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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삥뜯은 이야기

서울9호선운영 · l*********
작성일2018.10.25. 조회수643 댓글3

#이야기

"야.. 조용히 하고.. 잠깐 따라와라.."

"왜.. 왜요? 아저씨들 누구세요?"

상대는 어린 소년이었다. 교복을 입은걸로 봐선 중학생이나 되었을까?  

갑작스럽게 자기를 둘러싼 험상궃은 사내들때문에 놀랐는지 소년은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허.. 아저씨는.. 형이야. 에헤이. 자꾸 두리번 거리지 말고. 앞만 보고 걸어."

"야.. 친한척 해라.."

소년은 겁을 먹었는지 연신 마른침을 삼켜대고 있었다. 우리도 이렇게 까지 하고 싶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소년은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걸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우리는 그게 꼭 필요했다. 

이 모든 일의 발단은 나 때문이었다. 

그냥은 평일이었지만 우리는 아침부터 모였다. 

친구들의 연차 날짜가 겹쳐 우리는 오랜만에 모여 함께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밥을 먹고나니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이제 뭐하지?"

"글쎄.. 술이나 먹을까?"

"기껏 평일 낮부터 모여서 한다는 게 술이냐?"

"그럼 뭐 할건데?"

"..."

"날씨도 좋은데 공원이나 가서 광합성이나 좀 하다 오자."

따뜻한 햇빛이 내려쬐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완연한 봄날씨였다. 

우리는 동네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자전거를 타러 가기로 했다. 

그렇게 공원을 돌다 우리는 공원 한 구석에 있는 매점에서 커피를 산 후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는 다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아무말도 없이 의자에 몸을 걸치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일이 이렇게 될 걸 예상하고 있던 나는 가방에서 챙겨온 물건을 꺼냈다. 얼마 전에 방을 청소하다 발견한 큐브였다. 

늘어져 있던 친구들도 그걸보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너 그거 할 줄 아냐?"

"아니. 그래서 가지고 왔잖아."

이리저리 큐브를 돌려봤지만 별로 달라지는 게 없었다. 

친구들은 어느새 몸을 일으키고 큐브를 맞추는 내 모습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래가지곤 안될껄?"

"그냥. 돌리다 보면 언젠간 맞겠지."

"아냐. 그거 맞추는 방법이 있을텐데."

"퍼즐 쪼가리 맞추는데 뭔 방법이야. 그냥 돌리다 보면 되겠지."

하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쉽지가 않았다. 한 쪽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기껏 맞춰놓은 
다른 쪽이 틀어져 있었고 나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야. 그걸 거기다 맞추면 안되지. 돌려. 돌리라고."

"아니. 거기 말고 아오 이 병신아! 반대쪽으로 돌리라고!"

그렇게 무의미한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큐브를 만지작 거린지 삼십분이 넘게 지났지만 전혀 진척이 없었다. 

"아오 줘봐. 병신같은게 이거 하나 못맞추고."

그렇게 호기롭게 큐브를 뺏어간 친구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큐브를 이리저리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놈도 나와 별반 다를건 없었다. 결국 친구는 큐브를 잔디밭에 내던져버리고 말았다. 

"모자란 새끼들.. 그렇게 무턱대고 돌린다고 되니 그게? 생각들을 좀 해라 생각들을."

녀석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테이블 가운데 큐브를 올려놓고 노려보기 시작했다. 

"...어떻게 맞추는 건지 인터넷으로 좀 찾아볼까?"

하지만 우리의 자존심이 그걸 허락치 않았다. 

"시바. 우리 셋이 합치면 백살이 넘어. 이거 하나 못맞춘다는게 말이 돼?"

"인류는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아 이새끼야."

이제 더이상은 단순한 퍼즐맞추기가 아니었다. 인류와 과학기술간의 대결이었다. 
그렇게 인간과 알파큐브의 대결은 공원 한 구석 테이블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 어떤때보다 진지한 모습으로 큐브를 맞춰나가기 시작했다. 한 번 움직이고 나면 다같이 머리를 맞대고 
다음 수에 대해 토론을 했고 열띤 토론 끝에 합의를 마치면 다시 큐브를 움직였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가 흘렀다. 

큐브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한시간도 채 못지나 특이점이 오고 말았다. 
이미 술담배에 쩔어버린 우리들의 머릿속엔 더이상 창의성이나 응용력 따윈 남아있지 않았다. 
머릿속에 든거라곤 그저 불어터진 우동사리 세그릇에 불과했다.
결국 참다못한 친구녀석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이 시바 도저히 못참겠어. 이거 어떻게 하는거야?"

"그래.. 찾아봐라. 대신 이것만은 알아둬. 우리가 진게 아니라 니가 진거야."

한참동안 핸드폰을 뒤적거리던 친구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탄식을 내뱉었다. 

"아 이거 맞추는 공식이 있네!"

공식!..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단어였다. 
공식이라는 단어를 듣자 나도 모르게 손이 덜덜 떨리고 식은땀이 나는 기분이었다. 

나에겐 아련한 추억속에만 남아있는 단어였다. 
중학교 이후로는 공식이라는 것과 담을 쌓고 살았기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사칙연산 외에는 아는 공식이 없던 나였다. 그 사칙연산 마저도 완벽하게 마스터 했다고 감히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고.. 공식? 난.. 문과라... 좀 그렇네."

친구는 큐브를 집어들더니 핸드폰을 보면서 큐브를 이리저리 맞추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몇시간 동안 붙잡고 씨름을 해도 맞춰지지 않던 큐브의 색깔이 조금씩 맞쳐줘가기 시작했다. 

"일단 십자가 모양으로 맞추고.. 그 다음에 한쪽 면을 맞추면.."

마침내 한쪽 면이 완성되었다. 우리는 얼싸안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이 큐브를 완성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어느새 아랫쪽이 완성되었다. 이제 맨 윗면만 맞추면 끝이었다. 
친구는 핸드폰과 큐브를 번갈아 바라보며 큐브를 붙잡고 돌리기 시작했다. 

"이제 이것만 돌리면... 짠!"

".. 안맞네."

"안맞잖아 이새끼야!"

위쪽까지는 맞았지만 코너의 색깔이 틀렸다. 맞추는 과정에서 뭔가 착오가 있는 모양이었다. 

"어.. 이게 왜 이러지?"

당황한 친구는 다시 한번 큐브를 붙잡고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야!"

급하게 돌리다 순서를 틀렸는지 거의 다 맞춰놓은 큐브는 다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모든게 원점이었다. 다시 한 번 차근차근 설명을 보고 맞춰보았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친구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으아아아아아! 왜! 왜! 왜! 안맞는거야!!!!"

친구가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다른 녀석은 조용히 일어나 자전거로 향했다. 

".. 잠깐 달리고 올게. 달려야 할 것 같아."

그러더니 미친듯한 속도로 공원을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이 아비규환 속에서 나는 조용히 앉아 큐브를 노려봤다. 
잠시 후 저 멀리서 친구가 돌아오는게 보였다.
도착한 친구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무릎에선 피가 뚝뚝 떨어졌다. 

"야.. 니 왜그러냐?"

"요 앞에서 자빠졌다.."

자리에 앉아서 한동안 말이 없던 친구가 입을 열었다. 

"...부수자."

"뭐?"

"부수자고.. 부수고 색깔 맞춰서 다시 조립하자."

"너.. 이.. 콜롬버스 같은 새끼. 그런 방법이 있었어?"

기껏 한다는 생각이 그딴 생각이라니. 친구의 머리통을 달걀 모서리처럼 꺠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분해와 재구축이 세상의 이치 아니겠냐.."

"너.. 진리를 봤구나."

무릎팍을 통행료로 내주고 큐브의 연금술사로 다시 태어난 친구는 큐브를 집어들어 분해하려고 하기 시작했다.
그런 친구를 뜯어 말렸다. 그런 편법으로 큐브를 완성한다면 더이상 문명인으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둘러앉아 큐브를 맞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큐브는 완성되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더 흘렀을까. 조용하던 공원은 어느새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수업시간이 끝났는지 교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야."

"왜?"

"쟤들은 이런거 잘 하지 않나?"

"누구?"

나는 돌아다니는 학생들을 가리켰다. 

".. 우리보단 낫겠지?"

내 의중을 파악했는지 친구들도 고개를 들어 지나다니는 학생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친구가 그 중 한명을 지목했다.

"쟤 어때? 좀 똘똘해 보이지 않아?"

친구가 지목한 학생은 딱 봐도 우리와는 달리 총명한 기운이 감도는 아이였다. 안경을 쓰고 한 손에는 책을 들고 
길을 가고 있는 그 아이를 우리는 유심히 살펴봤다.

"그러게."

"가자."

우리는 조심스럽게 그 학생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그 학생을 둘러쌌다.  
그리곤 그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야. 바쁘니?"

"저.. 저요?"

"그래 너."

인상을 잔뜩 쓰고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사내들을 본 그 아이는 겁이 난 모양이었다. 
우리는 가까이서 그 아이를 살펴봤다. 

"지.. 집에 가는데요. 왜요?"

"아니 잠깐 형들 좀 볼까?"

친구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야. 너 지식좀 있냐?"

"... 예?"

"뭐야. 들고있는 건. 어이구 정석이네. 우리가 제대로 골랐네."

"여. 정석이야? 정석 좋지.. 집합, 교집합 뭐 그런거 아냐? 낄낄"

내가 아는 정석의 전부였다. 

"잠깐 형들이랑 얘기좀 할까?"

결국 우리에게 붙잡혀 긴장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그 아이에게 우리는 큐브를 내밀었다. 
그 아이는 벙찐 표정이었다.

"너.. 이거 할줄 아냐?"

".. 큐브요?"

"그래."

"..네."

마침내 우리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진짜? 그럼 좀 알려줘봐."

"뭐 마실래?"

"잠깐만 있어봐 마실거 사올게."

하교길에 의문의 30대 남성들에게 붙잡힌 그 아이는 느닷없이 큐브 강의를 해야했다. 

"그래. 거기까진 알겠어. 근데 그 다음에 안맞는단 말야."

"아. 이거요? 이거 옆에 조각이랑 색깔을 맞춰야 되요."

"..! 아 그거였어!"

마침내 우리는 우리의 실수가 뭔지 알 수 있었다. 

그 아이는 우리가 몇시간 동안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도 풀 수 없었던 미스테리를 단번에 해결했다. 

그 아이가 떠나고 난 후 우리는 그 아이가 알려준 대로 큐브를 맞추기 시작했다. 

해가 질 때 쯤, 우리는 큐브를 부수고 다시 조립했다. 

중학생의 지식을 삥뜯었지만 남는게 없던.....

댓글 3

POSCO · 핑********

아재들요 ㅠㅠ

코리아세븐 · 상*********

친구들끼리 쓰레기같이 시간 보낼 때가 제일 즐겁다 ㅋㅋㅋㅋㅋㅋ

스태츠칩팩 · i*********

글 재밌게쓰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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