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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원과 민트초코

삼성SDS · 그*****
작성일2020.02.28. 조회수1,613 댓글22

내가 미혼모의 자녀로 태어나 19년을 살았던 고아원은, 지역사회에서도, 전국을 통틀어서도 유서깊고 규모있는 고아원이었다.

그렇다는 것인즉, 알게 모르게 많은 후원자들이 있고, 후원물품이 있다는 뜻이다. 모든 후원은 고맙고 은혜로운 것임을 알지만, 가끔씩 그렇게 감사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지금은 유머코드인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나는 20년 전 구역질하면서 먹고는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 고아원의 배식 체계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가장 큰 특징은 '주는 대로 먹고, 잔반은 없다'는 것이다. 보통 세종류 기본찬에, 메인 요리나 국이 나오고 개별배식을 한다. 주어진 배식은 죽었다 깨도 다 먹어야한다. 매운 것을 못 먹어도, 요리가 너무나도 맛이 없어도..

그렇기에 의외로 우리 고아원은 배가 고파서 '먹고 싶다'는 말보다는, 너무도 먹기 싫어서 '이것 좀 먹어줘'라는 말이 더 많았다. 고아들이 배가 불렀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비계덩어리 설렁탕이나 피클 국 같은 걸 떠올리면, 난 아직도 사흘을 굶어도 그것을 먹을 자신이 없다.(피클 국은 피자집에서 주는 피클이 국으로 나온다고 보면 된다. 아마 주방 수녀님이 후원물품으로 온 피클을 국으로 착각한 것 같다.)

그 중 최고봉을 말하자면.. 난 다른 것보다 어느날 급작스럽게 간식으로 나온 민트초코를 말하고 싶다. 20년 전, 민트 초코는 대한민국에 들어오기 아직 이른 식품이었다. 아마도 혁신적인 마인드로 식품 수입을 한 업체는 한국의 올드한 입맛 트렌드에 한탄하면서 팔리지 않은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고아원에 후원했으리라.

그 날, 나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티슈곽을 세워놓은 크기의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4명이서 나눠먹으라고 주었는데, 첫 한입을 먹고 생각했다. '치약.. 후라보노..?'

거기서 중요한 사실은, 우리는 절대 잔반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티슈곽 크기의 민트초코.. 거기다가 에어컨이 없어 미지근한 온도에 흐물흐물 녹기 시작해서 어쩌면 역겨운 식감인 그것을 코막고 삼키다가, 나는 난생처음으로 모범생의 자세를 걷어치우고 잔반제로 고아원 지침에 반역한다는 발칙한 발상을 했다.

세수대야에 숨겨서 화장실 변기에 넣고 내리면.. 아이스크림이니까 그냥 내려가지 않을까 하는..

그리고 그 날 고아원 화장실 변기 절반이 역류했다. 다행한 사실은 원래 시설이 열악해서 하도 변기가 막히니까, 수녀님들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민트초코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것을 보고 새삼 과거의 추억이 생각난다. 의외겠지만, 난 지금은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매우 좋아한다. 베스킨 라빈스에 가면 항상 추가할 정도로. 열살 초등학생 때, 없이 먹었던 그때에도 그렇게 싫어했는데.. 그렇게 사람은 시간을 추억하고 많은 것을 추억으로 용서하나 보다.

#고아원

댓글 22

새회사 · 스****

근데 왜 아이스크림 때문에 역류할까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 · 또***

토닥토닥. ㅠㅠ 생각이 많아지는 글이다..

금융결제원 · !********

형은 글만쓰고 왜댓글안달아줘

삼성SDS · 그***** 작성자

아 제가 술먹을 때만 글을 적어서.. 댓글로 실례할까봐 좀 조심스러워요.

작성일2020.02.28.

새회사 · c*********

내가 그곳에 있는것 같은 기분이 들정도로 몰입해서 잘 읽었어 다른글들도 읽어보고 싶어진다

NH농협 · D****

ㅈㄴㄱㄷ 태그 누르면 다른 글들도 보여요

새회사 · c*********

오 고마워요 블린이라 아직 미숙..🥺

새회사 · 핫****

형 글 잘쓴다

삼성전자 · u*********

형 글이참 좋쿠만

삼성SDS · T*****

글 잘쓴다. 너무 멋있어요!

새회사 · 정******

헉 피클 국이라니 오이지 냉국이 아니라 진짜 피자에 나오는 피클로 만든 국인가요 상상이 안되네요! 드시느라 고생하셨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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