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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원 출신 고아가 뒤늦게 쓰는 설거지론에 대한 단상

삼성SDS · 그********
작성일2021.11.20. 조회수3,507 댓글27

나는 미혼모의 자녀로서 기인해 태어나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부모없이 자랐다. 내가 태어나서 최초로 무엇을 보았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태어나서 내 부모를 보았던 적이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 왜냐하면 나는 내 이름을 지어준 간호사만큼은 명확히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다들 예상했던 바와 같이 나는 남녀간의 사랑에 대해서 많이 회의적인 편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  듣는다면 다들 적든 많든 어느 정도의 불쾌감을 드러내었다. 그 이유가 내 사랑이 어느 누구의 고통이나 슬픔을 빚어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들이는 리소스 대비 효용이 작아서 회의적이기 때문이었다.

사랑. 사랑이라는 것의 실체에 대해서 나야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묻고 싶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는데 수많은 사람들은 여하튼 좋은 것이라 말한다. 또한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가엾다고 말한다. 어느 유명한 시의 한 구절은,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느니보다 행복하다며.. 사랑을 행복과 연관시켰다. 오랜 세월동안 내게 사랑은 정체불명의 괴물이었으며 전설 속의 보물같은 존재였다.

또한 내 몸 속의 종양이었고 진주였다. 그것이 내게 있는지 궁금하면서도 무서운 존재였다. 조개가 불순물을 받아들여 진주로 만들듯이 사랑은 고통을 주면서 착실하게 아름다운 무엇을 만든다고 한다. 나는 그와 비슷하게 사랑에 대한 내 두려움을 착실하게 호기심으로 가공했다.

그런 호기심으로 나는 많은 사랑 케이스들을 관조했다. 미디어 매체가 넘치는 요즘 세상은 내게 풍부한 간접 경험을 선사했고 그 덕에 나는 많은 사랑의 사례를 관찰할 수 있었다. 내가 선망했던 사랑이 무엇인지 여러번 반복해서 보았고 들었고 읽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무엇이 사랑인지 명확히 정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런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무엇이 사랑인지 정의하기는 어려워도 무엇이 사랑인지 증명하는 것은 명료했다. 사랑은 이성적일 수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는 비합리로  증명할 수 있었다.

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한 상태에서 불이익을 야기하는 선택을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리고 멀쩡한 이성으로 자신에게 명백히 이득이 되는 결정을 사랑으로 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명백히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결정을 사랑으로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증명할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이성적인 상태에서 불이익을 감수하는 형태야 말로 사랑의 진정한 증명이다.  세간에서 타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자기희생을 진정 사랑이라고 칭송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까지 애써 읽은 사람은 어느 정도 짜증이 일 수 있겠다. 그래서 그  이야기와 설거지론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러나 나는 진지하게 설거지론에 대해 고찰해본 사람은 짜증을 내지 않으리라 믿는다. 많은 이들이 설거지론이 다양한 이유로 오염당할 때마다 당당하게 외치는 캐치프레이즈가, '바보야, 문제는 사랑이야!'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문제는 그 정의를 할 수 없지만 증명은 명확히 할 수 있는 사랑으로 넘어왔다. 다시 강조하지만 사랑은 이성적일 수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는 비합리성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가진자가 증명하기 쉽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역사를 통틀어 사가들은 가진 것이 많은 권력자들의 사랑은 쉽게 쓰지만 그 사랑을 받았던 여인들이 권력자를 진정으로 사랑했는지는 쓸 수 없었다.

애처가라는 말이 있다.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남편을 일컫는 말이다. 그 반대되는 단어는 없다. 그 이유에 대해서 고민해본 사람이 있는지 묻고 싶다. 고대에서 현대를 꿰뚫는 성경의 에베소서에서 이르기를,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섬기라고 했다. 여기서도 남편에게는 사랑을 말하지만 아내에게는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

여기서 적지 않은 사람이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은, 지독한 가부장적인 사회에서는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느냐, 마느냐는 아무런 컨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니, 심지어는 많은 사회가 오래토록 아내가 남편을 성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았다. 아내를 내칠 수 있는 칠거지악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 질투이며  중동 아프리카에서 여성의 성감을 도려내는 여성할례가 있는 이유가 거기서 연유한다.

왜 그러겠는가? 앞서 강조한 바와 같이,  사랑의 증명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과 동치될 수 있는 문장은, 가진 것이 많은 이가 더 사랑을 증명할 기회가 많으며, 가진 것이 없는 이는 사랑을 증명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상상해보라. 어느 부호가 무릎을 꿇고 가진 것 하나 없는 가난한 이에게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며 구애하면 다들 박수를 치며 참사랑이라고 칭한다. 그러나 가진 것이라고는 빚밖에 없는 파산자가 부자에게 사랑한다며 눈물을 흘린다면 그것이 진정 사랑이라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오랜 세월동안 부부 사이에서 남편은 가진 자였으며 사랑한다면 불이익을 감수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위치였다. 반대로 아내는 그녀가 남편을 사랑하건 말건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했다. (물론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같이 지극히 드문 사례도 있다.)  그래서 역사가들도, 입에서 입으로 넘겨오는 구전 단어들도, 심지어 성경과 불경에서도 남편이 아내를 사랑했는지는 메인 컨선으로 잡았지만 아내가 남편을 사랑했는지는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었다.

다시 설거지론으로 돌아오자. 여기서 말하는 남편이 아내를 사랑했음을 무엇으로 증명했는가? 불공평한 결혼 비용과 벌이로써, 아내를 사랑하는 불이익을 증명했다. 그러면 아내가 남편을 사랑했음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많은 퀘스천이 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했던 가부장적인 사회에서는 이 질문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사랑은 이성적인 상태로 불이익을 감수해야 증명할 수 있는데, 가부장적인 사회에선 여성이 불이익을 감수할 만큼의 기득을 가진 쪽이 아니기 때문이었다.한 마디로 가진게 너무 없어서 불이익을 감수해서 사랑을 증명하라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기에, 남편도, 사회도 여자에게 사랑을 증명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작금에 이르러서는 많이 다르다. 설거지론에서 말하는 사랑의 증명은 현 시대에 이르러서 드디어, 여자도 가진것이 있기에 사랑의 증명을 할 수 있음을, 가진 자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설거지론의 노골적인 객체화에  따른 불쾌감을 제치면, 어쩌면 이런 논리가 대두됨은 여성계에서 기꺼워할만한 양성평등의 청신호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글을 쓰며 나는 많은 고민을 했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내가 어쩌면 편협한 사고에 휩싸여 괜한 말을 하는게 아닌지 하는 걱정을 했다. 그러나 굳이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사랑을 갈구하고 탐구한 내가 우리 사회에서 지금 발생하고 있는 어느 갈등에 대해서 조금 다른 제 삼자의 시각을 제공하고 싶어서이다.

설거지론, 그것은 누가 부족하고 누가 부도덕해서가 아닌..  사회의 어느 기제에 의한, 사랑에 대한 논제이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랑을 하지 못한 사람은, 이제 좀 더 사랑하지 못하게 된 사회가 안타까울 뿐이다.

#고아원

댓글 27

새회사 · 물*****

정말 간만에 보는 좋은 글입니다 :) 쓰시는 글들 읽어보고 싶은데 브런치 같은데라도 올리시나요? 궁금합니다 정말로!

공무원 · 고******

와 글 정말 좋네요!! 블라에 아까운 글이라는 생각은 첨 들었는데,, 브런치나 다른 매체에도 올려보시는건 어떨까요??

한국환경산업기술원 · i*********

빨간약 한사바리 쳐묵쳐묵 하시고 대현자로 각성하신듯 ㄷㄷㄷ

경찰청 · 사****

막힘없이 술술 읽히네요.. 좋은 능력을 가지셨습니다

SK이노베이션 · f******

정말 좋은글입니다:)

엔비디아 · i********

너무 좋다 형ㅜㅜ 아니 이 글에 말을 단순하게 못한다느니 가볍게 살자느니 이딴 댓글이 왜 달리지.. 본인들이나 그렇게 살지 아후

현대두산인프라코어 · 보*********


이번 본문은 폭발적인 댓글 예상이 빗나갔어요
댓글들이 밋밋하네요

저에게는 어려운 명제인 설거지론이라 순서 무시하고 읽어봤습니다 ㅎㅎ

'사랑은 이성적일 수 있는 상태에서 (가진자가)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는 비합리로 증명된다'
비록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하기는 어려워도(저는 알수는 없어도로 이해했음)"

그것을 입증해주는 여러가지 레퍼런스가 존재하고 작금의 설거지론이 등장한 계기는 여자도 증명이 가능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제가 문해력이 부족해서 애써 정리해봤습니다만 저는 별로 마음에 안드네요 ㅎㅎ
이부분은 겁나는 명제라 건너갑니다

그보다는 본문 두번째 단락에 마음이 왕창 갔습니다
예단하지 말았으면, 어려운 명제이기에 사랑은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적인 가치임에도 해석도 분분하고 그 답도 다양하지 않을까요?
사랑하자 또 사랑하자
비록 알 수 없어도 하게되면 알게된다고들 저리 외쳐대니
한번쯤 가성비가 떨어져도 ㅡ

현대모비스 · あ********

이 좋은 글들을 담을 수 있는 스크랩 기능이 있었더라면..

현대자동차 · W*****

최근 쓰신글이 인기글에 있길래
과거글도 읽어봤는데
글을 굉장히 잘 쓰시네요
본문에 동의하는지 여부와 별개로
생각이 깊으신것 같고 울림이 있는 느낌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SK · 너*********

고아원 태그로 좋은 글을 많이 볼 수 있어요. 이 분 책을 쓰셔도 좋을 것 같단 생각입니다.

작성일2022.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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