까지는 다 수술하시고 사직하시겠다고 하셨더라구요

신고에 의해 숨김 처리 되었습니다.

의사 · 듬*

책도 좀 읽고 그래라

현대자동차 · d*******

에효 빠가사리

새회사 · E****

집중력 딸려서 다 못 읽었지???ㅋ

대한항공 · 단*******

흉부외과 진짜... 개인적으로 대단하다 생각함...

새회사 · E****

이런 분들을 사지로 내모는구나. 그 다음은 환자들이 사지로 내몰리겠네. 한국의료의 미래가 암담하다.....

LG화학 · l*********

한국 의료는 이제 돌이킬수 없이 망가졌네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 라는 속담이 생각남

공무원 · |*********

사직하셔서 슬기로운 감방생활 하러가실 예정입니다.
멀리못나갑니다…

서울아산병원 · g******

교수사직은 아무문제가 없단다.. 진짜 훌륭하신 분인데 안타깝다

서울아산병원 · r*******

멍청한 정부와 수반때문에 애꿎은 환자와 병원 직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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