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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개같은남자 고양이같은여자 EP.2

작성일2018.11.08. 조회수478 댓글2

#이야기
#개와고양이

2. 술자리

술자리는 어느새 무르익었다.
작년에도 같은 풍경이었다.
술이란게 참 무섭다.
처음엔 다들 어색해 하다가도 술이 한 잔 씩 들어가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몇 년은 알고지낸
친구처럼 친해지니까.
그러다 또 내일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어색해 지겠지만.

작년과 다른점은 작년처럼 편하게 앉아서 그 술자리를 즐길 수 없다는 점이었다.
교수님들 챙기랴. 술취한 선후배들 챙기랴.
환은 정신이 없었다.
거기다 여기저기서 불러가며 술을 한 잔씩 권하는 바람에 환은 거의 반 쯤은 정신이 나간 상태로 술집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환은 구석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유유자적 술을 마시고 있는 희건을 발견했다. 환은 그 모습보니 분노와 짜증이 동시에 밀려오기 시작했다.
환은 그 테이블로 향했다.

“형.”

“왜? 일 안해? 저기 저쪽에 애들 꽐라됐구만.”

“형은요?”

“나? 나 지금 일 하잖아.”

“형이 뭔 일을 해요? 지금 앉아서 술만 마시고 있구만.”

“학회장이 하는게 그런거지 뭐 임마. 왜 이래? 새삼스럽게?”

어깨를 툭 치며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하는 희건의 얼굴을 보니 환은 다시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도 다 저 인간 때문이잖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보니 저 인간과 친해지고 같이 매일 술마시러 돌아다니다 보니 1년이 지났다.
고학년 들이 하나 둘 군대를 가고 희건이 학회장 자리를 맡게 되었다.
수업을 밥먹듯이 빠지는 데다가 공부보다는 먹고 놀러 학교에 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제멋대로인 희건이었지만 고학년들이 하나 둘 군대를 가고 어쩌다보니 학회장까지 맡게 되었다.

그리고 환은 얼떨결에 부회장을 맡게 되었다.
말이 좋아 부회장이지 거의 몸종, 잡부, 노예나 다름 없었다.
희건은 희안하게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었다.
결국 그 수작에 넘어간 환은 얼떨결에 부회장을 맡게 되었다.
술도 좀 취했겠다. 희건은 좀 강하게 나가보기로 했다.

“아 형. 이런게 어딨어요? 내가 회장이에요? 혼자 일 할 거면 차라리 내가 회장하고 말지.”

“해.”

“… 에?”

“하라고. 아이고 회장님! 오늘부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으론 제가 회장님을 개처럼 모시겠습니다. 자 일단 앉으시죠.”

이게 아닌데..

“아 뭐에요. 형 장난하지 말구요.”

“장난은? 그래 너 이새끼 처음 봤을 때 부터 얼굴에 욕망이 그득그득 하더니만. 결국은 이 자리를 노리고 있었구만. 저기 교수님도 오시네 지금 말씀드리면 되겠다.
교수님! 화니가 회장 하고 싶답니다! 교수님! 교… 읍.. 읍..”

환은 잽싸게 희건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 진짜. 미쳤어요? 형 취했어요?”

“내가 언제 술먹고 취하는거 봤냐?”

빙글빙글 웃으며 말하는 희건의 얼굴이 얄미웠다. 본전도 못 건진채 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이 깊어가고 이제 슬슬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가기 시작했다.
술 취한 사람들을 챙기고 열 명 남짓이나 남았을까.

이제야 좀 자리가 정리되는 것 같아 환은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리니 술기운이 올라왔다.
환은 아무 자리에나 털썩 걸터 앉았다.
그 테이블엔 낯익은 얼굴이 앉아있었다.
아까 낮에 본 그 여자였다.
술을 제법 먹었는지 얼굴이 발그레 달아오른 그 여자는 자리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아니면 술에 취해서인지 아까 낮에 본 차가운 인상은 많이 풀려있었다.
핸드폰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그 여자를 보고 환은 자기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평소의 환은 타인에게 먼저 살갑게 다가가는 편은 아니었다.
취기가 올라와서 였을까? 아니면 낮에 느꼈던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남자친구에요?”

그제서야 환을 본 그 여자는 당황하며 말을 꺼냈다.

“예? 저요? 아니에요. 엄마에요.”

“그래요? 집에서 빨리 들어오래요?”

“네.. 근데 제가 이 쪽 길을 잘 몰라서.”

“지금 버스 다 끊겼을텐데? 집이 멀어요? 택시타는데 까지 데려다줄까요?”

“아. 괜찮아요. 혼자 갈 수 있어요.”

불편해 하는 그 여자의 표정을 보고 환은 아차 싶었다.
날 이상한 놈으로 본 걸까?

“아.. 별건 아니고.. 혼자 가면 위험하니까요..”

도대체 뭔소리를 하는걸까..
당황하니 자꾸 이상한 말만 튀어나왔다.
계속 횡설수설하고 있는 환을 보고 그 여자가 피식 웃었다.

“부회장 오빠 맞죠? 아까 보니까 저쪽에서도 술취한 사람들 챙기고 계시던데..”

“아 보셨어요? 맞아요 부회장이라 그런거지 별 다른 생각이 있었던건 아니라..”

“아니에요. 그런거. 근데 학회장 오빠는 뭐하시구요? 아까부터 안 보이시는 거 같던데.”

“아.. 원래 그래요. 그인간이. 그냥 신경쓰지 말아요. 없는 사람 치고 학교 다니는게 편할 거에요.”

“왜요?”

“아.. 원래 좀 인간이 덜 되서.. 웬만하면 친해지지 않는게 좋을거에요.”

“뭐에요 그게.”

술기운이 올라서 일까.
평소 였다면 잘 하지도 않을 농담을 섞어가며 환은 얘기를 계속했다.
여자는 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 형 욕하는게 그렇게 즐겁냐?”

언제 왔는지 희건은 엿에 서서 환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 언제 왔어요? 에이 내가 무슨 욕을 했다 그래요. 그냥 있는 걸 얘기한거지.”

“지랄 한다.”

옆자리에 비집고 앉은 희건은 그 여자에게 물었다.

“얘가 뭐라고 했어요?”

“네? 아 아니에요. 그냥 별 얘기 안했어요.”

“에이 뭘 별 얘기를 안해요. 내 욕했죠?”

“… 조금?”

“하… 화니. 이새끼..
이래서 머리검은 짐승은 거두는게 아니랬는데.
술사줘. 밥사줘. 놀아줘. 내 청춘을 다 바쳤더니 고작 보답이 이거냐?”

“웃기지마요. 형이 먼저 술먹자. 밥먹자. 한 거 잖아요.”

한참 티격태격대고 있는 사이 묘한 표정을 한 그 여자가 끼어들었다.

“화니? 오빠 이름이 화니에요?”

“아.. 아니에요. 내 이름은.”

“아니긴 뭐가 아니야. 맞아요 화니. 앞으로 화니라고 부르시면 되요.”

“이상하다. 아까 분명 환영회때 소개할 때는 다른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김환이에요. 반가워요.”

희건이 또 쓸데없는 소리를 하기 전에 환은 먼저 선수를 쳤다.

“네 오빠. 서요안나에요. 그냥 안나라고 부르시면 되요.”

“요안나.. 이름 예쁘네요.”

“좀 안어울리죠? 생긴거랑? 사람들이 그러던데.”

환은 움찔했다.
처음 그 여자를 봤을 때, 환이 했던 생각이었다.
왠지 차가워보이는 인상 때문인지 요안나라는 이름이 잘 안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아니에요. 어울리는데.”

희건의 말에 요안나는 살짝 웃었다.

“그래요? 고마워요 오빠.”

머쓱해진 환은 괜히 희건에게 시비를 걸었다.

“이 형 웃기는 형이네. 나는 처음 보자마자 반말 했으면서?”

“너랑 이분이랑 같냐? 어떻게 초면부터 반말을 하냐?”

“아니 그럼 나는 왜… “

“아 오빠 말 편하게 하셔도 괜찮아요.”

“그럼 그럴까요?”

환은 뺀질거리면서 웃는 희건을 보고 생각했다.
뻔뻔한 인간 같으니.. 술자리는 계속 되었고 벌써 시간은 자정이 다 되어갔다.
환은 계속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요안나에게 물었다.

“근데 들어가봐야 되는거 아니에요?”

“그렇게요.. 엄마가 걱정할텐데.”

희건도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어이구.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일찍 들어가야돼?”

“네 근데 벌써 늦은거 같은데.”

“그래.. 부모님이 걱정하시겠다. 일찍 들어가. 내일 아침 일찍.”

“네?”

“딱 보니까 더 놀고싶구만. 아냐?”

“그건 그렇긴 한데.. “

“왜 부모님 때문에?”

“네.”

“전화기 줘봐.”

“형 뭐하게요?”

“부모님한테 전화 하면 되지.”

“형이요?”

“그럼 누가 할까. 니가 할래?”

요안나에게 핸드폰을 건네받은 희건은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평소 희건의 행실을 잘 아는 환은 희건이 괜히 헛소리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다.
안되겠다 싶어 핸드폰을 뺏으려는데 통화가 연결됐다.

환의 걱정과는 달리 희건은 지금까지 환이 들어본 적 없던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요안나의 부모님과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공손한 목소리로 통화를 하던 희건은 전화를 끊고나서 말했다.

“조심히 놀다오래.”

환과 요안나 둘 다 약간은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희건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희건은 자리에서 일어나 남아있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여기 혹시 더 놀고 싶은데 부모님 때문에 일찍 들어가야 되는 사람?”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왔다.
희건은 자리자리마다 찾아다니면서 학생 부모님들과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통화가 끝나고 나서 형은 다시 환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돌아왔다.

“이제 슬슬 여기 마무리 하고 보낼사람 보내. 그리고 취한 애들끼리 있으면 위험하니까 집에 가는 애들 택시번호랑 연락처 받아서 들어가는거 확인하고.
안가는 애들은 딴데 보내지 말고 다 우리집에서 재워. 알았어?”

“.. 알았어요.”

의외의 모습이었다.
일사분란하게 자리를 정리하는 희건의 모습을 보고 환은 괜히 열이 받았다.
평소에도 좀 이렇게 할 것이지.. 하루종일 고생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희건의 집에서는 또 술판이 벌어졌다.
MT라도 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한참동안 시끌벅적하게 술을 마시다 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뻗어서 잠이 들었다.

환은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희건의 집에 왔다는 사실조차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취해있었던 환은 그렇게 머리를 부여잡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 때 핸드폰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잘 떠 지지도 않는 눈을 억지로 떠 가며 환은 핸드폰을 찾기위해 주변은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환의 손에 뭔가 뭉클한 감촉이 느껴졌다.
잠결이었지만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포근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었다.
환은 눈을 비볐다.
환의 옆자리에는 요안나가 누워 있었다.
놀란 눈을 하고 있는 요안나와 환의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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