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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레슬링에 관한 그 여자와 추억 이야기

작성일2018.10.30. 조회수632 댓글6

#이야기

어린 시절, 나는 만화영화를 빼면 딱히 TV를 볼 일이 없었다. 지금처럼 케이블이 있던 때도 아니었고 

공중파와 EBS,AFKN이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TV를 보던 내 시선은 평소라면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AFKN채널에 고정되어 있었다. 낡은 브라운관 TV안에선 사각의 링에서 근육질 남정네 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게 나와 프로래슬링의 첫 만남 이었다. 그 후로 나는 프로레슬링에 푹 빠져버렸다. 

얼마 지나지않아 내 주변친구들 사이에서도 프로레슬링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항상 쉬는시간이면 우리는 어제 본 레슬링 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 때 우리들 사이에서 자주 일어나던 논쟁은 단연 '누가 가장 강한가?' 였다. 

그럴때마다 빠지지 않고 항상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은 헐크호건과 워리어였다. 

항상 우열을 가릴수 없을정도로 치열한 논쟁이 오고가고는 했다. 가끔은 마초맨이라던지 

달러맨, 스네이크등 다른 인물들을 거론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실제로 빅풋과 레그드롭,

워리어 스플래쉬를 당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꽁무니를 빼고는 했다. 

가끔 레슬링 기술을 쓰면서 놀기도 했는데 맨땅에서는 기술을 쓸수가 없기에 우리가 주로 이용하던 곳은 

퐁퐁장이었다. 퐁퐁장에서 레슬링을 하다보면 꼭 스프링에 머리카락이 끼는 친구들이 생겼는데 가끔은 머리카락이 한웅큼씩 

빠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매일같이 새로운 기술을 연마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 기술의 주된 희생자는 바로 내 동생이었다. 혼자 잘 놀고 있는 동생에게 기습적인 해머링이나 드롭킥을 날린다거나,

각종 서브미션 기술들로 탭을 받아낼때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물론 마지막은 항상 동생의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엄마에게 릭플레어에 버금가는 강력한 찹을 맞는걸로 끝이었다. 아직도 내 몸에 남아있는 상처들 대부분이 그 때 동생이 할퀸 상처들일 정도로 

격렬한 하루를 보내곤 했다. 워리어 빠였던 나는 항상 줄만 보면 흔드는 습관이 있었다. 가끔 레슬링 혼이 끓어오를때면 옥상으로 올라가 

옥상에 걸려있는 빨랫줄을 잡고 흔들고는 했다. 그럴때마다 엄마가 널어놓은 빨래들은 그대로 땅바닥에 곤두박질 쳤고 또 강력한 찹을 맞아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쉬는 시간에 어떤놈이 

"야!! 워리어 죽었대!"

"진짜?"

...... 난 녀석들의 멱살을 쥐어잡고 

"내 영웅을 모욕하지마.. 워리어는 죽지 않아.. 워리어는 죽었는가.."

"뭐.. 뭐.. 야 이새끼...!!"

"대답해 !!!!! 워리어는 죽었는가!!!!!"

"아이.. 씨... 씨.. 친구가 알려줬어. 알통 터져서 죽었다고.."

"워리어는 죽었는가!!!"

"아.. 아.. 안죽었어!! 그래 안죽었어!! 이.. 이것좀 놔줘.."

교무실로 달려가서 담임에게 말했다. 

"조퇴시켜 주세요. 미국으로 가야겠습니다."

"이게 미쳤나.. 넌 오후반인데 왜 오전부터 학교에 나와!"

"당신.. 잘들어.. 워리어가 죽었어.. 미국으로 간다."

교무실 문을 박차고 나오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집에 와서 울면서 빨래줄을 흔들었다. 

지랄같이 더운날씨도 오늘은 고맙더구나. 

눈물인지 땀인지 사람들은 모를테니.. 

하..... 야속한사람.. 

뭐... 물론 루머였다. 지금은 정말 고인이 되긴 했지만.. 그 때 한창 워리어가 알통이 터져 죽었다는 루머가 돌았고 

어린 마음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레슬링은 그냥 쇼라는 이야기가 퍼지고 레슬링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어느순간부터 나도 레슬링을 보지 않게 되었다. 

내가 다시 레슬링을 보게 된것은 대학교에 들어간 후였다. 어느순간부터 케이블에서 레슬링 방송을 중계해주기 시작했고 

나는 다시 레슬링을 보게 되었다. 그 시절엔 더락과 오스틴이 한창 활동하면서 다시금 레슬링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 때 레슬링은 약간 매니악한 취미에 가까웠다. 사람들에게 레슬링을 본다고 하면 그거 짜고 치는거 뭐하러 봐? 이런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 남자들은 그나마 보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지만 레슬링을 좋아하는 여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집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레슬링을 보고 있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다며 

오라는 친구의 말에 나는 술집으로 향했다. 술집에 도착하니 이미 술자리가 한창이었다. 그런데 낯선 얼굴이 보였다. 처음보는 여자였다. 

"왜이렇게 늦게 왔어. 인사해. 내 친구야."

"아.. 안녕하세요."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한참 술을 마시고 있는데 친구가 물었다.

"뭐하고 있었냐?"

"나? 나 집에서 레슬링보고 있었는데."

그러자 말없이 어색하게 앉아있던 그 여자가 반색을 하며 물었다. 

"레슬링 좋아하세요?"

"네? 아.. 뭐 가끔 보는데.. 레슬링 보세요?"

"네! 저 엄청 좋아해요!"

레슬링을 좋아한다니.. 보기드문 취향은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 갑자기 이 여자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레슬링 얘기를. 그것도 여자와 할 수 있다는 건 흔치않은 일이었다. 어느새 우리는 나란히 앉아 레슬링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오스틴을 좋아한다던 그 여자는 주변에 레슬링을 보는 사람이 없어서 얘기할 기회가 없었다며 즐거운 표정으로 쉴새없이 떠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들떠서일까 평소보다 과음을 해버렸고 결국 

술자리가 끝나갈 때 쯤 내 필름도 끊어져 버렸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우리집이 아니었다. 친구네 자취방이었다.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 본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 옆에서 그 여자아이가 

뻗어서 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친구들도 바닥에 널부러져 자고 있었다. 술병이 지저분하게 널려있는걸로 봐선 

친구네 집에 와서 또 술을 마신것 같았다. 숙취에 머리가 띵했다. 그리고 나서 정신이 조금 돌아오니 갑자기 턱에서 통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뭐지? 누구한테 맞았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 여자아이가 깨어났다. 

"아.. .머리아파.."

"야.. 괜찮아?"

"엉덩이 아파.."

... 뭐지 이 상황은.. 어제 처음보는 여자와 한 침대에서 일어났는데 여자는 엉덩이가 아프다고 하니 온갖 부정적인 생각에 머릿속을 뒤덮었다. 

그 여자애도 필름이 끊긴건지 술집에 나오고 나서부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이 하나 둘 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먼저 집에 간다며 여자애가 집을 나선 후에야 난 친구에게 물어봤다. 

"야.. 어제 나 뭐 실수했냐?"

"...."

친구는 말이 없었다. 친구를 재촉하니 친구는 그제서야 입을 열였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술집에서부터 나올때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둘이서 계속 얘기를 하면서 웃길래 뭔가 둘이 분위기가 좋구나.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는데 술집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둘 사이에 언성이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 여자애가 나에게 중지를 들어올리고는 내 배를 걷어차고 얼굴을 감싼채로 주저 앉았다고 했다. 

그제서야 난 턱에서 느껴지는 고통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스터너..."

어제 처음본 여자가 나에게 스터너를 날린 것이었다. 그것도 길바닥에서. 

나중에 알고보니 그 여자가 나에게 스터너를 날린 이유는 내가 오스틴보다 락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 핸드폰에 그 여자 이름은 '스톤콜드 스티브 미친년'으로 저장되었다. 

그 후에 우리 사이엔 약간의 핑크빛 기류가 흐르는 듯 했으나 그 후에 친구네 집에서 술을 마시다 그 여자애가 나에게 

크로스라인을 날리고 분을 못이긴 내가 앵클락을 시전한 이후로는 우리는 친구로 남게 되었다.

댓글 6

디에스멘토링 · 사****

그래도 병원신세 아닌게 어디야

삼성전자 · 엄*******

워리어 나오고 오스틴 나오는거 보니 내 또래네ㅋㅋ ㅎㅎ 재밌었어ㅋㅋ

SK · T******

링이 아닌 다른곳에서 겨뤘어야지

현대모비스 · i********

재밌게 잘 읽었어 ㅋㅋㅋㅋㅋ 좋아요 꾹

한국전력기술 · ㄱ******

옆기적인 그녀 3편 찍어 이걸로

에어부산 · 마****

난 락 빠였는데 지금 인스타 팔로우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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