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픽 블라블라

고아원 고아의 첫사랑

삼성SDS · 그********
작성일2022.11.12. 조회수1,068 댓글13

첫사랑은 피할 수 없는 천재지변과 닮았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를 피할 수 없고 또 어느 순간 느닷없이 정전이 될 때 당황할 수밖에 없듯이, 첫사랑은 내 이성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야생동물처럼 행동했다.

그것은 내가 연애를 금지하는 엄격한 가톨릭계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자랐는데도 찾아왔다. 내가 그 사랑 때문에 불의로 생겼을 미혼모의 아이였음에도 아랑곳하지않고 공평하게 나를 찾아왔다.

하지만 내 첫사랑은 모두에게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그리고 내게도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넘어가야 했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참한 사랑이었다.

다른 글에서 썼다시피, 나는 중고등학교 때 내내 이성에 관심이 없었고 공부에만 집중을 해서 수녀님들의 총애가 대단했었다. 나 또한 수녀님들의 엄숙주의에 어느 정도 동조해서, 그렇게 혹독한 벌칙을 받는데도 계속 위험한 만남을 지속하는 내 고아원 동기들을 한심해했다.

그런 생각은 부지런히 내 편견을 잡아먹으며 성장했고, 졸업시즌에 사고로 고아원 원아끼리 사고쳐서 아이를 출산한 내 동기를 보며 절정을 찍었다.

졸업식도 참석하지 못하고 새파랗게 어린 동기 모임에서 갓난아이를 들러업고 참석해 어르는 모습을 보다보면 남녀간 사랑이란 걸 도저히 좋게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까지 이성을 잃으면서 하는게 사랑인가? 가장 절실히 사랑했던 결과물이 저런건데, 도대체 사랑할 이유가 무어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때때로 사랑이라는 것을 한심한 감정의 결과로 여긴다. 그러니까, 나도 지금까지 내가 한심해 죽을 지경이었다.

고아원 출신으로 대학생이 되면, 같은 고아원 출신 대학생들과 친해질 수밖에 없다. 한 기수에 원생이 60명 가까이 되지만, 그 중에 대학 진학을 성공한 원아는 서너명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우리 기수에 대학 진학을 성공한 원생은 4명었고 그 중 3명은 예체능으로, 1명은 수능 정시로 진학했다. 그 1명이 나였다. 그리고 내가 유일한 여자였다.

그리고 나는 대학생 때 내 후원자인 대모님의 딸과 주로 함께 다녔다. 대모님의 따님도 예체능계였고, 피아노와 성악을 전공 했었다.

우리 고아원은 오케스트라를 운영했고, 그로써 나외의 다른 고아원 출신 대학생 중에 둘은 첼로를 전공하여 대학에 간 케이스였다. 나는 그 애들이 코찌찔이 초등학생 때 요한 스프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연주했던 모습부터 고등학생 때 거장 마에스트로의 지휘를 따라 베토벤의 교향곡을 연주하던 모습까지를 모두 기억했다.

그러나 어찌되든 내게는 좀 어눌하고 찌질한 그런 친구들일 수 밖에 없었다. 동네 친구들이란게 다 그럴거다. 나도 걔들한테는 촌스럽고 찌질한 안경잡이였을 거니까.

내가 첫사랑에 빠진 그 날은, 대학교 두번째 학기를 마치고 겨울 방학 때, 대모님의 따님과 부산에 있는 고아원에 함께 내려간 때였다.

오랜 엄숙주의의 결과로 나는 아직도 남학생들과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어색해했다. 촌스러웠을 내 모습이 내 자신감의 팔할을 갉아먹었을 것이다. 활달한 대모님의 따님은 그런 나와 남학생들 사이를 이어주려고 애를 썼고 나는 그런 그 애의 착한 마음이 고맙기만 했다.

어느날, 나는 대모님의 딸과 함께 고아원 사무실을 가고 있었다. 어떤 서류의 처리가 필요해서 나말고 다른 고아원 출신 대학생들도 같이 알아야 하는 일이기에, 나는 그 애들이 있을 만한 장소 - 고아원의 빈 방인데 연습실로 이용하는 곳 - 를 찾았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문을 확 열었는데, 예기치 못하게 그 애가 문을 등지고 첼로 연주를 하고 있었다.

문여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까? 조금의 흔들림 없이 연주가 계속 되었다. 어떤 곡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 바흐였을 것이다. 왜냐면 그 애는 바흐를 좋아한다고 했으니까. 나는 순간 얼이 나갔고 연주가 끝날 때까지 다시 문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낮이었는데도 햇빛이 들지 않는 약간 어둑어둑한 그 고아원실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애가 첼로를 연주하는 선율이 그림자에 갇힌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나도 그 안에 갇혔다. 그리고 그건 그 때 나와 함께 있었던 대모님의 따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야했을 그 순간은 시간이 지날 수록 증폭이 되고 때로는 꿈에, 때로는 열없이 뱉는 내 말 속에 묻어나왔다.

방학 끝무렵 서울로 올라가기 전 대모님의 따님이 내게 울면서 이야기를 했다. 그 첼로 연주를 했던 남자애가 잊혀지지 않는다고. 부산에 내려온 동안 그 남자를 만나는 순간순간이 행복했고 서울로 올라가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아 죽을 것 같이 마음이 아프다고. 어떡해야하냐고.

나는 아무말없이 그 애를 안아줄 수 밖에 없었다. 그 애의 아픔을 나도 이해하니까. 그리고 나도 같이 울었다. 솔직히 한몸같은 동생의 아픔을 이해하는 언니의 눈물로 여겨질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누구때문인지 모르겠는 슬픔으로 나도 울고, 그 애도 울었다. 나는 그 때 그것이 내 첫사랑임을 알았다.

아무도 모르게 시작했고 누구도 모르게 끝내야했던 그 사랑이었다.

#고아원

댓글 13

삼성SDS · 그******** 작성자

네.

작성일2022.11.12.

새회사 · i*********

영화다~

롯데쇼핑e커머스사업본부 · l********

자전적인 소설을 한 번 써보세요. 글솜씨가 너무 좋아요

KIS정보통신 · i*********

이분 지금은 행복하게 잘 살고 계셨으면 좋겠다..

GS건설 · q********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시면 좋겠네요.... 행복을 쟁취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코오롱글로벌 · l*********

유화를 본것 같습니다.

NH농협은행 · 독****

좋은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응원합니다.

SK · 너*********

책을 내야 이 멋진 글들이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쓰신 글 중 무게감이 덜 느껴져서 더욱 좋았어요

보령 · 배*******

아껴서 읽고 싶은데 다 읽어버렸어요

공무원 · l********

모든 글 잘 읽었고 같이 울었어요...진심으로 언니 행복한 일 가득하길 바라요(아..제가 언니일 듯..)

인기 채용

더보기

블라블라 추천 글

토픽 베스트

여행·먹방
지름·쇼핑
직장인 취미생활
블라마켓
추천코드·프리퀀시
헬스·다이어트
블라마켓
스포츠
자녀교육·입시
이력서·면접 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