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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국 의사의 푸념

의사 · I*********
작성일02.28 조회수1,882 댓글42

형들 안녕하세요. 저는 지방의 낙수과 의사입니다.
글이 길고 그냥 개인적인 푸념입니다.

현재 내 업무를 간단히 소개하면 종합병원에 근무하며 외래랑 병동환자 진료, 검진환자 면담. 응급 수술을 가끔 하고 중환자실 당직을 3일에 한번, 응급실 온콜은 2일에 한번 받고 있어. 결과적으로 일주일에 3일 좀 꼬이면 6일까지 병원에서 자게 되.

작년까지는 수도권 수련병원에서 조교수로 몇년 일하다가 성과가 부족해서 짤렸어. 조금 쉬다가 올해부터 여기서 일하고 있고.
딸린 식구 없어서 다행이지.

여긴 공립 의료원은 아니지만 지역 거점 병원이야. 우리 중환자실은 보통은 절반정도 비어있다 보니 매출이 유지비를 못따라가지. 그래서 나랑 중환자실 간호사샘들은 실질적으로는 나라에서 보태주는 돈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어. 내 매출로는 부족하고, 지역 거점으로서 받는 인센티브에서 추가로 재원 확보가 되는 구조로 보면 되.

계약 연봉은 세전 2억이고 대학병원 때보다는 훨신 잘 받고 있어.
작년 생각하면 일도 적고 몸도 편해. 도태된 의사 치고는 나름 잘 먹고 잘 살고 있지.

여기서부터는 뇌피셜이야. 난 경제나 행정은 잘 모르고 그냥 병원 운영에 대해서만 곁다리로 알고 있어. 그러니 반박시 형 말이 맞아.

지금이야 필수과니까 우쭈쭈 해줬겠지만
앞으로 어떠려나 하면서 나 같은 의사의 미래를 생각해봤는데 어두컴컴하네

내 월급 말인데 그건 떨어질거야. 병원 입장에선 내 존재가 중요하지 내 숙련도나 성과는 솔직히 중요하지 않아. 어차피 내가 하는 대부분의 수술은 펠로우 1년차쯤 되면 척척해. 여기선 내가 썼던 논문도 필요없고. 아마 더 경력 짧고 보수가 적은 사람을 쉽게 구할 수 있다면 나랑 교체시키는게 병원에선 이득이겠지.

비급여 위주의 과는 어떨까? 그 과는 의사의 영업역량으로 수익 자체가 크게 바뀌게 되. 선수가 있고 스타가 있는 분야지. 경영자 입장에서는 매출만 그 이상으로 내주면 연봉을 올려서라도 고용을 유지하게 되고. 그래서 그런 과 의사들은 매출에 따른 인센티브가 있지. 그게 좋다 나쁘다 배아프다는 것 보다는 그냥 그렇게 돌아가고 있어. 그 안에 들지 못하면 낙오되겠지.

근무조건도 더 좋아지진 않을꺼야. 동네 인구가 감소한다면 실제로 하는일도 줄면서 일이 약간 줄어드는 정도지, 근무 시간은 동일해. 어차피 필수과는 365일 24시간 대응 가능할때 가치를 발휘하니까. 의사 연봉이 충분히 줄면 한명을 더 뽑을 수 있을꺼란 희망회로를 돌리는 형들이 있는데, 그러면 참 좋긴 하겠으나 나라에서 조건을 지정하지 않는한 그러지 않을꺼야. 그게 경영자야. 월급은 깎고, 의사 수는 그대로 가는거지. 일단 그래도 돌아가거든.

병원도 일종의 사업체야. 이윤은 목적에 두지 않아도 적자가 나면 병원은 도산하지. 병원 경영진 및 법인 이사회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어. 결국 고정비를 뛰어넘는 매출을 못내면 그렇게 되. 센터 유지시 매출 더하기 인센티브, 센터 유지비를 저울질해서 감당이 안되면 센터 지위만 포기하고 반납할 수도 있어.

고정비를 줄이는거? 좋지. 그 결과가 응급실 뺑뺑이임. 현재 수준으로는 병실, 응급실 규모 확충 및 각 세부 전문별로 전부 당직 수 만큼 고용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지. 환자가 와도 병원에 자리가 없다, 우리 병원은 볼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와. 심지어 그 아산병원 조차 말야. 현재 아산병원도 못하는걸 재원 지원 없이 내가 있는 병원에서 할 수 있을까?

그래서 현업 종사자들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완전히 대응할 수 있는 체계가 유지되도록 보태달라는 거지. 이른바 수가무새. 거기에 정부는 의사 전체의 평균 인건비를 낮춰서 고정비를 줄이겠다고 화답한게 현재 상황이고.

주변 많은 필수과 의사들은 생각한다. 응? 월급을 더 줄인다고? 지금도 도망가는 사람이 많은데?
정부는 10년만 기다려달라, 너희의 다른 선택지를 차차 전부 없애주고 이 참에 너희 직업의 자유는 없는걸로 하자. 까지가 어제 뉴스인것 같아.

그래서 어제 뉴스는 침울했어. 억지스러운 말인건 아는데 나름 선의를 가지고 기여한다는 좁쌀같은 만족감이 부정당한것 같았지.
'이게 내 일이야. 열심히 해야지 아자아자' 했는데 뒤에서 갑자기 '당연히 니 일이지, 빨리 일 시작해!' 라고 이야기한 느낌.

물론 내 근무 사기가 다소 떨어지는건 중요한 일이 아니야. 말은 서운하게 들려도 중요한건 그게 실제 원하는 결과를 만들겠냐는 것이지. 내 근로 의욕 정도야 점심만 맛있으면 오후에는 다시 열심히 일할 수 있어. 그걸로 안될정도로 낙담하면 오프 때 맥주라도 한잔 하는거고.

결국 최종 목적대로, 인구가 줄어드는 지방에 일정 수준이상의 의료를 빈틈없이 갖추려면 의사 월급을 제외해도 나랏돈이 꽤 들꺼야. 뭐 그게 국가가 할일이지. 잘 안되면 지금까지 처럼 계속 인력이 빠져나가는 거고.

개원가는 어찌될까? 난 잘 몰라.
근데 초등학교가 폐교되고 통합되는 동네에 소아과를 개인이 세우기는 의사 숫자가 몇 배가 되도 어렵지 않을까? 그것도 나라에서 해주는게 좋을것 같아. 국군수도병원 소아과 처럼.

개원가가 경쟁이 심해질꺼란 예측이 많던데 누가 경쟁에서 살아남을까?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돈이 필요하지. 원래 집안에 돈이 많거나, 혹은 건물주거나. 같은 조건이라면 단기간에 돈을 잘 끌어모으거나.

친절하고 교과서대로 적정진료만 하는 의사들이 경쟁에서 승리하면 좋겠지만 현재까지 주변을 보면 그 반대에 가까워.
지금도 돈을 잘 끌어모으고 경쟁이 심한 지역에서 살아남는 경영 전략이 있어. 의사의 치부이자, 대학에서 안나오고 싶어하는 선생님들이 혐오하는 방식이지.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지만 경쟁 압력이 심해질 수록 그런분들이 선택적으로 살아남을 것 같아. 근거는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점. 형들이 그런 의사를 평소에 자주 봤다면 이런게 상당히 진행된 동네에서 살고 있는거야.
뇌피셜이야. 반박시 형말이 맞고 나도 내말이 틀렸으면 좋겠어.

이것은 의대 증원을 비난하거나 반대할 목적으로 쓴 글은 아니고. 그저 현업 종사자로서, 우리 업계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시각, 국민의 생각과 그리고 내 생각과의 괴리에 대해 푸념일 뿐.

나도 미국처럼 돈 있는 자만 살아남는 의료는 오지 않았으면 해.
나같은 낙오자도 앞으로도 일할 자리가 남아있으면 좋겠고.
욕심인가? 욕심 맞아. 미래에 일할 자리가 없다면 받아들여야 하겠지. 계약직이라 명예퇴직같은건 없겠지만.

형들 모두 저녁 맛있게 먹어.

댓글 42

새회사 · l*********

형 말이 맞음
온통 사회가 자기보다 공부잘하고 30대중반까지 개고생한 사람의 금전적 보상을 증오하고 있음

간호사 · l*********

정상적인 참된의사는 너무멋져 그런데 수술실 cctv 반대 성희롱 성추행 의료사고내도 도망간 동료는 해결이 안되잖아......ㅠ

삼성전자 · i*********

의사 내부 자정작용이 없이 곯아터지게 만든것도 지금과 같은 반감에 상당히 한몫했다보는데 그런건 바꿀생각없음
강력범죄나 일부 개원의들의 부도덕한 수익행위에 대해서는 잘만 침묵하다가 이런일에만 집단행동을 보이는걸 너무 많이 보여줬음 의사 집단은

삼성의료원 · k*****

매출이 유지비를 못따라갈 정도로 중환사실 절반이 비어있는데 응급실 뺑뺑이는 왜 생긴다고 생각해?

쥴릭파마코리아 · m*****

지방은 텅텅이고
환자들은 지방에서 퇴원해서
다들 서울이나 수도권 대학병원으로만 몰려서 뺑뺑 도는거잖어

서울특별시교육청 · w*****

수도권 집중화가 되니 지방은 의료를 포함한 모든것이 무너지고 있어서 그런거같아요 ㅠ 근데 의료는 필수적인 부분이라서 ㅠㅠ 고생하십니다

새회사 · g*****

뭔가 큰 괴리가 있는게, ㅈ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증원 오지게 하면 그 자리 가는게 힘들어질뿐 급여가 줄어드는건 본적이 없음. 회사가 적자나고 망해도 급여가 주는거 극히 일부일뿐인데. 왜 의사형들만 증원하면 월급이 줄거라고 확신하는건지 모르겠다.

새회사 · 돈*******

의사맞냐 책좀 읽어라..그렇게 되가 아니고 그렇게 돼.. 맞춤법..어휴

한섬 · l*********

뭐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하면 방법은 하나 아닌가 지역별로 과별로 강제 비율 정해놓고 일반의 미용도 강제로 얼마 이하로 정하고 이러면 만족하려나 그리고 그동안 의사들이 저지른 일들이 업보로 돌아왔다고 생각하시길

새회사 · k*********

의사도 짤린다구여?

새회사 · a*********

매출 안나오면 짤린다고 들었습니다.. 병원이 자선 사업은 아니니까요..

새회사 · a*********

좋은글 감사합니다. 조금전에 2/20~3월까지 아산병원 적자가 500억이고 정부가 지원한 금액이 17억이라는 뉴스를 봤습니다. 수련의가 없어져서 500억 적자가 난거면..그분들 노동력을 갈아 넣어서 그동안 유지 했다는건데 왜 그런분들을 비난하는건지 전 이해가 안가네요...정부가 주도가 되어 국민들끼리 싸우게 만드는 형국인것 같아서 우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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