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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개같은남자 고양이같은여자 EP.4

#이야기
#개와고양이
EP.4 체육대회

환은 평소에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여럿 보다는 혼자가 편했고,
눈에 띄기 보다는 사람들 사이로 숨기를 원했다.
누군가에게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은 환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공포가 환에겐 아직 남아 있었다.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때, 사람들이 환을 보던 시선은 항상 따뜻했고, 기대에 차 있었다.
환이 그들의 기대치를 만족시키고 있을 때는 환은 항상 내려다보는 입장이었다.
위를 올려다 볼 생각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너무 빨리 자만 했고, 너무 빨리 안주해 버렸다.

어느 순간, 자신보다 한참 아랫쪽에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어느새 환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또한 그 쪽으로 가 있었다.
더이상 자신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리고 조연이 되어버린 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차갑고, 따가웠다.
그때 부터 환은 주목받는게 두려워졌고, 누군가의 시야에 들어가는걸 피했다.
그런 환에게 부회장이란 자리는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은 자리였다.
사람들 앞에 섰을 때,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그 눈빛이 싫었다.

금방이라도 자신 안의 낙오자를 찾아낼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언젠가는 떨쳐내야 할 일이지만 아직은 그럴 자신이 없었다.
체육대회를 앞두고 학생회 회의가 있던 날이었다. 다들 모였지만 희건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책상에 고개를 쳐박고는 들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환이 먼저 말을 꺼냈다.

"형 회의 안해요?"

희건은 여전히 고개를 쳐박은 채 말했다.

"회의.. 해야지.. 자 이거 보고 알아서들 결정해.
난 지금 회의고 뭐고 살아있는게 기적이야.. "

"아 씨.
그러니까 회의 전 날은 술 마시지 말라니까요!"

희건은 대꾸도 안하고 손에 든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에는 여러가지 운동 종목들이 써 있었다.

"이거 보고 대충 애들 짜서 숫자만 맞춰.."

하는 수 없이 환의 주도하에 회의가 시작됐고 위에서 부터 차근차근 한 명씩 명단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절반 쯤 명단을 채웠을 때, 환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난 사람들의 시선을 바라봤다.
갑자기 말이 멈춘 나를 보고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들이었다.
대학에 와서 누구한테도 말을 꺼낸 적이 없었기에 아는 사람은 없겠지만 괜히 가슴이 답답해 지는 기분이었다.
환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입을 열었다.

"다음은 탁구. 음.. 남녀 한 명씩. 누가 할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일단 다음으로 넘어가려는데 가만히 엎드려 있던 희건이 고개를 들었다.

"야 니가 하면 되잖아."

갑작스러운 희건의 말에 환은 당황했다.

"에? 내가 왜요?"

"뭘 왜야. 너 탁구 했다며."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걸 어떻게 알고있는걸까.
지금껏 누구한테도 얘기한 적이 없었는데.

"뭘 어떻게 알어.
니가 전에 나랑 술먹으면서 얘기했잖아.
도대표까지 했다고 질질 짜면서."

당황스러웠다.

"어 형 탁구했었어요?
지금까지 그런말 안했잖아요?"

"오빠가 하면 되겠다.
대표까지 했으면 엄청 잘하겠네."

갑자기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모아졌다.
기대에 찬 얼굴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환이 가장 피하고 싶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눈빛과 표정들이었다.
환은 겨우 입을 열어 말했다.

"안해요. 그만둔 지도 오래됐고."

하지만 희건은 막무가내였다.

"그래도 하던 가락이 있을거 아냐.
너랑 안나랑 해."

"안나요?"

"그래. 니들 같은 건물 산다며.
니가 가르쳐추면 되겠네."

"무슨 말도 안되는.."

희건은 대답 대신 종이를 뻇어서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아 진짜 안한다니까요."

"해 이새끼야.
안그래도 우리과 운동 못한다고 소문났는데
하나라도 확실히 이겨야 될거 아냐.
안나. 할거지?"

"네? 오빠 저 운동 못하는데..."

"걱정 마. 우리 화니가 잘 가르쳐줄거야. 그치?"

희건은 막무가내였다.
운동을 그만둔 후, 환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탁구채를 잡아본 적이 없었다.
그냥 운동삼아 가끔 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그건 스스로 하는 합리화일 뿐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환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요안나가 그런 환을 보더니 물었다.

"오빠 탁구 쳤었어요?"

"응? 뭐 잠깐.."

"왜 그만 뒀어요?"

"어? 아 그냥 어릴때만 잠깐 한 거야."

"대표까지 한거면 되게 잘 한 거 아니에요?
근데 왜 말 안했어요?"

"그냥 뭐.. 자랑 할 꺼리도 안되고."

"왜요? 그정도면 충분히 자랑할 만 하지."

대답을 하면서도 환은 가슴이 뜨끔뜨끔 거리는 기분이었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요안나는 계속해서 물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화를 냈거나 자리를 피했겠지만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묻는 요안나의 얼굴을 보니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

오랜만이었다.
똑딱이는 경쾌한 탁구공 소리, 고무바닥에 미끄러지는 끼익끼익 하는 운동화소리, 사람들의 숨소리. 환은 다시는 잡을 일이 없을 줄 알았던 탁구채를 들고 체육관 한 귀퉁이에 서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감촉이었다.
새삼스레 옛 생각들이 떠올랐다.
낯설면서도 낯익은 광경이었다.
다만 예전과는 다른 기분이었다.
익숙한 테이블이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테이블 앞에 섰을 때 환이 느꼈던 감정은 초조함이었다.
환은 쫓기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압박과 불안감, 초조함이 환을 이 공간에서 도망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기분이었다.
항상 이 테이블의 건너편엔 자신을 이기기위해, 끌어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상대들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서 있는건 어색한 자세로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작은 여자아이였다.
그 모습을 보자 환의 긴장이 풀어졌다.

"너 탁구 한번도 안쳐봤지?"

"에? 왜요? 이상해요?"

"어. 완전. 탁구채를 그렇게 잡는 사람이 어딨냐?"

요안나는 탁구채를 칼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고 서 있었다.

"그렇게 잡고 어떻게 칠려고?"

"그냥 치면 되는거 아니에요?"

요안나는 허공에 탁구채를 몇 번 휘둘렀다.
자기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는지 고개를 갸우뚱 거리더니 연신 탁구채를 휘둘렀다.
그 모습을 보자 환은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야 사람들 좀 봐바. 그
렇게 치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요안나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탁구채를 고쳐 쥐었다.
그리고는 또 허공을 향해 탁구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환이 말했다.

"너 평소에 운동 잘 안하지?"

요안나는 입을 삐쭉 내밀면서 툴툴거렸다.

"요새 탁구치는 사람이 어딨어요.
아저씨 아줌마들이나 치지."

"일로 와봐."

환은 요안나에게 탁구채 쥐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환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데는 익숙하지 않아서 기본적인 자세만 알려주는 데도 꽤 오랜시간이 걸렸다.
겨우 자세를 알려주고 나서 환은 살짝 공을 쳐서 보냈다.
요안나는 힘차게 팔을 휘둘렀고 요안나의 손은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이상하다. 왜 안맞지?"

'하.. 갈길이 멀겠네.'

환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대여섯번 공을 더 보내주고 나서야 겨우 요안나는 공을 맞히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은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날아가 버렸다.

"오빠! 봤어요? 방금?"

"야.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았거든? 야구해?"

"그래도 맞춘게 어디에요!"

허공으로 공을 날리고도 무슨 대회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하는 요안나를 보니 환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결국 한시간 가까이 공만 줍다가 요안나는 지쳤는지 그대로 옆에 있는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다.

"오빠. 나 더이상 못하겠어요. 힘들어."

"그래 좀 쉬어."

"이거 은근히 되게 힘드네요.
원래 탁구가 이래요?"

"그거야 니가 강아지처럼 여기저기 공만 주으러 뛰어다니니까 그런거지.."

"아이 뭐야~"

요안나는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

"오빠. 희건 오빠 닮아가네."

"뭐? 내가?"

"자꾸 놀리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 인간이랑 비교를 하냐.."

"암튼 우리 잠깐 쉬어요. 힘들어 죽겠어요."

"그래 좀 앉아서 쉬어."

요안나가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사이에 환은 탁구공을 만지작거리며 서 있었다.

"학생!"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환은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다.

"저요?"

"응 학생. 어떻게 괜찮으면 아저씨랑 한 판 칠까?
여기 지금 사람이 안맞아서."

"잠시만요."

환은 고개를 돌려 앉아서 쉬고 있는 요안나를 바라봤다.

"갔다와요.
어차피 오빠는 계속 서 있기만 했으니까 힘들지도 않을거 아녜요."

"그럼 잠깐만 앉아있어."

환은 꾸벅 인사를 하고 서브를 넣었다.
아저씨는 그대로 환의 서브를 받아 쳤고 테이블 구석으로 향하는 공을 받으려다 환은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런 환을 보고 요안나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아 뭐야~ 오빠. 잘친다면서요."

"오..오랜만에 쳐서 그래."

환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운동을 안 한지 꽤 오래됐지만 시작부터 망신살이었다.
그래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몇 번 치고나니 조금씩 예전의 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몸을 움직이니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어느새 환은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날아오는 공을 향해 연신 몸을 날렸고 쉬지 않고 팔을 휘둘렀다.
그 아저씨는 지쳤는지 혀를 내둘렀다.
팔을 휘휘 내젓는 아저씨를 보고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살살 할까요?"

"아이고.. 확실히 젊은 사람이라 그런지
움직이는게 틀리네 틀려.. 학생 선수야?"

"아뇨.. 그런건 아니구요."

"괜히 치자고 했다가 몸만 축나네 몸만 축나.
암튼 학생 고생했어. 난 이제 못 치겄네 힘들어서."

"네 고생하셨어요."

꾸벅 인사를 하고 환은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확실히 전보다는 많이 힘들었다.
땀을 닦는 사이 환은 자신을 바라보는 요안나의 시선을 느꼈다.
요안나는 환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 왜?"

"우와.. 오빠 진짜 잘치네요."

"뭘.. 잘치긴.. 그냥 그렇지 뭐."

"아니에요, 진짜로. 좀 멋있어 보이던데?"

갑작스러운 칭찬에 환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됐고 넌 이제 알아서 할 수 있지?"

"엥? 뭘 알아서 해요. 가르쳐 준것도 없잖아요."

"야 더이상 뭘 가르쳐주냐.
이제 니가 혼자 연습하면 되는거지."

"아이 그런게 어딨어요. 빨리 일어나요."

요안나는 환의 팔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환은 마지못해 일어나는 척 하며 다시 테이블 앞에 섰다.
살짝 공을 보내자 요안나는 희한한 자세로 탁구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너 뭐하냐?"

"이상하다.. 왜 안맞지.."

"뭐가?"

"오빠 치는거 따라하는 건데. 이상해요?"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맞추기나 하세요.."

말을 듣는 건지 마는 건지 연신 혼자서 탁구채를 휘두르고 있는 요안나를 환은 빤히 바라보다 자신이 바보처럼 웃고있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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