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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F맨과 조별과제 이야기

작성일2018.11.05. 조회수691 댓글4

#이야기

대학로 한 구석, 후미지고 사람들의 인적조차 뜸한 그 곳엔 낡은 건물이 하나 서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어두운 기운이 충만하던 그 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끔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들은 그 곳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누군가는 그 곳을 세상의 끝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지옥이라고 불렀다.

얄팍한 호승심에 겁도없이 발을 들였다가 해가 뜨기도 전에 질린채 도망가는 자들도 있었고

혹은 아예 그곳에 자리를 잡고 눌러앉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그 곳의 주인들에 대한 괴담들이 학생들 사이에서 떠돌기도 했다.

분명 이름은 아는데 본 적이 없다.

분명 같은 수업을 듣는데도 본 적이 없다.

나는 같이 술까지 마셨는데 학교에서는 본 적이 없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불의의 사고를 당해 대학로 주위를 떠도는 원혼이라더라.

지박령이라더라.

라는 뜬소문들이 끊이지 않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수업에 열심히 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런 뜬소문은 조금 줄어들었다.

새 학기가 시작하고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친한 후배들은 연례행사처럼 신입생들을 데리고

내 자취방을 습격하고는 했다. 그리고는 집주인인 내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자리를 잡고 앉아 술을 마셨다. 내 자취방을 처음 방문하는 신입생들의 반응은

두가지였다. 마치 거대한 헌옷수거함 내부를 보는것처럼 대중없이 널부러져있는

옷가지들과 너저분한 잡동사니들이 사방에 널려있는 방을 보고 얼굴을 찌푸리고

그런 방 안에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내일이 없는것처럼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보며

질려버리는 부류가 첫번째였다. 보통 이런 신입생들은 적당히 자리만 지키다가

기회를 봐서 탈출하고는 했다. 이런 신입생들은 대부분 훌륭한 성적으로 졸업해 

대한민국 발전의 첨병이 될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이었다.

 

가끔 쓸데없는 오기를 부려 끝까지 자리에 남아있는 신입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금세 술에 취해 얼굴이 노랗게 떠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럴때면 

 

"호오.. 간수치가 올라가는군요?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제 간수치는 지방간입니다."

 

그러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꽁무니를 빼고는 했다.

 

또 다른 부류는 아무런 거부감도 없이 마치 제 집인양 자리를 잡고 앉아 쫓아낼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부류들이었다. 그런 신입생들을 보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이놈은 우리와 같은 부류구나. 대학교 6학년까지 다닐 놈이구나. 

어쩌다 우연히 졸업을 한다 쳐도 공기나 축내는 지구의 암덩어리가 될 확률이 8할 이상이구나.라고.

 

처음엔 누구에게나 열린 문이었던 내 자취방의 입장조건은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까다로워졌다.

기본적으로 학사경고 1회이상, 평균 평점 하위 3프로 이내, 간수치 상위3 프로 이내의 스펙과

지방간, 고콜레스트롤, 저혈당 보유자 우대 등  여러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거쳐야만

입장이 가능해졌다.

 

어느새 내 자취방은 평범한 대학생과는 조금 다른 친구들이 모이는 보금자리가 되어 버렸다.

나와 친한 후배들은 비록 공부는 못하지만 여러가지 특별한 능력들을 가지고 있었다.

밤새 술을 짝으로 마셔도 다음날이면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 처럼 또 술을 마시는

경이적인 숙취회복 능력을 지닌 술버린, 그 어떤 목소리라도 똑같이 복제해 대리출석

성공률 100프로에 달하는 대출틱, 아무리 수업을 열심히 듣고 공부를 열심히 해도 

성적은 F가 나오는 프로페서F 등등.. 온갖 쓰잘데기 없는 능력자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왜 많고 많은 후배들 중에 이런 인간쓰레기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만한 인재들만 

모여드는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봐도 도무지 답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오랜만에 다른 불청객없이 같이사는 친구와 나 둘이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다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당장 조별발표날이 얼마 안남았는데 머리를 텅 비운채 드라마를 보며 

낄낄대는 녀석과 자료를 모으는 대신 패드를 잡고 경험치를 모으는 내 모습을 보고 나서야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알파와 오메가가 여기 있었다. 그러니 추종하는 무리들이 모여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쓰레기 중의 쓰레기, 학과 최고의 원투펀치가 한 곳에 모여 살고 있으니 똥에 파리가 모이는 것처럼 

인재들이 모여드는 건 자연의 순리와도 같은 일이었다.

 

조별발표가 코 앞까지 다가와서야 우리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허겁지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그나마 친구와 나는 꼴에 선배라고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자료를 모으고 발표물을 만들었지만 후배들은 말 그대로 속수무책 이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다 모여서 긴급대책회의를 열었다. 파트를 분배하고 거기에 맞춰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뿔뿔이 흩어져 있으면 분명 준비대신 뻘짓거리만 하고 다닐게 불보듯 뻔했기에 우리는 다 같이 모여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자료조사를 시킨 후배들이 다 했다며 조사한 자료를 보여주었다. 

 

"벌써 다했어?"

 

"원래 하면 금방 해요. 우릴 뭘로 보고."

 

후배가 건네준 자료를 보고 내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 너 ... 이 개새퀴들.. 홈페이지 하나를 통으로 복사해왔네?"

 

"아니에요. 여기저기서 모은건데?"

 

"지랄마.. 그럴거면 여기 홈페이지 주소나 좀 지우고 가져오던가... "

 

결국 다시 처음부터 조사를 해야했다. 다시 모여서 자료를 모으던 후배들이 한참있다 조사한 자료들을 가지고왔다. 

달라진 점은 출처만 교묘하게 세탁했다는 점이었다. 친구는 포기했는지 체제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 안에서 

사육되는 짐승이 되지 않겠다며 걸그룹 뮤직비디오를 보기 시작했다. 대2병 증세를 보이는 친구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눈으로 나만 바라보는 후배들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술생각이 간절해졌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기껏 

모아놓은 자료를 이리저리 뒤섞어 버린 후배를 보고 다음 달 생활비는 그냥 합의금으로 퉁칠까 고민하다

이럴 때 일수록 채찍대신 당근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너무 열심히 할려고 하지마.. 너는 뭐랄까? 우리 팀의 콩팥과 같은 존재야. 내 말 무슨뜻인줄 알겠어?"

 

"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일한다는 뜻인가?"

 

"아니.. 너 하나 정도는 없어도 크게 지장 없다는 거지.. 그러니까 그냥 저기서 좀 쉬고있어."

 

다른 후배들이 낄낄대며 녀석을 비웃기 시작했다. 

 

"쳐 웃지마 이새끼들아.. 니들도 마찬가지야"

 

"왜요? 난 ppt도 만들어 왔잖아요! 아깐 잘했다면서요!"

 

한녀석이 대들었다.

 

"다른 애들에 비하면 낫다는 거지.. 너도 마찬가지야 이새끼야..너는 그러니까.. 음.."

 

"뭔데요? 나는?"

 "그래. 너는 그냥 딱 차오즈 정도? 그 정도 존재감? 안녕 천진반. 이 정도 임팩트랄까?"

 

이번엔 그녀석을 두고 다른 후배들이 비웃기 시작했다. 

 

"웃지마. 이 재배맨 새끼들아.."

 

결국 힘든 시간을 보내고나서야 겨우 모든 발표준비를 마칠수 있었다. 

발표를 마치고 나서 교수님의 얼굴을 슬쩍 살펴보니 쓸개라도 씹고 계신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레이저가 나올 것 같은 교수님의 눈빛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교수님은 우리가 깨라면 당장이라도 한 곳에 모아 절구에 넣고 갈아버리고 싶어하시는 눈치였다.

 

하지만 후배들은 조별발표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월드컵유치라도 한 것 처럼 얼싸안고 다함께 기뻐했다. 

그냥 내 업보려니 싶었다.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해 축배를 들던 후배들은 시험을 치지 못했고 결국 다 함께  F맨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댓글 4

볼보그룹코리아 · E*****

원작성자임? 이 글 스타일 굉장히 익숙한데ㅋㅋ왠지 예전에 한창 오유에 글써주시던 분 같은데

한전KPS · 영****

형소설꿀잼 다음편도 나오는거지?

LIG넥스원 · W*****

반전이 없어서 술프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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