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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J 여자 개발자의 토요일 일탈 기록

삼성SDS · 그********
작성일2021.12.18. 조회수2,663 댓글16

정밀하고 훌륭한 기계장치도 너트를 풀고 기름칠을 하는 유지보수 기간이 필요히다. 철없던 과거에는 인간에게도 그런 유지보수 기간이 필요함을 간과했지만 나는 이제는 성숙한 인간, 유지보수의 필요성을 통감하기 때문에 과감히 알람을 풀고 잠에 들었다가 오전 8시 반쯤 눈을 뜬다.

오늘은 진짜 아무 계획없는 평화로운 하루를 계획하였기 때문에 다시  눈을 감고 선잠을 잔다. 어제 자기 전에 보았던 왓 이프 울트론이 머신러닝과 인공지능으로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생각하다가 꿈자리에서 울트론이 차세대 금융 프로젝트 PM으로 오는 장면을 보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인간 PM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PM의 탁월한 운용능력에 감탄하면서 눈이 떠진다. 오전 9시 반. 정말 충분히 늦잠을 잤다.

이런 무계획하고 느슨한 일상에 내 육체도 만족했으리라 그저 흐뭇한 기분이다. 내친 김에 더 과감한 일탈을 꾀한다.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 리디앱으로 전에 재밌게 읽었던 소설을 재탕한다. 총 4권짜리인데 1권 2권을 읽고 바로 4권 중반으로 점프한다. 이 소설은 재밌기는 하지만 중반에 쓰잘데기 없는 갈등을 구겨넣은 느낌이 강해 지루한데, 후반부 카타르시스는 훌륭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끝까지 읽고 일어나 미지근한 정수기물을 350미리 섭취하고, 양배추즙을 추가로 흡입한다. 모바일 뉴스를 훑으며 몇십분 정도 뜸을 들이다가 커피를 내려 마신다. 원두 자동 그라인더는 필립스, 에스프레소 머신은 드롱기인데 모두 사내 복지포탈에서 복지 포인트로 구매했다. 스쳐지나간 구매회상으로 일상에 조그마한 뿌듯함을 더한다.

오후 1시경, 카페인이 들어간 후에는 운동하기 좋은 때이다. 홈트레이닝을 시작한다. 전날 노량진에서 오마카세 모듬회를 배달시켜 먹었기 때문에 넘치는 잉여 영양소를 소모해야할 필요가 있다. 추가로 흡수한 탄수화물이 글리코겐으로 로딩되었기 때문인지 운동이 너무 잘된다. 몸을 데우고 덤벨을 활용한 웨이트운동까지 끝낸 후 스핀 바이크로 스피닝을 40분 정도 타준다.

운동을 끝낸 후 샤워를 하고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3시 안된 시각이다. 끝내주는 기분이다. 황금같은 주말이 12시간 넘게 남아있다. 더군다나 특별한 약속이 없는 하루다. 가벼운 카타르시스마저 일어난다. 이 기세를 빌려 듣고 싶었던 음악을 들으며 청소기로 구석구석 청소를 하고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밖에 나간다.

그 공간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흘 전부터 일기예보로 확인했던 눈이기 때문에 놀랍지는 않지만, 눈이라는 특성이 인간의 감성을 무르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소음을 흡수하면서도 순백색이라는 색깔을 가진 눈 결정의 특징이다. 머릿속으로 화이트 크리스마스, 투모로우, 설국열차와 같은 영화가 스쳐지나간다. 평화와 멸망의 이미지가 이 눈 속에 함축되어있음을 다시 한번 체감한다.

집에 돌아와서 배달의 민족 앱을 킨다. 배달시키려고 킨게 아니라 기상악화로 배달이 불가하다는 메시지를 읽기 위함이다. 아니나 다를까, 기상악화로 대다수의 가게가 배달불가이다. 너무 흐뭇하다. 이 사태를 며칠 전부터 예상했기 때문에 오늘 먹을 정찬의 재료를 미리 준비해놓았다. 봉골레 파스타와 마리네이드 삼겹살 에어프라이어  구이 조합은 이 추운 날에 끝내주는 맛을 낼 것이다.

인터넷 웹서핑으로 눈 내리는 날에는 왜 천둥번개가 치지 않는가? 같은 것을 검색하며 시간을 낭비한다. 흥미로운 잡지식들은 봐도봐도 재밌다. 오후 5시에 봉골레 파스타에 넣을 바지락을 해감하고 여러가지 근거있는 쉐프들의 레시피를 확인한다.

5시 반부터 요리를 시작한다. 삼겹살은 이미 마리네이드된 것을 샀기 때문에 남은 건 에어프라이어가 다 해줄 것이다. 컨벡션오븐과 필립스에 대해 잠시 생각한다. 그러고보니 이 에어프라이어는 LG 베스트샵에서 건조기와 세탁기를 구매할 때 사은품으로 준건데 LG 제품이 아니다. 백색가전의 강자 LG가 에어프라이어를 출시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삼성전자 에어프라이어 제품이 없는데 최근에는 멀티쿠커라는 혼종을 내놓은 것을 보니 에어프라이어는 전자기기업계의 박리다매 제품인건가?

봉골레 파스타 또한 어려울 것이 전혀 없다. 가뿐하게 요리를 다하고 아무렇게나 플레이팅한다. 삼겹살도 에어프라이어에서 꺼내 썰어놓는다. 곁들여 먹을 레드와인을 따서 데스크탑 앞에 세팅한다. 일주일 중에 가장 기분 좋은 시간이다. 흥분이 된다.

며칠 전부터 벼르고 벼렀던 소설을 앱에 로딩한다. 이 소설의 작가는 다른 작품으로 인지도를 얻었으며 그 작품의 필력이 상당해 흡족해하며 완결을 기다리고 있다. (해당 작품은 아직 완결이 나지 않았다. 본인은 미완결 소설은 왠만하면 읽지 않는다.) 그런데 예전에 쓴 완결 작품이 있었으며 심지어 그게 최근 웹툰화가 되었다고 한다. 들뜬 기분으로 미리 검색해 구매해놓은 소설이다.

평일에는 수면패턴을 깨뜨릴까봐 소설을 최대한 참는다. 주말인 오늘은 그 인내를 깨고 맛있는 음식과 함께 소설을 읽을 수 있다. 144가량의 시간을 기다려 맛보는 감미로움. 그저 행복하다. 이것이 삶의 기쁨이며 일의 보람이다.

#INTJ #MBTI

INTJ 여자 개발자의 토요일 일탈 기록 봉골레 파스타

INTJ 여자 개발자의 토요일 일탈 기록 삼겹살 에어프라이어 구이

댓글 16

간호사 · .********

언니 전에도 본 적 있는데 잘 읽고 있어 종종 써줘 재밌다!

한국항공우주산업 · j*****

글에서 짠한 외로움이 느껴져

KCC · 5******

과감히 알람을 푼 것이 8시 반이라니

야놀자 · U*****

와 진짜 나랑 다른데 재밌다

야놀자 · U*****

아뇨 지금 죽겠어요 졸려서

NH농협 · 마********

그치, 무계획도 계획이지 ㅋㅋㅋ
지나가던 intj 공감하고 감

효성 · 1********

INTJ 반가움요 ㅋㅋㅋㅋ

CJ올리브네트웍스 · i*********

저도 intj 개발자에요.. 쓴이의 필력 감탄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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