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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에게 사랑을 가르쳐준 사건들

삼성SDS · 그*****
작성일2019.06.03. 조회수2,327 댓글43

미혼모의 자녀로 태어나 고아원에서 자랐고 커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된 지금에야 과거를 고백해본다.

어렸을적 가톨릭계 수녀원에서 자라, 나는 사랑이란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배웠다. 우주와 대자연을 만드시고 우리를 창조한 하느님 아버지가 나를 용납하신 이유는 오로지 사랑이었을 것이리라.

내가 배운 사랑은 주는 사람이 없어도 홀로 감격하는 그런 괴상한 종류였다. 신은 모든 사람을 굽어살필 수가 없어 어머니를 보내셨다는데, 그럼 우리는? 신께서 직접 살피시는 건가요? 이런 순진한 말이다.

나는 그저 내가 홀로 감사하면 어느새 사랑을 느낄 줄 알았다. 어느날, 심부름을 보낸 침방 수녀님이 내게 죄를 뒤집어 씌었을 때도 그렇게 믿었다.

수능을 치른 날도 마찬가지였다. 싸늘한 저녁이었다. 구름도 없는데 노을이 보일것 같았고, 저녁 놀처럼 다른 사람의 가족들이 나타나 격려하고 웃음울음을 짓는 그런 날이었다.

나는 왠지 마음이 허전해서 한정거장을 걸었는데, 거기 만두집이 있었다. 그저 허전해서 들어가 내 한달 용돈의 사분지 일을 들여 만두 한접시를 주문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수능치고 왔냐고, 너무 수고했다고 김밥 한줄도 주시는거였다.

그저 뭉클해서 김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시설로 왔는데 늦었다고 가볍게 꾸중을 하시는 것이다. 그 때 난생 처음, 나는 감격하며 감사하기보다 김밥 한줄이 생각나서 좀 마음이 아팠다. 사람이 북적이는 여기보다 차라리 텅빈 만두집이 나은 것 같았다.

수능이 끝나고 대학원서를 접수하고 늦은 밤, 나는 정말 생떼같은 전화를 받았다. 왜 대학합격소식을 원장수녀님에게 알려주지 않았냐는 것이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나중에 알고보니 합격소식을 학생들보다 학부모 문자로 먼저 알렸던 것이다. 어쨌든 10여분을 그렇게 꾸짖고는 마지막에 축하한다 하시었다.

그 뒤에 나는 전화공포증이 생겨 덜덜 떨었다. 연락을 하지 않으면 더더욱 꾸중을 하시는 것이 싫었다. 꾸중이 아닌, 내가 잘 사는지, 내가 행복한지 묻는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게 당연했는데도 나는 어머니 대신 내게 왔다는 신의 사랑이 있을 줄 알았다.

몇년 후 나는 마음을 잡고 시설을 찾았다. 출장을 간 직후 었기에 지방특산물이라는 빵을 샀다. 부드러워 나이드신 분들이 좋아할 거라는 특산물 가게 직원의 설명이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 뵌 원장 수녀님은 빵을 보더니 이런 건 가져오지 말라고 했다. 당연히 오래 연락을 안한 것을 나무라셨다. 빵은 고대로 내 가방에 들어갔고, 시설에서 한것은 종교서적을 받고 후원계좌에 내 서명을 한 것이다.

빵은 버릴 수가 없어 자취방 찬장에 던져두었는데 오래 잊었다가 썩어 있는것을 발견했다. 그게 내가 얻을 수 있는 사랑의 최선이었다. 깨끗하게 정리하고 대청소를 했다.

그제사 깨달았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사랑을 추구하는게 아니라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아하는 거였다. 신을 대신해 어머니가 있는게 아니라 그냥 어머니는 어머니인거다. 내겐 그런건 없는거고 찾아봤자 괴로워지는 거다.

내게 주어진건 수능날 먹었던 그 김밥 한줄이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세상에 사랑이 없다알고 죽어도 괜찮을 거다.

#고아원

댓글 43

이스트소프트 · l*********

횽 너무 슬프다 고생했어 행복하자

한국전력공사 · e********

‘그시절 김밥 한 줄’ 같은 일이 앞으로도 찾아올 거에요. 믿어보세요.

Citibank · 야*****

이제부턴 행복해야돼! 많이 사랑주고 사랑받길 빌게.

대방건설 · u*****

꼭 사랑하는 사람들 만나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저희 아버지도 중학생때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시골에서 친척집 전전하며 밭일 도와주시다 스무살때 서울 올라오셔서 고생하시다 늦게 결혼하셨는데요.. 제게 가족들에게 정말 무한한 사랑을 퍼부어주시는 분이고 저희도 항상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지세요.. 매일 화목하고 행복한 집이라 예전 아버지 얘기들으면 너무 슬프지만 가족들 모두 그만큼 행복으로 채워드리고 싶은 맘이 가득하거든요.. 언젠가 사랑이 넘쳐나는 분과 함께 행복하시길 바래요

국민건강보험공단 · i********

수녀님 또한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셔서 그렇겠죠..? 썩은 빵이 본인이 얻을 수 있는 사랑의 최선이었다고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왜이렇게 제 마음이 먹먹해질까요.. 주님께서 직접 주님의 크신 사랑을 알게 하시려고 계속 부르실테니 부디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다며 마음의 문을 닫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주님의 직통사랑을 받으실만큼 너무 귀한 분이라는게 글만 읽어도 느껴져요. 세상에 사랑은 있어요.

현대모비스 · 생**********

오랜만에 보고 또 눈물을 닦습니다..

공무원 · i********

태그 눌러서 찾아읽었는데..글이 좋다ㅎㅎ표현하기 조심스럽지만 마음이 좀 먹먹해졌어. 행복하고 건강해 쓰니야

현대두산인프라코어 · 보*********

이번글은 비수와 같습니다

막 무엇인가를 말해야 하지만 그것이 적절한지도 그럴 자격이 되는지도 자문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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