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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사 경험담 (7)

변호사 · l*********
작성일2022.12.25. 조회수2,683 댓글43

이어서 쓰는 글입니다.
https://www.teamblind.com/kr/post/pQNavCL3

전 글이 좀 무거웠던 관계로, 이번에는 좀 가볍게 쓸 생각임. 결정사를 통해 소개받은 분들과 만나면서 느꼈던 것들임.

읽기 전 주의사항
1.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임. 특히 "결정사 경험담 (1)"에 적은 나의 성향을 전제로 한 것임
2. 의도적으로 사실과 다르게 적은 부분이 있을 수 있음. 만난 분들의 사생활은 소중하니까.
3.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표현이 나옴. 역시나 고민되는 부분이고, 가능하면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만 쓰고 싶지만, 그러면 별로 와 닿는 글이 될 수 없어서 부득이 썼으니 양해 바람. 나 이상한 사람 아님.

여기에 추가해서,
4. 이번 글에는 좀 더 19금스러운 내용도 나옴. 이번에도 최대한 예의와 품위를 유지해서 쓸 테니 행간을 알아서 읽기 바람
5. 뜬금없는 얘기지만, 밑밥을 좀 깔겠음. 나는 내 어머니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늘 고마워하기는 하는데... 어머니는 요리는 잘 못하신다. 그래서 지금도 어머니를 뵐 때는 댁에서 뵙지 않고 밖에 나가서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음식을 같이 즐기고 집으로 모셔다 드린다. 집에서 봤다간 그 맛 없는 요리를 잔뜩 먹어야 하니까...

본론 들어갑니다.

1. 이른바 ‘간스유예기엔교 플필헤네카’
나는 여기 거명된 직업 중 3가지 직업에 종사하거나 또는 종사했던 분 네 분을 만났는데(한 분은 결정사가 아니라, 지인 소개), 한 분은 두 번 만나고 흐지부지 되어서 잘 모르지만 세 분은 비교적 오래 만나서 여성분에 대해 나름 깊게 파악할 수 있었다.

다행히 나는 비교적 최근에 이 용어를 알았기 때문에 이 용어가 담고 있는 선입견 없이 위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 용어는 섣부른 일반화에 불과하다.

구체적인 내 경험은 이렇다.

스튜어디스(일단, 이 단어는 싫어한다. 배운 사람답게, 캐빈 크루라는 용어를 쓰자): 4년제 대학을 나와서 캐빈 크루를 하던 분이었고, 내가 소개를 받을 무렵에는 이미 퇴직한 상태였다. 책임감이 강하다는 느낌이었고, 센스가 좋았다. 항상 온화한 표정을 하고 있어서 좋았고, 무엇보다 체력이 좋아서 좋았다... 놀란 점이 있다면, 국제선을 타셨다고 하는데도 생각보다 영어를 잘 못한다는 것 정도?

교사: 서울의 현직 초등교사였다. 최근에는 저출산 영향으로 입결이 조금 내려가기는 했어도, 자신이 들어갈 때만 해도 교대 입결이 엄청나게 높았다며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했다. 실제로 지적 수준도 매우 높았고, 대화의 소재도 다양해서 대화가 즐거웠다. 단점이 있다면(그 분만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투가 약간 선생님 말투였다는 것 정도?

필라테스: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필라테스 강사를 하는 분이었는데, 집안의 경제력이 꽤 좋은 분이었는데도 묘하게 생활력이 강하다는 느낌을 주는 분이었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주문을 할 때, 내가 내는 것인데도 코스 메뉴를 주문하려 하면 ‘먹다 보면 배불러서 어차피 다 못 먹는다’며 굳이 단품으로 주문하라고 하는 식이었다. 자신의 전공분야 외의 지식은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지적 호기심은 넘치는 분이어서 대화는 늘 즐거웠다. 이 분도 체력이 굉장히 좋아서 좋았다(본인 말로는, 필라테스 때문은 아니고 원래 힘이 장사였다고 한다).

물론, 결정사 그것도 이른바 ‘노블사’를 통해 만난 분들이다보니 이분들이 그쪽 직업군을 대표하는 분들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그 쪽 직업군을 일반화해서 폄하할 수 없다는 훌륭한 반증임에는 틀림 없지 않은가.

2. 심쿵했던 순간, 싸했던 순간

서로를 알아 가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심쿵 했던 적도 있고, 뜻하지 않게 싸했던 적도 있는데, 바로 기억나는 에피소드 한 가지씩 소개한다.

a. 심쿵했던 순간
지방에 사는 분이었다. 저녁에 카톡을 했는데 평소답지 않게 답장이 늦게 와서, 벌써 자나 했다. 그런데 카톡을 한지 한 시간 정도 뒤에 지금 감기 몸살이 나서 누워있느라 톡을 못 봐서 늦게 답장해서 미안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약은 먹었냐고 물었더니, 몸살기 때문에 밖에 못 나간다는 것이다. 내가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 편의점 약이라도 사갈까?’ 하고 물었더니, 고맙기는 한데 미안하니까 오지 말란다.

이럴 때 점수를 따야겠다 싶어, 지금 고속도로 막힐 시간도 아니니 가겠다고 하고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한 감기약과 드링크류를 사서 출발했다.

도착해보니, 정말이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 있었는데, 머리를 짚어 보니 열이 좀 있었다. 애 키우던 집이라 집에 체온계가 있어 재 보니 38도 정도였다. 이 정도면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라서 약 먹고 푹 쉬라고 하며 이불을 덮어주고 나오는데...

‘오빠 그냥 가?’

하며 소매를 잡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지 싶어 순간 망설이다가, ‘너 지금 아프잖아? 주말에 다시 올게’ 하는데

‘힝... 나 괜찮은데.’ 하며 볼멘 소리를 하는데, 그만 심쿵했다.

이런 순간이라면, 아마 나 아니고 다른 남자라도 심쿵했을 것 같다.

b. 싸했던 순간
아이를 직접 양육하는 분이었다. 그러다보니 데이트를 할 때도 오래는 못 있고 늦어도 8시 정도면 집 앞에 바래다 드렸다. 그런데 하루는 갑자기 시간 있냐고 전화가 왔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아이들을 외가에서 데려가서 갑자기 집이 비니 7시 정도까지 올 수 있냐는 것이다.

두근대는 가슴으로 문자로 찍어 준 주소로 갔다. 벨을 눌렀다. 문이 열렸다. 앞치마를 두른 그 분이 반갑게 나왔다. 그리고 보았다.

싸했다...

디너 테이블 위에 음식이 가득 가득 차려져 있었다...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오빠 혼자 사니까, 집밥이 그리울 것 같아서 준비했어’ 라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내가 예전에 분명히 얘기 했는데 잊었나 보다.

‘나? 어머니가 요리를 못해서 그런가, 집밥 별로야’

(나 뿐만 아니라, 의외로 많은 남자들이 집밥에 대한 향수가 별로 없다. 솔직히, 전문적인 요리사가 하는 음식이 더 맛있지 않나? ‘집밥에 대한 향수'라던가 '어머니의 손맛'은 어쩌면 언론에서 만든 프로파간다일 수도 있다)

만들어준 정성은 물론 고맙다. 그래서 먹는다. 맛은 다행히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양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맞은 편에서 내가 먹는 모습을 힐끗 힐끗 보면서 기뻐하는 표정을 보니 도저히 남길 수가 없었다... 꾸역 꾸역 다 먹고 나니, 배가 너무 불러서 아무 것도 못하겠다...

아... 이래서 이영애가 ‘밥... 먹을래요?’라고 하지 않고 ‘라면... 먹을래요?’라고 했구나.

#결정사 #결정사경험담 #재혼 #돌싱

댓글 43

가천대학교교직원 · Y*****

생각해서 집밥 차려준 거 나한테는 되게 감동 포인트인데 싸하고 한숨까지 나왔다니...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군 😢

변호사 · l********* 작성자

정성 자체는 당연히 감사하죠.... 그러니까 남기지 않고 싹싹 비운거죠.

그런데 세 번째 글에서 썼듯이, 저는 '프로필만 읽지 말고 나를 읽어주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프로필로 알 수 있는 사실, 즉 '혼자 사는 남자'가 아니라, 저의 개별적 상황, 즉 '집에서 밥먹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특징에 집중해주길 바랬는데 그렇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변명을 하자면, 저는 집에서 가짓수 많은 음식 먹는 것을 매우 싫어하고, 그 점도 그분께는 얘기를 했습니다. 저는 집에서 밥을 먹을 때도 상위에 차려진 음식이 많으면, '저거 만드느라 얼마나 시간이 들었을까... 저거 치우느라 얼마나 시간이 들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물론, 식당에서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에 해당하는 비용을 지불하니까. 하지만 집은 다릅니다. 어머니 또는 아내의 대가 없는 노동으로 이루어지는 식사에 너무 많은 공을 들이면 제가 오히려 불편합니다.

사실 어머니 음식 솜씨 얘기를 하기는 했습니다만, 만드느라 고생, 치우느라 고생하실 것을 알기에 어머니 댁에서 밥을 안 먹으려 하는 것도 있습니다.

제가 자취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음식은 먹는 것은 금방이어도 준비하고 정리하는 데에는 그 몇배의 시간이 드는 것을 잘 압니다. 식사(食事)는 '장보기부터 시작해서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로 끝'나는 일(事)이기 때문입니다.

작성일2022.12.25.

가천대학교교직원 · Y*****

그 분은 한 상 가득 음식하느라 하나도 힘들지 않았을 걸요..? 마음이 크면 수고스러움이 없거든요 약 사들고 먼 지방까지 한 달음에 달려갈 수 있는 괴력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형식이 아니라 그 속의 본질이 중요한 것인데.. 맛의 유무나 수고스러움 보다는 그 분의 정성과 따뜻한 마음을 먼저 봐 주세요

작성일2022.12.26.

변호사 · l********* 작성자

그 많은 음식을 준비하느라 들인 수고를 생각하면 당연히 고맙지요. 그리고 그 정성을 알기에 적어도 그 자리에서는 실망하지 않도록, 맛있게 먹어 준 것이구요.

그러나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있습니다. 적어도 부부, 또는 연인 사이에서는 그러면 안됩니다. "내가 생각하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입장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그렇게 찾아낸 상대방의 바램을 들어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이혼 사건을 하다보면, 황혼이혼의 경우에 이런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즉 아내는 남편이 조금 더 가정에서의 시간을 가져 주기 바라는데 남편은 '내가 돈을 많이 벌어다주니 아내가 좋아하겠지?'라며 일에 빠져 사는 경우가 비근한 예입니다. 특히 자수성가를 해서 사업을 일으킨 분들에게서 자주 보이는데, 이런 경우 남자는 도대체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도통 이해를 못합니다.

그 여성분의 정성은 고맙지만, 저는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을 보며, '이 사람은 나와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상상 속에 만들어 낸 가상의 나와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작성일2022.12.26.

삼일회계법인 · l********

글쓰는 직업이시라 그런지 글을 굉장히 흡입력있게 쓰시네요 부럽습니다

변호사 · l********* 작성자

너무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LF · l*********

7편이 끝인가요? 우연히 보게되어 1편부터 찾아서 단숨에 다 읽었어요. 필력이 좋으시네요. 너무 재미있으신분 같은데 왜 아직 인연을 못만나신건지 안타깝기까지하네요. 8편 기다립니다!

변호사 · l********* 작성자

앞의 글의 댓글에서도 썼지만, 저는 사람을 알아가는데 조금 신중한 편입니다. 그러다보니 상대 여성분의 조급한 마음을 이해를 못해서 놓친 분도 좀 있어요^^.

글은 생각나는 대로 더 쓰겠지만, 페이스는 좀 조절해 가며 써야 될 것 같네요.

작성일2022.12.28.

작성자가 삭제한 댓글입니다.

변호사 · l********* 작성자

감사합니다!

더존비즈온 · 냉*******

우와 이렇게 여러 사람을 천천히 알아가신 게 대단해요. 짝을 찾으러 노력하신지 얼마나 되신건가요?

변호사 · l********* 작성자

짝을 찾는 노력을 언제부터 했냐고 물으시면, 딱 언제부터라고 말하긴 애매하네요. 아무튼 이혼은 5년 전입니다.

작성일2023.01.03.

더존비즈온 · 냉*******

결정사, 지인 소개팅 등을 통해서 이 글의 데이터베이스가 생기기 시작한 시점이요!

변호사 · l********* 작성자

그게 좀 애매하긴 합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4년 전에 선배가 밥먹으면서 할 말이 있다고 해서 불려 간 자리에 동석하신 여성분이 있었는데, 그게 알고보니 소개 자리였습니다. 그게 최초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작성일2023.01.03.

공무원 · i*********

이번 편은 말랑말랑? 암튼 부드럽고 재미있어요 ㅎㅎ

변호사 · l********* 작성자

이런 글이 저도 쓰기 편해요^^

작성일2023.01.15.

스타트업 · l*********

심쿵과 싸한 순간의 구체적 예시를 들어주시니 이해가 쉽습니다!

아모레퍼시픽 · x******

궁금한게 있는데요.

상대를 위해서 밥을 차려준개 싸했던 순간이라고 느꼈던 것은
예상치 못하게 너무 과하게 저녁 밥상은 아내처럼 준비한게 부담이였을까요?

변호사 · l********* 작성자

음...

저는 만나는 여성분들에게 꼭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밥하고 빨래할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구요(물론 가사노동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고 '그런 것은 혼자서도 다 해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반려자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죠. 예를 들어 식당에만 가도 1인분 주문이 안 되는 음식 투성이죠. 그래서 반려자를 찾는다고 말씀드리죠.

그 음식을 보며, 그분이 생각하는 '아내'의 역할이 제가 바라는 '아내'의 역할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만난지 얼마 안 된 분이라면 또 모를까, 집으로 초대할 정도면 저도 그분과 꽤 얘기를 많이 나누었는데도 제 생각이 전달이 되지 않았다는 느낌에 '이 분하고는 잘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모레퍼시픽 · x******

그냥 고맙다고 생각하면 안되나요

변호사 · l********* 작성자

여러 번 밝혔습니다만, 당연히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차린 음식의 양으로 보아서는 너무 애썼겠다 싶어서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방향을 잘 못 잡은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표현이긴 합니다만,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라는 경구가 있습니다.
요컨대 상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귀기울이는 것이 귀한 것을 주는 것보다 낫다라는 의미입니다.

작성일2023.02.27.

중소기업유통센터 · l*********

체력이 좋다가 그 의미인가요.?? 캐빈크루가 그렇다니!

변호사 · l********* 작성자

체력이 약하면 캐빈 크루로서는 괴롭죠. 승객의 무거운 캐리어를 짐칸에 올려야 할 때도 있고...

중소기업유통센터 · l*********

아...다른의미로 체력이좋단줄알았네여ㅎ 19금행간을 잘못본듯

작성일2023.02.27.

변호사 · l********* 작성자

물론 중의적으로 쓴 것입니다만, 그건 직업적 특성 보다는 개인적 특성이겠지요.

스타트업 · ☀********

라면 먹고 갈래요? 에 이런 심오한 뜻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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