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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와 에버랜드와 감사편지

삼성SDS · 그*****
작성일2020.10.31. 조회수2,377 댓글22

나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갓난쟁이일 때부터 고아원에서 자랐다. 나중에 알고보니 내 생모가 미혼모였고 수녀회 산하의 미혼모 시설에서 나를 낳았다고 한다. 그 사실이 가슴아프다던가 못내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나는 해가 뜨고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그저 태어나서 살았을 뿐이었다.

장성하여 퇴소하고도 한참 후에야 나는 내가 고아원에서 자란 고아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항간에서 흔히들 그리는 고아에 대한 이미지를 알고 나서 깜짝 놀랐는데,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과 그 이미지는 뭉크와 클림트의 그림 만큼의 간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회에서 말하는 고아는 결핍이라는 단어로 대체될 수 있었다. 무언가 결핍된.. 온전치 못한 존재가 고아였다. 따뜻한 삼시세끼 밥이라던가, 애정이라던가, 도덕심과 교양이라던가.. 하여튼 뭔가 부족해서 허덕이고, 동정받지만 결코 가까이 두고 싶지 않은 정신적인 불구자로 정리될 수 있겠다. 오죽하면 온라인에서의 관심종자를 가르켜 부모없냐? 라고 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내 자신이 그렇게 불쌍하고 결핍된 존재라고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육체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삼시세끼 밥을 굶어본 적도 없었고 일주일에 두번씩 과일간식을 먹었으며 일년에 세번씩 과자종합세트를 받았다. 추위에 떨며 잠을 잔적도 없었고 주기적으로 체육활동을 하고 문화생활을 즐겼다.

문화생활. 여기에 나는 진정 결핍을 겪을 이유가 없었다. 고아원의 원아들은 뮤지컬이나 오페라, 오케스트라 연주회 등에 자주 초대되는 단체관람객이었다. 뿐만인가? 그런 점잖고 잠이 오는(어디까지나 어린 아이의 관점이다. 그 때는 그러했다.) 문화생활 뿐만이 아니라, 짜릿한 오락거리도 충실히 즐길 수 있었다. 내가 초등학생, 아니 국민학생 때부터 고교를 졸업하기까지, 일년에 한번씩 에버랜드를 갔었으니까 말이다.

맞다, 내가 국민학교 1학년 때에는 에버랜드가 아니라 자연농원이었다. 그런 오래 전부터 그 황홀한 놀이동산을 가서 남부럽지 않게 놀 수 있었다. 바이킹과 지구마을, 다람쥐통, 샤크, 독수리열차, 청룡열차. 실제 놀이기구명과 많이 다르겠지만 이런 애칭을 붙일 정도로 나는, 우리들은 에버랜드를 오래전부터 즐겨왔다.

그래서 나는 에버랜드를 가는 것이 당연한 줄로 알았다. 그것이 누군가 베푼 은혜였음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한 어린 아이가 청소년이 되고 청년이 될 때까지.. 자연농원이 에버랜드가 되고, 마스코트가 여러번 바뀔 때까지.. 너무 긴 세월동안 숨쉬는 것처럼 받아왔다.

받을 때마다 감사했었어야 했는데.. 그 긴 세월동안 에버랜드를 갔음에도 나는 그것이 누가 베풀어서 가는거다, 라는 말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감사했었어야했다. 왜 그러지를 못했을까?

진심으로 후회스러운 순간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퇴소하기 전, 수녀님께서 시설의 전통이라며 감사편지를 쓰라고 하셨다. 누구에 대한 감사인지도 특정하지 않았고, 분량은 A4 5장 양면으로 정해져 있었다. 진짜 아무줄도 그어있지 않은 A4 하얀 종이 5장이 주어졌다. 하루하고도 반나절 동안 그것을 감사의 대한 온갖 언어로 채워야 했다.

출중한 문재는 아니었지만, 살면서 글 못쓴다는 말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나도 두장을 겨우 채우고 쓸 말을 잃어버렸다. 그간 키워주신 수녀님들과, 선생님,하느님 아버지와 이름을 기억하는 온갖 성인 성녀들, 그리고 내가 그간 먹어온 곡물을 키운 얼굴도 모르는 농부들.. 기억을 총동원해서 감사할 대상을 뽑고도 부족해 나중에는 산천초목과 하늘에 빛나는 별들까지도 언급했다.

그럴 지경이었는데도 나는 매년 가는 에버랜드에 대한 감사를 잊었었다. 그 터무니없이 장황한 감사편지에서 그나마 관련있는 문구라고는 '그간 도와주신 후원자분들'이라고 뭉뚱거린 구절이었다. 진심 한톨 들어있지 않아보였을 것이다. 그러지를 말았어야 했다.

10월 26일, 월요일. 나는 비보를 들었고 슬프다는 감정은 요만큼도 들지 않았다. 회장님은 내게 너무 먼 존재였고 나와는 아무 관련도 없어보였다. 아무 감흥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느지막히 온라인 추모관에 들어가, 하얀 국화 모양의 이미지로 짧게 고인을 추모하였다.

그 하얀 국화를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고인과 내가 어떤 인연이 있었는가.. 그랬더니 하얀 A4 종이를 앞에 두고 기억하지 못했던 것들이 생각났다. 자연농원, 에버랜드. 내가 그에 대한 감사를 한번이라도 했었는가.

살아생전 결코 도달하지 못했더라도 그 감사편지에 한마디는 들어갔어야했다. 세상 어딘가에 당신의 베품을 감사하는 누가 있었음을 흔적으로 남겼어야 했다.

금요일, 나는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고 서랍장 가장 깊은 곳에 쳐박아둔 앨범을 꺼냈다. 나는 까맣고 못생긴 아이였고 성장기의 사진도 몇 장 없었는데, 그 사진들도 보기가 싫어서 좀처럼 앨범을 열어본 적이 없었다. 그 몇 장 안되는 사진 중에, 에버랜드에서 찍은 사진이 딱 한장 있었다.

그 사진에서 나는 아주 환하게 웃고 있었다. 까맣고 못생겼지만 아주 행복해보였다. 오늘 그 사진을 올려본다. 이 세상에 당신으로 인해 한때나마 행복함을 겪은 사람이 있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편히 쉬세요.

#고아원

고아와 에버랜드와 감사편지 빨간 색 표시가 저입니다.

댓글 22

경동나비엔 · k*****

한참된 글인데,
다른 검색어 입력땜에 읽게되었어.
퇴근길에 눈물 찔끔 흘림.
꼭 행복해~~~!!

현대위아 · q********

잘 읽었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삼일회계법인 · F*****

잘 읽었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이네요.

휴니드테크놀러지스 · #*********

이제야 랑크타고 와서 읽는데...
좋은 글만큼 행복했으면 좋겠다.
글 잘 앍고 갑니다.

대우조선해양 · c*****

뭉클하네요 ,,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행복하십쇼

동아ST · 𝘿**************

감사합니다🥺

하나증권 · 1********

밝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요. ^^; 현학적이고 가슴을 울리는 글들이 좋아서 지난 글들 읽고 있네요. 에버랜드로 바뀐건 1996년 이군요. 내가 에버랜드 처음 가본게 1998년쯤 20대 후반이었는데... 항상 Be happy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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