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픽 결혼생활

나의 육아휴직 이야기 #1

비공개 · q******
작성일04.11 조회수765 댓글14

#1. 프롤로그

또 다시, 내가 사는 아파트에 벚꽃이 만개하였다.
문득, 2년 전 육아휴직 중 있었던 소소한, 어쩌면 내 인생에서는 풍파였던 일들이 떠오른다.
내가 대단한 글솜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글을 써본 것도 아니지만 그 기억들을 떠올려 글로 남겨보고 싶어졌다.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지금이 아니면 그 때의 기억과 감정들이 희석되고 퇴색될 것 같기도 하고, 남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답답함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다 글을 싸질러 놓지 고민하다가,익명성 뒤에 숨으려고 블라인드로 결정하였는데, 또 결혼, 육아, 연애, 19+ 등 어떤 카테고리에 쓸지가 또 고민이었다. 생각해보니 결혼이 모든 걸 포괄하는 상위개념인 듯해서….

♡♡♡♡♡♡

40대 초반, 중견기업 팀장, 맞벌이, 두명의 아이…
이것이 나의 스펙이다.
여느 맞벌이도 비슷하겠지만,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 둔 시점에 위기는 찾아왔다.

아내와의 대화는 그렇다. ‘다른 집은, 다른 시댁은, 다른 남편은…’
나의 최선의 노력이 늘상 최소한의 노력으로 수용되어 버리는 것이 아내와 하는 대화의 패턴이다. 사실 이걸 대화라고 불러도 될지도 잘 모르겠다.
여튼 글로 표현하기 힘든 긴 논쟁의 끝에서 나는 물었다.
“그럼 내가 육아휴직 쓰면 되는거지?”
아내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하기로 한 거 아냐?”
그래 그러면 된다.
‘육아휴직’ 당연한 권리인 줄 알지만 중견기업의 직책자 남자가 쓰는 것이 쉬운 일을 아니었다. 조금 겁이 났지만 그렇다고 집에서 매일 겪는 고통을 감내할 만큼은 아니었다.

2월 초 회사 출근해서 담당 임원에게 조용히 드릴 말씀이 있다고 했다.
“좋은데로 이직하냐?” 부서장인 이사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물었다.
“그게 아니고 육아휴직 좀…”
이후 많이 듣던 대화가 이어졌다.
‘다들 그렇게 산다. 그 시기만 지나면 된다. 애 학교 간다고 휴직하는 남자가 어딨냐. 사람 써라. 등등’

벌써 7년이다. 중요한 회의나 보고서 만들다가도 애가 아프면 뛰쳐나가기 일수였기 때문에 너무 많이 들어온 말 들이다. 그 지루한 말들이 내 표정으로 드러났나 보다. 이사의 표정이 조금 더 무거워진다.
“남자 육아휴직은 있어도 직책자 육아휴직은 사례가 없는거 알지? 내가 안된다고 하면?”
“법적으로 안될 수 없지만, 이사님이 인정 못한다고 하면 1년 쓰고 복직 안하고 퇴사할게요.”
라고 던졌다.
“지랄말고… 복직해. 자세한 기간, 시점, 인수인계 등은 좀 있다 다시 얘기하자.”
‘지랄말고..; 이 거지 같은 단어가 힘이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그 어느때 보다 빠른 시간이 지났다.
송별회 안하냐는 말에 ‘다시 올 건데 무슨…’ 이라고 대응하다 보니 더더욱 특별할 것 없는 끝이자 시작이었다.
다만 집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맞벌이가 좀 더 애 키우기 좋다는 동네로 이사를 하기로 했다.
이사 업체를 알아보고, 기존 집 처분도 준비하고, 버릴 것과 새로 살 것들을 구분하고, 도배 등 최소한의 인테리어 계획을 세우고, 전체 일정과 예산을 준비하고, 가장 중요한 이사에 맞춰 어린이집 알아보고, 입학예정 초등학교를 변경해야 했다.
트리플A 형에다 선택장애가 있는 나에겐 너무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가장 힘든 건 아내의 무관심과 결과에 대한 불만에 있었다.

여튼, 시간은 흘러 3월 1일에 여차저차 아슬아슬 이사를 하고, 3월 2일이 되었다.
첫째 딸과 입학식을 가는데, 왠지 모를 가슴 찡함이 있었다. 자기 상반신만한 가방을 멘 모습이 우습기도 대견하기도 했다.

입학식을 마치고 잠시 학교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다.
“이번에 새로 이사 오셨나봐요?” “저희 애도 1학년인데 잘됐네요.” “저희 라인에 이번 신입생이 3명이나 있데요.” 엘리베이터를 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의 단답형 답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TMI 를 쏟아내었다.

그 수다가 불편하진 않았다. 문득 ‘나도 참 말이 많았는데 언제부터 과묵해진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보니 그녀는 바로 아래 층이었다. 한 층에 2세대가 있는 라인이라 어느쪽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왜인지 바로 아래집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인 3월 3일.
일찌감치 출근한 와이프. 아이들과 등교, 등원 준비를 한다.
나의 아이들은 돌 지나면서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침 7시 30분에 어린이집 등원해서, 저녁 7시까지 있었다. 그들에게 미안함을 담아 최소한의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그 모습이 낯설었는지 아이들이 물었다.
“아빠 오늘 회사 안가?”
“아니, 오늘 좀 늦게 가. 그리고 당분간 일찍 올거야.”
“진짜? 오예. 그럼 있다가 우리 안가본 놀이터 가도 돼?” 첫째가 말했다.
“그럼 오늘 연장반으로 가기 전에 데리러 올 수 있어?” 둘째가 말했다.
별 것 아닌 이 질문과 요청에 아이들의 서운함이 녹아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당연하지”

오랜만에 여유있는 준비를 하고, 등교&등원을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층을 내려갔는데, 그녀가 아이를 데리고 탔다.
가정주부라고 생각했는데, 출근 룩을 장착하고 있었다. 어제와 다르게 가벼운 인사 이후로 말이 별로 없다. 이 모습이 기억이 남는데, 그때 그게 신경이 쓰였었나?... 잘 모르겠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마자 먼저 갈게요. 하고 그녀가 뛰어간다. 그녀의 딸도 덩달아 뛰기 시작한다.
나의 첫째 딸보다 더 작은 그 아이의 큰 가방이 좌우로 흔들리는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동변상련일까. 왠지 자주 볼 것 같았고, 왠지 도와주고 싶었다.

#1. 끝

댓글 14

현대트랜시스 · I*********

그런거 같은데 엘베에서 만나서 반한거 같데

비공개 · q****** 작성자

형. 쩌리가 쓰는 3류 소설이라 생각하구 지나가줘~ ㅎ

근로복지공단 · c*********

오피스누나 이야기처럼 소설연재야?

LX세미콘 · i*********

이거 재밌을삘인데 나중에 또 보고싶음 어케해야됨?

비공개 · q****** 작성자

그건잘... 거의 25년전 퇴마록 이후로 책같은거 안읽는 놈이라 기대하지 마세요. 글빨없어요. ㅜㅜ

한화오션 · l*********

다음편 기다리고 있을게요!!

비공개 · q****** 작성자

감사한데 그냥 생각날때 조금씩 쓸거라... 기대하지 마세요. ㅜㅜ

서울아산병원 · 3***

술술 읽히네요 다음편은 언제 쓰시나요 ㅎ

비공개 · q****** 작성자

최근에 좀 바빠서 ㅎㅎ 곧 쓸거에요. 관심감사요

서울아산병원 ·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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