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나에 대해 간략히 써보자면, 수녀원이 운영하는 고아원 산하의 미혼모 시설에서 태어나서 19년을 고아원에서 보낸 사람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성장기동안 일반적인 가족을 경험한 적이 단 한번도 없는 사람이다. 아니,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표현도 틀렸다. 나는 그냥 가족이란 걸 모르는 것 같다. 어떤 가족이 일반적인가, 아닌가 판단할 수도 없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우리에게도 가족 비슷한 것이 있었다. 우리 고아원은 수녀원이 운영했는데, 이삼십명의 동년배 아이들이 한 방에서 자랐고 그 방을 침방이라고 불렀다. 방을 담당하는 수녀님은 침방 수녀님이라고 불렀다. 다른 말로는 엄마 수녀님이라고도 했다. 자신이 생활하는 침방이 아닌 다른 침방을 담당하는 수녀님은 이모 수녀님이라고 불렀다. 나름의 가족이었다. 매년 엄마 수녀님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지금 와서도 왜 그랬냐고 묻고 싶은 것 중에 하나가, 매년 담당 침방 수녀님이 교체되는 것이었다. 엄마 수녀님으로 정이 들만하면 금방 이모 수녀님이 되고, 다른 수녀님이 엄마라고 왔다. 각 수녀님마다 훈육 기준이 달라 매년 힘들었고 연말에는 악명높은 수녀님이 담당 침방으로 올까봐 벌벌 떨었다.

그때는 그래도 그게 가족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가족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게 마음이 편하다. 삼일짜리 캠프 수련회를 가서 교관과 함께 있는다고 그 교관이 가족이 되는게 아니다. 나는 조금 긴 수련회를 매년 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19년의 긴 수련회를 수료하고 고아원 바깥에 나갔더니 직간접적으로 여러가지의 가족들을 보고 체험하게 되었다. 나는 책에서 보던 것과 다른 진짜 가족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책에서 보던 미화된 가족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점검도 했다. 그런데 그건 부질없는 걱정이었다. 내 환상보다 가족은 구질구질하고 예의없고 짜증이 잦았지만 그래도 끈끈하고 애정이 있었다.

그래서, 가족이란 무엇일까? 내가 지켜본 것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 서로 불합리한 행위를 해도 참아주기로 합의한 관계
: 돈을 빌리고 안갚거나 무전취식, 갈취 등 남들이라면 말도 안되는 불합리한 행위가 가족이라면 가능함.

- 가족이 아닌 사람보다 편애하기로 약속한 사이
: 가족이 아닌 사람보다 가족을 더 챙기고 편들어 주는게 당연함.

- 연장자에게 반말하거나 싸가지 없이 대하는게 가능한 곳
: 직장 상사나 옆집 사람에게는 꼬박꼬박 존댓말하지만 같은 집 사는 연장자에게는 반말하거나 터치하는게 자연스러움.

- 평화로울 땐 남들보다 못해보이고 어려워지면 갑자기 끈끈해지는 공동체
: 그렇지 못하면 원수가 되고 그렇게 되면 가족이 된다.

- 구질구질하고 질척함
: 제 삼자가 보았을 때 인간 쓰레기여도 끊어내질 못하고 그래서 가족이라고 한다.

정리하고보니 참 어렵다. 이래서 침방 수녀님들이 일년마다 바뀌는 걸까? 나는 가족을 가질 수 있을까? 나도 가족을 가지면 그렇게 비합리적이고 구질구질하게 되는걸까.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이렇게 묻는게 맞겠다. 나는 가족이 될 수 있을까.

#고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