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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사 경험담 (13)

변호사 · l*********
작성일2023.02.04. 조회수2,927 댓글47

이어서 쓰는 글입니다.
https://www.teamblind.com/kr/post/e7Axb26V?cid

시작부터 너무 추상적인 얘기를 하면, 지루할 것 같아서 일단 실제 사례 하나를 소개하고 얘기를 이어가겠다. 이 사례는 대법원 홈페이지의 ‘전국법원 주요 판결’ 게시판에 게시되어 있는 공개된 판결문을 바탕으로, 이해하기 쉽게 표현을 약간 바꾼 것임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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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은 전문직 남성 A, 그리고 그의 배우자 B이다.

A와 B는 중매로 만나 5개월 뒤에 결혼했다.
결혼 전에 B 집안에서 A에게 결혼 지참금조로 3억 5천만원 상당의 현금 지원을 했다.

A는 신혼여행을 다녀온 이후부터 고급 유흥주점을 전전하며 술을 마시고 만취하여 새벽에 귀가하거나 외박을 하곤 하였으며, 결혼지참금도 유흥비로 모두 탕진하였다.

A는 결혼을 하고 1년 뒤에 개업을 하였는데, 개업 비용도 B 집안에서 부담했다. 개업을 한 이후부터 매일 고급 유흥업소에서 술을 마시고 일주일에 3~4번은 외박을 한 후 아침에 귀가하여 옷만 갈아입고 출근하였으며, 외박을 하지 않은 날에는 만취하여 새벽에 귀가하였다.

A는 방탕한 생활로 개업 이후 5개월만에 직원들 월급도 못 주게 되었고, 거액의 채무를 지게 되었다. B는 1억 5천만원의 대출을 받아 A의 채무를 변제해 주기까지 하였다.

B는 극도의 스트레스로 A가 개업을 하고 6개월 뒤 임신 7주가 된 태아를 유산하였다.
A는 두달 뒤 만취상태에서 음주 운전을 하여 전봇대를 들이받고 지나가는 택시에 부딪치는 사고를 내었다.

A는 이후로도 빚 독촉에 시달려, B가 2천여만원을 대신 갚아 주었다.
참다못한 B가 ‘이럴거면 차라리 집을 나가라’고 하자, A는 곧바로 소지품을 챙겨 집을 나갔다. 그럼에도 A는 이후로도 ‘조폭이 운영하는 사채를 빌렸는데 잡혀가서 죽다가 살아났다. 지금도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다. 친정부모가 부자이니 돈을 마련해 와라’고 B에게 독촉했다.

이후 A는 폐업하고 집에 돌아오지 않은 채 연락마저 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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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판결문을 읽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물론 두말할 나위 없이 B이다. A를 두둔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도대체 뭐가 A를 이렇게까지 망가뜨렸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밝혀 둔다. 댓글로 내 글이 도움이 되었다는 분들이 조금 계셔서,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보다는 조금은 더 책임감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다. 그래서 처음 읽는 분을 위해 다시 한 번 내 상황을 정리함으로써, 내 글의 한계를 미리 밝혀둔다.

나는 재혼 목적으로 결정사에 가입한 것이고(따라서 블라인드 이용자 치고는 나이가 꽤 된다), 듀오나 가연 같은 비교적 퍼블릭한 곳이 아니라 거의 광고를 하지 않는 이른바 ‘노블사’에 해당하는 곳을 이용 중이다. 4년 가까이 이용했지만, 아직 졸업을 못 했다. 물론 그 기간 중에 1년 가까이 만난 분이 있어서 사실상 공백기가 있기는 하다. 작년 늦가을부터 더 이상 프로필을 안 주는 것으로 봐서는 이젠 회사도 포기한 것 같다... 또르르

이제 본론에 들어가겠는데, 사실 이번 글이 어쩌면 내가 가장 쓰고 싶었던 글에 가깝다. 이번 글은 결정사와 지인들의 소개를 통해 여성분을 만나면서 들었던 생각에, 여기 블라인드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으며 느꼈던 생각을 합쳐 정리한 것이다.

1. 조건이란?

결혼과 관련하여, ‘조건’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직업’, ‘수입’, ‘학벌’ 대충 이런 것들이다. 당장 블라인드 검색창에 “조건”이라고 치면 나오는 것들이 대부분 이런 것들이다.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조건’이라는 단어 속에 때로는 너무 많은 의미가 들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진짜 중요한 의미가 빠져 있기도 한 것 같다.

2. 과도하게 의미가 부여된 ‘조건’

위 사례에서, A를 보자. 통속적인 의미로서의 ‘조건’은 분명 나쁘지 않았다. B의 직업이나 학력은 어떠한 사람인지는 판결문만 보고서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재산은 많은 집안의 딸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니 B의 조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A와 B의 결혼 생활은 시작부터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위 판결에서 “A는 신혼여행을 다녀온 이후부터 고급 유흥주점을 전전”했다는 것은 두 사람의 결혼은 시작부터가 잘못되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요컨대, 통속적인 의미로서의 ‘조건’이 만족스런 결혼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너무도 당연한 진실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다른 경우도 있다. 모 법무법인의 블로그에 연재된 사연인데, 부잣집에 시집간 며느리의 불행한 결혼생활 이야기이다. 인용하기에는 길어서, 링크만 달아 둔다. 참고로, 내가 이 사연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어? 이거 내가 맡았던 사건을 각색한 것 아닌가?’ 였다. 그 정도로, 이혼 사건을 접하는 변호사 입장에서는 흔한 사연이다.
https://blog.naver.com/pyh3231/222787327767

위 두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통속적인 의미로서의 ‘조건’은 너무 과대하게 의미가 부여되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3. 진짜 필요한 ‘조건’

직업상 이혼 사건을 다루면서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많은 커플들을 마주치게 된다. 수임에까지 이르지 않고 상담 정도로만 끝나는 사건까지 포함하면, 1년에도 열 건은 넘게 그런 커플들을 마주하게 된다. 친구와 친척들의 정기적인(?) 상담까지 포함하면 셀 수도 없다.

그러한 경험 속에서, 결혼생활에 트러블을 겪는 많은 커플들이 연애를 하면서 결혼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서로간의 조건을 알아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진짜 조건’이 무엇인지는 당연히 사람마다 다른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내가 원하는 조건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 아닌가 하겠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이 문제에 너무도 둔감하다. 오죽하면 고 신해철이 다음과 같이 일갈했겠는가?

(전략)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머야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머야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머야
니가 진짜로 진짜로 원하는게
진짜로 진짜로 원하는게 머야
그나이를 퍼먹도록 그걸 하나 몰라
그나이를 퍼먹도록 그걸 하나 몰라
(후략)

[1999년 앨범 ‘monochrom’의 3번째 트랙 ‘네가 진짜로 원하는게 머야’에서]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찾기가 어려운 이유 중에는 상황이 닥치지 않으면 그게 중요한 것이었는지조차 모르는 조건도 많다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상담한 커플의 경우 ‘교육관’의 차이가 파경의 원인이 된 경우도 있었다. 아버지 쪽은 ‘애들은 놀아야 한다’라는 쪽이고, 어머니 쪽은 정 반대의 입장이었는데, 이러한 교육관의 차이로 부부가 서로를 거의 악마시하는 상황에까지 이른 경우였다. 이건 두 사람이 연애를 할 때는 나중에 문제가 되리라고 미리 알기가 대단히 힘든 것이었을 것이다.

4. 시간과 대화가 필요하다.

내가 상대방에게 무엇을 바라고, 반대로 상대방이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지를 확인하고, 그러한 바램이 원만히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결국 함께 하는 시간, 그리고 깊이 있는 대화가 필요하다. 연애 초입부터 그런 얘기를 꺼낼 수야 없겠지만, 어느 정도 사이가 가까워지고 ‘어쩌면 이 사람과 결혼까지 이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면 조금씩 그런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연애 초입에는 서로가 자신의 진짜 모습보다는 ‘보여 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이다. ‘보여 주고 싶은’ 모습이 아니라 ‘보여 줄 수 밖에 없는’ 모습은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은 편해져야 비로소 나타난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지는 역시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겠지만, 여기서도 역시 내가 전에 썼던 ‘관계’로부터 1년이 하나의 기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육체적 관계까지 이르면 그 때부터는 서로간의 긴장관계가 극적으로 해소되어 서로에게 조금 더 솔직해지기 때문이다.

5. 장점과 단점은 상대적인 것이다.

이런 ‘조건’을 논할 때, 이 말은 꼭 해주고 싶다. ‘장점’이나 ‘단점’은 지극히 상대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데, 대부분의 여성분에게는 장점으로 여겨졌던 것 같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라고 생각하시는 여성분도 있었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장점이 다른 사람에게는 단점으로 여겨질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그러니 자신의 조건이 너무 열악하다고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차라리 나의 가진 조건들을 장점으로 여길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6. 맺는 말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나라는 인간에게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또한 넘치는 점도 있고, 부족한 점도 있다. 그 중에는 내가 노력해서 메꾸거나 고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는 부분도 잇을 것이다. 한편, 내 딴에는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단점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장점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이건, 결정사에서 건네진 프로필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나의 모습일 것이다. 내가 3번 째 글에서 ‘프로필만 읽지 말고, 나를 읽었으면...’하고 썼던 것을 기억하는 분이 계실 것 같다. 이제 왜 내가 그토록 ‘나’를 읽어주길 바랬는지,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넉넉히 가지길 원했는지 조금은 더 이해가 될 것 같다.

#결정사 #결정사경험담 #재혼 #돌싱 #조건 #전문직

댓글 47

창원대학교교직원 · 열*****

기다리고 있었는데, 2일 늦게 봤다는ㅜㅜ
이번 주제에 머리가 띵해졌네요

변호사 · l********* 작성자

기다리는 분이 계시다는 것이 영광일 따름입니다.

삼성전자 · 앰***

어떤 사람과 함께해야 할지에 대한 답
1. 친구와 결혼해라
- 어메리칸 인디언이 정의한 친구 : 나의 슬픔을 등에진 자, 상대와 결혼을 하려거든 기꺼이 그 사람의 슬픔을 등에 지을 수 있다면 결혼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옳고 그름이 아니다.

2. 모국어가 좋은 사람과 결혼해라
- 갈등 상황에서도 선을 넘지 않고 예쁘게 말할 줄 안다면 그 사람은 모국어가 좋은 사람이고 위기가 와도 좋은 방향으로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야 한다.

https://youtu.be/6zeyaD-3RFk

변호사 · l********* 작성자

아주 적절한 조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성일2023.02.10.

삼성전자 · 타*******

저걸 알고 결혼을 했어야 했는데 😞

아모레퍼시픽 · x******

우리나라 사회는 좋은 부부가 되기 위한
조건들이 많이 왜곡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사례로 주장에 힘을 실어주셨는데,
그 조건이라는게 가치관 성격 교육관 육아관 등 너무나 많을 것 같아요.

혹시 잘 사는 부부들의 특징도 정리해서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변호사 · l********* 작성자

직업상 잘 사는 부부는 만나기 어렵습니다... ㅠㅠ

다만, 제 친구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부부가 맞벌이로 서로 바쁜 커플들은 적어도 싸우지는 않더군요. 싸울 틈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작성일2023.02.13.

공무원 · 후*****

우연히 글을 보게 되었지만
저도 결정사 이용하고 있는 돌싱인지라 흥미로웠어요!!^^

변호사 · l********* 작성자

감사합니다.

한국공항공사 · j*********

글이 너무 재밌어서 다음 편이 기다려지네요ㅎㅎ

변호사 · l********* 작성자

너무 늦기는 했습니다만, 아마도 마지막 글이 될 글을 방금 전에 올렸습니다.

삼성화재서비스손해사정 · V*****

작성자로 글 알림이 안되서 뒤늦게 12,13 한꺼번에 읽었어요. 다음편도 기다려집니다^^

변호사 · l********* 작성자

분에 넘치는 칭찬 감사합니다. 너무 늦기는 했습니다만, 아마도 마지막 글이 될 글을 방금 전에 올렸습니다.

현대자동차 · i*********

우와.. 다 읽었습니다. 계속 정리해서 책으로 내도 좋을것 같아요.

변호사 · l********* 작성자

더 경험하고, 더 공부하다 보면 언젠가는 책을 쓸 날이 올 수도 있겠지요^^

공무원 · 내******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나라는 인간에게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또한 넘치는 점도 있고, 부족한 점도 있다. 그 중에는 내가 노력해서 메꾸거나 고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한편, 내 딴에는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단점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장점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문구 너무 마음에 와닿아서 개인소장합니다

변호사 · l********* 작성자

보잘 것 없는 글에 대한 분에 넘치는 말씀에 늦게나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작성일2023.05.12.

바이널씨 · |********

다음편 없나요..?🥹

변호사 · l********* 작성자

너무 늦기는 했습니다만, 아마도 마지막 글이 될 글을 방금 전에 올렸습니다.

삼성전자 · i*********

14편은 안쓰시나요 ㅎㅎㅎㅎ

변호사 · l********* 작성자

너무 늦기는 했습니다만, 아마도 마지막 글이 될 글을 방금 전에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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