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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원과 젤마나 수녀님과 송편

삼성SDS · 그*****
작성일2019.06.28. 조회수1,477 댓글20

나는 미혼모의 자녀로 태어나 19년을 고아원에서 자랐다. 내가 태어나 첫울음을 터뜨리는 그 순간부터 나는 고아원에 속할 운명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떠났고 내 이름은 고아원 산하 병원 소속의 간호사가 지어주었다. 나는 그 사실을 채 열살이 되기 전에 알게 되었다.

지금와서 돌이켜보건데 추석은 어디든지 찾아온다. 그것은 심지어 고아원에도 자비롭게 들러주었다. 나는 고아원에서의 추석들을 거의 다 기억하고 있다. 그 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추석이 있다. 젤마나 수녀님과 보냈던 추석이었다.

우리 고아원은 고아들을 매년 담당하는 수녀님이 달라졌다. 그렇기 때문에 고3 때 만나게 된 젤마나 수녀님은 아이 얼굴을 채 익히기도 전에 아이들이 대부분 공장 실습을 나가게 되어 데면데면하게 되었다. 나는 그나마 수능 공부를 이유로 고3으로 유일하게 남아있었으므로 그당시 젤마나 수녀님과 그나마 친분을 유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고아였다.

젤마나 수녀님은 스물여덟명이 살았던 침방에서 홀로 기도하고, 청소하고 기다렸다. 나는 살갑지 않은 성격이라 그 분이 어떤 심정으로 그 시간을 지냈는지 그 때는 잘 몰랐다.

연초에 공장실습을 나갔던 아이들이 유일하게 돌아오는 때는 추석이었다. 이 때는 공장 기숙사에서도 귀향을 재촉하였기에, 돌아오기 싫어도 갈 곳이 고아원 뿐이라 결국은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젤마나 수녀님은 묘하게 들떠 있었다. 추석 며칠 전에 쌀가루를 주문하고, 떡을 찧었다. 그리고 적어도 스무명이 먹을만한 송편을 홀로 만들었다. 나는 9월 모평을 이유로 수녀님을 돕지 않았던 것 같았다.

송편을 조물조물 만들고 1층 주방에 내려 찔 무렵, 내 동기들이 도착했다. 그러나 내 동기들은 고아원 침방에 짐만 풀고는 금방 어디로 놀러가버렸다. 그 추석에서는 수녀님만 남아 있었다.

수녀님은 침울하게 식은 송편을 정리했다. 송편이 그렇게 빨리 딱딱해 지는 줄을 그 때 알았다.

나는 뒤늦게 내 동기들에게 젤마나 수녀님이 송편을 준비했었다고 말을 했다. 다들 크게 미안해했다. 그러나 그 때의 수녀님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기억하는 사람은 나 뿐일거다. 그 뒤 아무것도 변한게 없으므로.

지금은 조금 알 수 있었다. 젤마나 수녀님은 고향이 없었을까? 송편을 준비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매일 아침 기도를 하면서 외롭지는 않았을까.

우리도 외로웠는데 왜 서로를 위로할 수는 없었는지. 딱딱하게 굳은 송편이 우리와 수녀님 사이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때가 늦어 다시는 돌이킬 수 없고, 온기조차 없지만 한 때는 따뜻했던..

#고아원

댓글 20

삼정KPMG · !*********

예전에 KBS 다큐에서 비슷한 내용 다룬거 봤었는데, 지금이라도 가끔씩 찾아뵙고 감사인사 드리면 더 좋을거 같다! 형도 착한 형같고..

NTS · 🥶********

지금도 찾아 봼?

천재교육 · i*********

집중해서 읽었어요ㅠ 쓰니님 남다른 환경에서도 멋지게 성장하신듯..특히 마음이 많이 성숙하신것같아요

아시아나항공 · 챠****

좋은 글 고마워 생각하게 해주는 글이다

크래프톤 · W*****

멋지네... 이런 감성을 가졌다는게. 소설인줄 알았네...

서울특별시교육청 · 진*******

자서전을 낸다면 읽어보고 싶은 글솜씨야

서울아산병원 · ;********

쓰시는 글 읽어보고 싶은데 글에 테그 걸어주실 수 있을까요?

한국전력공사 · m*********

여기 저도 있어영 읽고싶

KT · i********

우리도 외로웠는데 왜 서로를 위로할 수는 없었는지.....

현대두산인프라코어 · 보*********

이번 본문은 딱딱하게 굳은 더구나 차갑게 덩그러니 쌓여있는 누군가와 누군가의 연결고리 역활을 기대했던 그 송편이군요


온기와 딱딱함은 찜기에 한번 돌리면 돌아오지 않을까요?

사람관계도 그리 쉬운 방법이 있었으면 참 편할터인데 ㅡ

보통 익숙하다는 것은 또다른 익숙함으로 작동한다는 측면에서 우리 모두가 익숙함에 병적으로 집착한다면 세상은 익숙함이 신경질 나게 넘쳐나는것 아닐까요?

아항
그러면 찜통 제조사가 싫어할까요?

보령제약 · 배*******

나쁜 수산나 수녀님😠도 있었지만 따뜻한 젤마나 수녀님도 있었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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