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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원에서 만난 수녀님들

삼성SDS · 그*****
작성일2019.08.10. 조회수3,477 댓글48

나는 태어날 때부터 고아원에 있었다. 성장한 뒤에 알게 된 사실인데, 내 어머니는 미혼모로, 수녀원 산하의 미혼모 시설에 있다가 나를 낳고 퇴소하였다. 내 이름은 내가 태어난 병원의 간호사가 지어주었고 나는 그 후 19년 가까이 고아원에서 살았다.

우리 고아원은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이었다. 고아들이 자라는 방 한개를 침방이라 불렀고, 각 침방에는 침방 수녀님이라는 관리자가 붙었다. 아주 어렸을 때에는 그를 엄마라 불렀다. 그러나 좀더 자라, 우리의 처지를 실감하게 되었을 때부터 나는 엄마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쓰고자한다.

우리 침방을 담당하는 침방 수녀님은 매년 바뀌었다. 정이 들만하면, 혹은 너무 싫어 미움이 솟구치려할 즈음이면 바뀌는 것이다. 각 침방 수녀님은 제각기 다른 양육잣대를 가지고 있었고, 열살 남짓한 우리 고아들은 그 때마다 적응에 힘들어하였다. 어떤 분은 식사시간에 대화하는게 너무 시끄럽다고 벌을 주셨고 어떤 분은 식사시간이 너무 조용하여 단란하지 않다고 꾸중을 하시는 그런 식이었다.

때로는 단체체벌이 있었다. 침방의 공용 물품이 망가지거나, 밤 10시 이후 취침시간 때에 누군가가 소근거리며 이야기할 때, 누군가 도둑질을 당했을 때. 우리는 침방에 기도하는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단체로 꾸중을 듣고 체벌을 받았다. 때로는 가장 밉보인 아이가 끌려나와 매를 맞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며 오늘은 제발 무사히 지나가기를, 하고 빌었다. 그때가 아침기도 시간 때 가장 간절했던 시기이리라.

그보다 더한 때도 있었다. 수녀님들은 항시 이성적이었던 것이 아니므로 때로는 동화 속 묘사되는 계모가 아닌가, 하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다. 어느날은, 단체로 복도 대청소를 하는데 청소가 시원찮고 꾀를 부린다고 수녀님이 모두에게 호통을 치셨다. 걸레질은 이미 끝나 모두 걸레를 회수를 했는데, 너희들 팬티라도 벗어서 다시 걸레질을 하라고 했다. 순간 농담을 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너무 잘못해 겁을 주는가보다, 이렇게 생각하는 찰나, 매를 들고 타박하는 걸보고 주춤주춤 팬티를 벗었다.

그 때의 기분을 지금도 잊지못한다. 생전 처음 느끼면서 그 후론 몇번 경험한 그게 수치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러나 그 때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는 필사적이었다. 그렇게 살다가, 더 자라서는 수녀님과 싸우다가, 그러다가 마침내 수녀님들을 가엾게 여기는 나이까지 자랐다.

대체 수녀님들은 우리에게 왜 그러셨을까? 그분들은 오십이 다된 분들이 많았다. 평소에는 신실한 주님의 종이었고 크리스마스 때에는 우리를 위하여 동요와 율동을 연습해 무대까지 오르시는 분들이었다. '나가자 아이들아 나와 함께 놀자! 함박눈을 맞으며 놀자..' 이 노래가 그 때 불러주었던 노래였다. 그런 분들이 때때로 우리에게 그렇게 잔인하게 굴었던걸 그 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때로는 우리가 수녀님들에게 잔인할 수 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더 커서 우리들 중 몇은 수녀님들에게 욕을 하고, 일부러 방을 더럽혔으며 더 나아가 가출을 하기도 했다. 신실한 마음으로 성직에 귀의한 수녀님들은 그러한 것을 몇십년동안 겪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삼십명의 아이를 한명의 수녀님이 담당하며, 매년 바뀌는 아이들을 보며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고 울게하는 그런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라고, 나는 지금에서야 이해한다.

어린 시절 밤에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 공용화장실로 걸어갈 때, 희미하게 수녀님들이 새벽기도를 하며 성가를 부르는 것을 들었다.

그분들도 힘들었을 것이다. 좀더 고상하게 기도만 하는 그런 성직자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우리를 선택했고 그런 진창을 겪었다. 나는 지금은 그분들을 원망치 않지만, 그 시간들을 용서하지 않고 때로 기억한다.

그 때의 수녀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가의 가사를 기억한다. 그 성가를 나도 가끔 마음 속으로 부른다.

'내가 가는 길. 십자가의 길. 그러나 그 길은 사랑의 길. 부르심의 길.. 그 은총의 길. 당신 길을 따르는 길. 생명으로 가는 길.'

#고아원

댓글 48

NH농협은행 · o********

생각이 깊어지는 밤이 될것같아요...
내가 지금 힘든게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해주셨네요... 글 감사합니다

아모레퍼시픽 · 오********

잘 자랐구나하고
뿌듯해 하실거야.

자생의료재단 · i******

마음이 찌릿찌릿하네요. 멋져요 ㅠㅠㅠ 앞길이 항상 따뜻했으면 좋겠어요.

PRAHS · 롤****

진짜 이야기 나눠 보고 싶은 사람이네요.
종종 글 올려주세요. 다른 글은 어디에 있나요?

NH투자증권 · l*********

글을 엄청 잘 쓰시네요 필력 대단..!

공무원 · l*********

그때 수녀와 교사는 비슷한듯요
애들 다루는게 어렵죠ㅠ

카카오엔터테인먼트 · i*********

마지막 노래가사가 마음을 어지럽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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