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픽 블라블라

고아원에서의 집단광기

삼성SDS · 그*****
작성일2019.06.16. 조회수2,150 댓글14

어느날, 별거없는 초등학생 고아 몇 명 앞에 책임감이 투철한 교사가 무릎꿇고 빌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엄청나게 큰 일같이 느껴지겠지만 그 일은 같은 고아였던 내 귀에서만 크게 울렸고 곧 아무 일도 아니게 되었다.

그 선생님은 마산에서 온 마선생님이었다. 당시 마산은 매우 부자가 많은 지역이라 몹시 교육열이 높았는데
어떠한 사명감을 갖고 우리 시설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부임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시설은 원생들을 별도의 교육시설에서 교육을 받게 했다. 즉 전교생이 원생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된 이유를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일반 학교에 원생이 가면 원생들도, 해당 학교 학생들도
결코 좋은 꼴을 보지 못하리란 높으신 분들의 탄식이 있는 통찰력 때문이었다.

그 결과로 우리는 사회에서 고립되어 12년을 50여명의 같은 원생들로만 이루어진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그 50여명의 원생들이 신문기사에 실리는 눈물나는 가족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실제로 아동복지시설 원생들의 이야기는 가끔 신문에 실리기도 한다.
기자들은 아스팔트 사이에 나온 엉겅퀴도 영국식 정원에 핀 장미처럼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그 때 했다.
나는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와 더불어 집단의 광기를 보았다. 오늘은 이 광기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우리의 담임 선생님은 인상이 좋은 노선생님이었다.
이 선생님은 매우 너그러워 존경을 받았으며 목에는 하얀 알약이 들은 약통이 있는 목걸이를 걸고 다녔다.
그 약통에 무슨 약이 있었는지 몰랐다. 여름방학 중간에, 선생님의 부고가 전해졌을 때까지 우리는 아무 것도 몰랐다.
암으로 가셨다고 한다. 우리 담임을 맡았을 때 이미 말기라고 했다.

아이들은 갑자기 모두 엉엉 울었다. 나는 영문을 몰라 3층 침대 기둥에 기대어 있다가 왜 너는 울지 않냐는 동기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아니라고, 나도 이제 울거라고 대답했다.
도대체 왜 우는 것인지 모르지만 엉엉 우는 친구들을 보자니 나도 그 사이에서 어떻게든 우는 척을 하다가 눈물을 낼 수는 있었다.
나는 정말 친구들이 왜 우는지 몰랐다.

어쨌든 여름방학 중간에 우리의 담임 선생님은 교체 되었다. 어떻게 급하게 구했는지 마산에서 온 패기 넘치는 젊은 선생님이 부임하게 되었다.
마침 그 때 학교 건물을 이전하게 되었고 마선생님은 돌아가신 노 선생님의 물품이 남아있는 교실 물품을 정리하고 쓰레기통에 몇가지를 버렸다.
그 물품이 무엇인지 나는 기억을 못한다. 그러했다는 것 또한 사건이 벌어진 후 동기를 채근하여 알게 된 것이다.

노 선생님의 물품을 함부로 버렸다는 이유로 몇몇 고아들이 눈빛을 교환하고, 앙갚음이 시작되었다.
시작은 수업할 때 딴청을 피우는 것이었다. 시끄럽게 다른 이야기를 하고, 수업을 하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는 아이들은 십분지 일도 되지 않았다. 의욕적인 마 선생님은 그 때부터 상심하기 시작했다.

이후 선생님에게 반말을 하며 반항을 하는 아이들이 있고, 이를 나무라는 마 선생님을 대부분의 아이들이 무시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괴로워하며 번민하였다. 가여운 아이들을 잘 지도하리라는 그런 의욕이 없었다면 그런 괴로움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 선생님은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아이들이 자신을 알아주리라는 그런 희망을 갖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고..
그럴수록 고아들은 이 선생님은 괴롭히면 반응이 있다는 그런 재미를 얻고 더욱더 막나가는 비극이 시작되었다.
어느날은 이동수업이 끝나고 담임 교사가 들어오기 전 미닫이 교문에 막대기를 놓아 마 선생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마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오려다가 열리지 않는 교문에 당황하고 버둥대었다. 그런 선생님을 보고 고아들은 안에서 박장대소를 했다.
나는 그런 광경을 보다 못해 나를 흰눈으로 바라보며 잡는 내 친구를 뿌리치고 교문을 열어주었다.
마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왔지만 제대로 수업을 진행하지 못했다. 나는 그 이후로 동기들에게 은밀히 따돌려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 선생님이 의욕적으로 지도하고자 했던 고아 학생들에게 무릎 꿇기 며칠 전, 체육 시간 때 대다수의 고아들이 도망치고 남은 운동장에서 내게 물었다. 자신이 어떻게 하면 이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겠냐고. 나는 따돌림에 지쳐 비뚜름하게 대답하였다. 무릎이라도 꿇으면 되지 않겠냐고...

그리고 며칠 뒤, 마 선생님이 젖은 재생지 휴지를 칠판에 던지는 몇몇 아이들 중 대장격인 아이들을 교사실에 데리고 가서 무릎을 꿇고 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노 선생님의 물품을 함부로 대했다는 그런 이유를 내가 그 때 알았다면, 무언가 좀더 달라졌을까? 나는 그 소식을 들으며 동시에 다른 아이들이 왜 그렇게 마 선생님을 미워했는지에 대해 그 때서야 알게 되었다.

마 선생님은 그 날 이후 모든 의욕을 잃었다. 나에게 더이상 개인적으로 말을 걸지도 않았다. 우습게도 마 선생님이 의욕을 잃으니 더 이상 아이들과 마찰이 일어나지 않았다. 고아들은 본인들이 마 선생님에게 본 때를 보였다고 기세등등하였고 어쩌면 일종의 소시오패스였던 나만이 그 광기에서 쓴웃음을 지었다.

중학교에 진학해서 과 엄석대에 대해 배우면서 몇몇 아이들에게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이것을 읽고 생각나는 것이 있는지? 놀랍게도 누구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마 선생님 사건을 연결짓지 않았다. 몇몇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심지어 마 선생님과 즐거운 추억을 가졌노라며 길에서 만난다면 반갑게 인사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부자 동네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온 마 선생님은 그 이후로 무엇도 이루지 못하였고, 노 선생님은 여전히 고아들 마음 속에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생긴 집단의 광기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지금은 마 선생님을 만나면 눈물을 터뜨리며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당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고. 무릎꿇지 않아도 된다고....

#고아원

댓글 14

호텔롯데 · I*********

쓰레기들이 의욕 넘치던 젊은 선생님에게 큰 상처를 줬다

작성일2019.06.16.

LG전자 · !********

고아원 학교의 노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마선생님이 오심
마선생이 노선생 물건을 버렸고 12년간 같이 생활할 학생들은 이에 분노하고 마선생 괴롭힘
쓰니는 마선생 편 들다가 따돌림 당하고 마선생님과 따로 상담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하니, 선생님보고 애들앞에서 무릎꿇으라고 함
무릎꿇었고 마선생은 그뒤로 의욕상실

삼성전자 · 핸*********

ㄱㅅ

LG전자 · !********

본인이야기야?

삼성SDS · 그***** 작성자

내 이야기지

르노삼성 · 뭐*****

굳이 '고아원에서 좋은회사로' 라... 흐음.. 나만불편??

작성일2019.06.16.

전북은행 · 좋********

이게 그 댓글이구만.,

작성일2019.09.28.

삼성SDS · 그***** 작성자

첨언하자면 고아들에게 선생님들은 대다수가 악의 축이었음.. 툭하면 집단체벌을 주고 뺨을 때리고 인격모독을 하는 선생님도 있었지. 그 중 노선생님은 보기드물게 존경을 받는 선생님이었고 새로 온 마선생님이 어디에도 끼지 않았을 때 그 사건이 발생했어.

카카오 · f*****

초등학생때잖아. 너무 크게 이입하지 말아. 나 5학년때 담임 선생님이 장학사가 되시면서 새로운 선생님이 왔는데 그때도 저정도는 아니지만 비슷한 사례가 있었어. 그냥 좀 사회성이 제대로 확립되기전의 사람은 새롭게 변화하는것에 대한 반감이 좀 유벌나다? 과거로의 회귀가 곧 안정이라 믿는 동물적인 습성이 유전학적으로 남아있을수도 있다..? 뭐 이런게 아닐까싶어

NEXON · 코*****

이글 어제도 올리지 않았어?

삼성SDS · 그***** 작성자

ㅇㅇ술먹고 써서 올린거라 쓰고 잤는데 깨고보니 첨언하고 싶은게 있어서 다시 올림..

현대두산인프라코어 · 보*********

이번 본문에서 흉이 흉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생각하려 하는지) 어렴풋이 느껴지네요

비유하신 이문열(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ㅎㅎ)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의 비유도 인상적입니다

이번 본문의 몇몇 등장인물은 편의적인 과거의 기억 삭제나 유리한 해석이 비록 방어기제로 선해해도 깔끔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반면 지나친 자기검열도 그다지 비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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