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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중반. 평범하게 살고싶은 아빠의 이야기

공무원 · i*********
작성일2023.05.12. 조회수2,104 댓글30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그 집마저 찢어져버린 그런 가정에서 살았다.

요즘같은 시기에 먹을거리가없어 전기수도가 끊기고 끼니를 거를정도로..

지금와서 어렸을때 행복했던 기억을 생각해보자면 딱히 기억나는게없다. 그나마 하나있다면, 동네 친구들은 다들 유치원을가서 5시나되어 집에오면 나는 같이 놀친구가없어서 혼자 동네에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시간을떼웠다. 엄마에게 유치원을가고싶다고했는데 혼난 뒤로 말도 못꺼냈다.

그러다 7살때 처음으로 OOO선교원이라는 곳에 같이 운영하는 유치원? 유치부 그런곳에 가게되었고 너무너무 행복해서 집에서 방방뛰었던 기억이있다. 그마저도 여름에 그만뒀지만.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를 가게되었고 매일 5시반까지 남아서 교실에서 책도읽고 밀대걸레를들고와서 교실 바닥도 닦고 시간을떼웠다 이러면 선생님이 칭찬해주셔서 기분이 좋았으니깐. 어느 누구도 나에게 그런 따뜻한 말을해주지않았으니까.
어차피 집에가면 화나있는 엄마와 같이 놀 친구들도없었으니까.

친구들은 태권도다 속셈학원이다 가는데 나도가고싶었지만 말꺼내면 또 욕하고 혼나니깐 학교 교실이나 도서실에남아 시간을 떼우다 집에갔다.

그때 담임선생님 성함이 아직도 기억이난다. 어느날은 300원을주시며 집가는길에 맛있는거 사먹으라고하셔서 150원짜리 쥐포 두개를 사먹고갔다.

누나는 중학교까지갔다가 학비감당이안되어 고등학교는 산업체연계고등학교로 진학해서 주간에 일하고 야간에는 공장에서 일했다.

나는 그때 초등학생이었는데 누나는 일요일마다 통닭을 사들고 집에왔고 그날이 배도 채우고 맛있는것도 먹을수있는 최고의 날이었다. 매주 일요일마다 누나를 기다리다가 한주라도 안오면 누나가 밉다며 울곤했다.

언젠가 일요일 누나가 오는날이었다. 누나가 내 옷을 사왔는데 노랑색 빨간색 알록달록한 셔츠였다. 왜인지는 기억이안나지만 엄마가 마당에서 불태우고 버려버렸다 누나는 그러지말라고 울고불다가 집을 나가버렸고 그뒤로 한동안 누나는 집에오지않았다.

나는 그날 너무 무서워서 누나가 간뒤로 엄마에게 또 맞을까봐 혼날까봐 이불만 뒤집어쓰고 자는척했던 기억밖에없다.

초등학교때 불우이웃돕기 성금을한다며 모금을한다길래 아빠에게 말했더니 우리가 불우이웃인데 누굴돕냐며 돈을 주지않는 아빠가 너무 원망스러웠고 울고불며 친구들은 다내는데 나만안내면 부끄럽다며 학교에가지않겠다고했다.

그렇게 아빠가 백원을줬고 친구들은 천원씩가져오는데 나혼자만 백원을 내는게 부끄러워 저금통을 보이지않게 가리고 오백원이라고 속였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오면 엄마는 날마다 화가나있었고 아빠는 밤 늦게나되어서야 집에왔다. 항상 두분은 욕하고 소리지르며 싸우셨고 형과 나는 숨죽이며 이불속에서 자는척만했다.

누나가 너무 부러웠다. 집에서 엄마 아빠가 싸우는걸 안봐도되고 괜히 엄마에게 또 혼나지않아도되니까. 나도 빨리 누나같이 중학교가서 공장에가고싶었다.

어느날은 엄마랑 아빠가 아침부터 나가더니 점심 넘어 집에왔다 또 싸울줄알았는데 그뒤로 아빠는 집에오지않았다. 이혼을했다고했는데 나는 그게뭔지몰랐다. 괜히 물어보면 또 혼날것같아서..

그뒤로 나는 엄마랑 살다가 어느 여름날 태풍이 세게와서 동네에 물이 차고 홍수가났는데 난 자고있다가 아빠가 갑자기 집에와서 나를 업고 형고같이 나갔고 마을에 둑이있는데 동네 사람들이 다들 모여있던 기억이난다. 그때 아빠에게 업혀가며 아빠가 소리지르며 나가자고했는데 엄마는 나가지않았다.
밤에 밖에서 돌아다니다니,, 무섭다기보다 신기했던 기억이다.

그렇게 아침이되었고 집에가니 진흙물이 집에가득찼는데 엄마는 혼자 그렇게있었던 기억이난다. 왜그랬는지 그때는 몰랐다. 삶이힘들었을까....

그뒤로 나는 아빠와살았고 1년뒤 다시 아빠가없을때 엄마가와서 날데리고가고.. 나는 초등학교때 4번 전학을다녔다. 그렇게 어느날은 엄마와 어느날은 아빠와살다가 엄마랑 연락이 끊겼고 아빠와 쭉살게되었다.

아빠는 휴대폰 전화가오면 받지않았는데 한번은 전화가 계속와서 너무 시끄러워받았다가 고려신용정보라는 곳에서 아빠를 바꿔달라하여 드렸고 그뒤로 욕을 먹고 혼난 기억이있다.

그뒤로 중학교를갔는데 난 왕따를당했다

왜 당했는지는 잘몰랐었다. 그래서 기억을.. 하고싶지가않다.

중학교때 학교에서는 왕따를당하고 집에서는 형에게 맞으며 지옥같은 나날을보냈다.

죽고싶었다 아파트 옥상에서 뛰면 아플까. 손목을 그으면 아플까. 그만살고싶었다 어디에도 마음편히있을곳이없었거든.

마지막 심정으로 담임선생님을 찾아갔고 선생님에게 그간의 일들을 말씀드렸다.
죽고싶어요 선생님.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고싶어요.

선생님은 태연하게 아니 차분하게 나에게 너가 죽으면 너희 누나 형 부모님 가슴에 내 가슴에 대못을 박는거야 너무 슬플거다. 라고 말하셨고 부모님은 별로 신경이안쓰였는데 선생님과 누나가 마음에 너무걸렸다. 누군가에게 내가 소중한 존재였던가?

그런일이있고 선생님 메일로 고민이있으면 편지를보냈고 선생님은 항상 장문의글을보내주셨다. 항상 마지막엔 응원한다 ㅇㅇ아.

선생님의 메일이 계기였을까 그뒤로 (나의 삶, 나의 인생)이라는 책을 우연히 읽게되었고 그 책을 완독한뒤로 아무 의미없던 내 인생에 계획이란걸 새우고, 희망이라는것도 가져봤다.

그렇게 실업계 진학 후 5시에 학교가끝나면 18시부터 23시까지 주유소에서 시급 2450원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했다 미성년자라 그런건지 그때는 최저시급이 3300원이었는데, 그래도 내가 돈을 번다는게 너무 행복했다.

그에반해 학교성적은 중위등급이었고 고졸특채 대기업은 갈수가없었다. 그렇게 또 성적에맞는 대학 간호과에 취업이 잘된다하여 입학했다.

대학간뒤로는 친구들이 술먹고 놀러다니고할때 공장에서 편의점에서 주말알바하며 월요일 학교가고 그래도 점심값 과비가 커버가안되서 대학풀학기 학자금생활비 대출을받았다.

ㅇㅇ대학병원 응급실에서 3년반을 일하고 27살. 학자금대출 3500을 다 갚았다.

남자로서 간호사에 개인적으로 비전이없어 소방공무원 구급대원 이직을 위해서 무작정 퇴사. 주변에서는 어떡하려고그러냐 좋은대학병원 직장관두고 공무원시험 떨어지면 계획은있냐고그런다. 물론 지금와서는 그런 모험을하진않겠지. 근데 잃을게없으니 겁도없더라.

아침7시 독서실 밤12시 집. 5개월을 휴대폰도 끊고 공부만했다. 합격... 정말 얼마나 울었는지 지금것살면서 처음으로 소리내어서 울어본것같다.

공무원 임용교육이 끝나고 1년반이지났고 원룸 500/30에서 1500/15로 옮겼다 조금씩 술도마시고 여자친구도 사귀고 놀았다. 나같은 폐급인생도 조금씩 숨통이 트이는구나.

30살이되어서 대출을 풀로 땡겨서 전세8000 1.5룸 빌라로 이사를했다. 쇼파도사고 가구도 몇개샀다. 정말 기분이좋았다.

그런데 어느날 부모님이 기초수급자가 탈락이되었다고 생활비를 60씩주라고하신다. 사유는 자녀의 수입증가.. 동사무소에도 구청에도 전화해서 지금까지의 예기를 사정을해도 안된단다. 정책이 그렇다고.

부모님이 나에게해준게뭐냐고 어렸을때 때리고 욕만하지않았냐고 학비한번을 지원해줬냐고 원망도했지만 가족의 연은 끊을수가없더라. 당장 부양을 못하면 그래도 내 부모가 살아갈수가없으니... 나가서 일이라도하시라고해도 자기는못한다고... 정말 원망도많이하고 소리도질렀는데 아마 나는 불효자로 천국못갈것같다.

어느날부터 밤에 잠이안온다. 그러게 며칠 몇주 두어달이되서 안되겠다싶어 불면증클리닉에갔는데 정신과상담을해보랜다.

내가? 왜? 정신과를 왜?

계속 고민하다가 어렵게 정신과 진료를받고 상담을했는데
의사의 질문에 대답만했을뿐인데..

어떻게 살아왔어요? 어렸을때 행복했을때가 언제인가요?

네? 저는...
어떤 대답을해야하는지 생각이안났다

행복했던 기억 하나 말해보세요

..... 저는 행복했던 기억이 없습니다

왜 대답만했는데 나는 오열을했을까.
내 눈에 눈물이 그렇게 많은지 그때 처음 알았다. 그래도 속은 시원하더라. 이런저런 심리검사도해보고 나온 결과는 우울증.

어렸을때 살아온 환경에서도 그렇게 울어본적없는 나인데 그 얼마간 날마다 울었던 것 같다.. 차에서도 울고 출근전에도 울고 신호대기하다가 울고 그냥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나 열심히 살았는데 정말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싶어서 열심히 노력했는데 결국에는 정신과 환자에 약먹는 인생이라니, 너무 억울하고 슬펐다.

그렇게 몇날며칠 울기만했다. 그러다 이렇게살면 안될것같아서 의사가하라는데로 약도먹고 운동도하고 바람도쐬고 ...어느새 약도끊고 다시살아지더라.

그렇게 또 몇년 후 같은 직장의 지금 와이프를 만났다.
자상하고 항상 밝고 싱글싱글 웃는 우리 와이프.

나는 항상 조급하고 말투도 쌔고 공격적인데..
우리 와이프는 나랑 정반대의 사람이다.

와이프와 연애를하며 내 치부같은 이런 이야기를 도저히 할수가없어서 꼭꼭 숨겼는데, 우연히 어렸을때 이야기를하다가 이런 기억들을 말하고말았다.

와이프가 도망갈까 무서웠다. 우리 와이프는 사랑한다고 말도할줄알고 부모님도 깍듯이 챙기는 전형적인 사랑을 받아본 친구였기에. 나는 그와는 전혀 다른삶을 살았기에.

와이프는 그냥 내 손을잡아주고 고생했다고. 그 이야기를해주더라.

그렇게 연애를하며 싸우기도하고 화해도하고 그러다 결혼도했다.

서로 형편이 좋은 가정은아니고 직장만 번듯한 물론 여기 형들같이 대기업 수준의 연봉은 아니어도 둘이서 1억은 찍는 수준이되는 정도.. 양가 지원없이 오로지 우리 대출로 결혼도하고 집도 전세로 구했다.

결혼식날 누나가 엄청 울었다. 나도 울고. 왜이렇게 울기만했을까ㅎㅎ

신혼에 없이 시작해서 우리 5년만 고생하자.. 그렇게 시작해서 이제 집도사고 와이프 차도 뽑아주고 똥가방도 사주고.. 와이프는 가방 필요없대놓고 사주니 너무 좋아하더라ㅎㅎ

어제는 어버이날이라 엄마와 밥을 먹고왔다.
나랑 엄마는 서먹서먹한대 와이프는 계속 엄마를 챙긴다.
와이프에게 미안해서 내가 알아서 챙긴다고 그만하라고하는데도
서글서글 엄마를 챙긴다.

엄마도 이제 꼬부랑 할머니가되었더라 어렸을때는 그렇게 힘세고 무서운, 화나면 때리던 엄마였는데....

누나랑 엊그제 통화를했다

'누나 자식을 나으면 부모 마음을 이해한다잖아. 우리 아들키우면서 힘들기도하고 행복하기도한데 부모 마음이 이런건가싶네.
근데 엄마아빠는 이해가안돼. 누나는 이해해?'

'그러게 나도 그건 이해가 안되긴해. 근데 엄마아빠도 처음부터 그랬을라고.. 살기힘드니까..'

가끔씩은 두렵다. 지금의 생활이 갑자기 끝나버리지않을까? 내가 이런 삶을 살아도될까?

퇴근하고 자고있는 와이프와 우리 아기를보면 매일 꿈만꾸는 것 같다.

부디 다른사람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나한테도 계속되었으면..

긴글 미안해요... 주저리 주저리... ^^;

P.s 고등학교때 저를 잡아주셨던 김ㅇㅇ선생님 지금은 교장선생님이되셨더라구요. 선생님 덕분에 저 정신 바짝잡고 이렇게 여기까지왔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선생님..

학생 가르치시는 교사선생님들 존경합니다

댓글 30

다이슨코리아 · c*********

정독했어요 강하고 멋진 분이네요 계속 인생에 꽃길만 가득하고 행복한 가정이시길 바래요!!

현대모비스 · j*********

많이 울었네.
꽃길만 걷자.
일단 사람이 너무 목표도 있고 심성도 좋아서 잘 될거야.

한국종합기술 · 기*********

행복한 가정가꿔가세요!!

그 과거를 거름삼아 더 높이 더 멀리 나아갈거예요!!

LG이노텍 · x*****

지금부터는 더더더 행복하실거에요!!
힘들겠지만 과거는 가슴에 묻어두고,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가세요!!
화이팅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 v*****

당신이 만든가족 (아내분 자녀분) 잘해주세요 행복하게해주세요 그리고 당신도 행복하세요 진심입니다 사랑합니다 (종교인아닙니다 ㅋㅋ)

홈플러스 · 애*

저도 참힘들게 살았는데 대단하시내요 항상 행복하시길!

한국MSD · J*****

가슴이 따뜻해지네. 멋지다 형

공무원 · l*********

행복하세요.. ㅠㅜ

LG디스플레이 · 러**

수고하셨고 대단하십니다. 늘 행복하세요.

스타트업 · i********

고생했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행복하고 좋은일만 가득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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