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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원에서의 수녀님과 고아

삼성SDS · 그*****
작성일2019.11.10. 조회수3,006 댓글34

내가 미혼모의 자녀로 태어나 19년을 고아원에서 자라면서, 가장 정의하기 힘든 관계는 바로 수녀님과의 관계였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내게 수녀님은 자비로운 성모였고 잔인한 블러디 메리이면서 때로는 완벽한 타인이었다.

중국 극술의 한 종류인 변검술을 아는가? 그것을 보면, 단 1초만에 수개의 가면이 바뀐다. 그 광경을 성인이 되어 보게 되었는데 우습게도 나는 그를 보며 어렸을적 수녀님들을 떠올렸다.

우리 고아원은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으로, 8살 이전에는 한 보육사와 수녀님이 몇년을 한 아이를 기르다가, 그 아이가 8살이 되면 거대한 보육체계 안으로 밀어넣는 형태를 띄고있었다. 8살이 지나면, 매년 보육하는 수녀님이 달라진다. 한 수녀님이 담당하는 보육의 단위는 침방이었고, 그 침방의 이름은 수녀님의 세례명이었으며, 그 수녀님을 침방 수녀님이라 불렀다.

일반 사람들은 매년 양육하는 사람이 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모른다. 그것은 흡사 내 행동에 어떻게 대응할지 모르는 괴물을 대하는 느낌이었다. 누구는 즐겁게 떠드는 목소리를 기꺼이 여겼지만 누구는 방정맞다며 매를 들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구는 지나치게 조용해서 가족의 정이없다며 또 혼을 내는 그런 과정이었다.

그러한 과정을 겪으며 고아들은 할 수 있는 가장 무난한 행태를 배우게 되었다. 복종과 침묵이었다. 그렇게 있으면 어딜 가도 무난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설사 북쪽의 독재자에게 가더라도 목숨을 살릴 수 있는 비결을, 우리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배우게 된 것이다.

나는 개중에서도 빠르게 어른들께 복종하는 법을 알 게 되었다. 그랬는데, 어느 날 내 의지와 관련없이 어른들께, 수녀님들께 폐를 끼치는 일을 하고 말았다. 눈이 오는 날에 폐품장에서 어른들 몰래 폐지를 타고 놀다가 그만 발이 찢어진 것이다.

몹시 아팠지만 나는 되도록 감추려고 노력했다. 이 사건에 대해 추궁받는 것이 아픈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 의지와는 다르게 내 발은 참을성도 없이 피가 멎지 않았고 그를 곧 수녀님께 들키고 말았다.

나는 눈을 감고 벌벌 떨었다. 어쩌면 몹시 추워서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수녀님은 별다른 타박없이 나를 병원으로 데려갔고 의사와 몇마디를 나누다가 내게 물었다.

'괜찮겠니?' 나는 그 때 다른 걱정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때였고 뭐가 괜찮냐는지 몰랐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에 의사 선생님은 내 발을 소독한 뒤 곧바로 바늘로 상처를 꿰매었다.

솔직히 다쳤을 때보다 마취없이 꿰맬 때가 더 아팠다. 나는 눈물을 참지 못하다가 곁에 있는 수녀님에게 와락 안겼다. 수녀님은 아무 말도 하지않고 나를 힘주어 안았다. 고통 속에서 의사 선생님의 한 땀만 더 꿰매면 된다는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수녀님의 수도복에 눈물과 땀을 닦았다. 고통 속에서는 수녀님이 왜 나를 혼내지않는지, 언제 혼날지 하는 고민이 더 들지는 않았다.

병원에서 돌아온 뒤, 나도 수녀님도 변한 바는 없었다. 수녀님은 폐품장에서 놀면 벌칙을 내리겠노라 공표했고 나는 수녀님없이 병원에 가서 실을 뽑았다. 그 때가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다. 나는 그 기억을 언제부턴가 잃어버렸다가, 어느 날 발의 흉터를 보고 다시 떠올렸다.

그 품이 내 생에서의 가장 달콤한 한 순간이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아팠을 때, 혼이 날까 두려웠을 때, 그 대상으로부터 얻은 따뜻한 품에서.. 어쩌면 네가 앞으로 살 인생도 그러하리라는 것을 알려준 것이겠다. 고통속에서도 가끔 행복할 수 있으리라고. 수녀님의 가르침이었다.

#고아원

댓글 34

굿네이버스 · 이****

소설을 써보는거 어때?
단숨에 집중해서 읽음.....
살아온 인생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는 것
귀한 재능인거 같오

우리은행 · K*****

메리크리스마스 보냈어? 따뜻한 연말 보내길바랄게.

현대오토에버 · 🐂*********

힘내 횽 행복해야 해

코닝정밀소재 · x*********

형 아직도 블라에 있다면 1:1 좀 부탁해도 될까?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서…

공무원 · 공**

다른곳에서 님의 글 읽고 일부러 블라인드 가입함요. 저 시절 어린 원글님을 꼭 감싸주고싶어지네요. 아주 잘보고있습니다. 또 글이 올라오길 기다립니다.

공무원 · i*********

이분 글을 잘 쓰시네.. 얼마 전에 글 쓴 그분인듯

새회사 · i********

너무 늦게 읽었나봐요. 정말존경스럽규요. 남은생은 모두에게 존중받고 모두에게 사랑받으먀 늘 행복하시기를 바래고 또 바래봅니다. 행복하세요 :)

공무원 · 뜐*

어쩜 이리 덤덤하게 글을 잘쓰나싶어.
잘 지내지? 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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