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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의 중요성 이야기

작성일2018.11.09. 조회수1,130 댓글10

#이야기

여름이었다.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이글이글거리는 태양빛이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20대 초반의 나는 그늘 하나 없는 아스팔트 위에서 비지땀을 뻘뻘 흘리며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벽돌들을 부지런히 나르고 있었다. 

방학이 되자 친구와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뭘 할까 고민하다 결정한 아르바이트는 숙식노가다였다. 

짧은 기간동안 제법 큰 돈을 만질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쓸데없는 지출을 막기 위해 일부러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곳을 택했다. 

 

매일 눈뜨면 일어나서 더위, 먼지와 씨름하다 숙소에 들어오면 그대로 곯아떨어지는 하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일의 고됨보다 더 우리를 괴롭히는게 있었다. 

 

한참 벽돌을 나르던 나는 찡그린 얼굴로 손으로 챙을 만들어 햇빛을 가리고 하늘을 봤다. 

태양은 머리 위로 높게 떠 있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내 얼굴은 여전히 찡그린 채였다. 

다른 장소에서 일하던 친구가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먼저 점심을 먹고 내 차례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친구 또한 찡그린 얼굴이었다. 

노동의 고단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느새 내 앞까지 다가온 친구는 말없이 그자리에 서 있었다. 

불길한 기운에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 설마 또?"

 

친구는 대꾸도 않고 고개만 슬쩍 끄덕거렸다. 

 

"..또? 이런 싯팔!" 

 

나도 모르게 육두문자가 튀어 나왔다. 

 

우리를 괴롭히는 건 일의 고단함도, 피로도 아니었다. 

'밥' 이었다. 

 

보통 건설현장에서는 근처 식당과 계약을 해서 식사를 해결했다. 

내가 있던 현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장이 외진곳에 있었기 때문에 점심때가 되면 

계약한 식당에서 차로 음식들을 가지고 왔다. 

 

하지만 그 음식들의 상태가 심각했다. 

공사업체에서 한푼이라도 아껴보려고 제일 싼 식당과 계약을 한 건지

맛은 커녕 겨우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밥을 먹는게 이 생활의 유일한 낙이라는 점이었다. 

주변은 허허벌판이고 시내로 나가려면 차로 한참을 이동해야했다. 

눈 뜨고 감을때까지 일만 하다 하루가 끝나는 이 생활에서 밥먹는 걸 빼면 즐거움이란게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유일한 즐거움마저 누리지 못했다.

 

밥은 어떨땐 너무 설익어서 모래를 씹는 느낌이었고 어떨땐 너무 물을 많이 잡아서 젓가락으로 집을수 조차 없었다. 

된장국은 말 그대로 똥국이었다. 비주얼 자체가 재래식화장실을 보는 것 같았다. 

미역국을 한 수저 떠 먹으면 누군가 뒤에서 내 머리채를 붙잡고 바닷물에 담갔다 뺐다를 반복하는 기분이 들었다.

가끔 나오는 고기는 안전화 맛이었다. 질기다 못해 씹다가 이빨이 나갈 지경이었다.

가장 최악은 생선구이였다. 

말린 생선을 구운건지, 아니면 생선을 구워서 말린건지, 언제나 바짝 말라 있었다. 

수분이라고는 눈씻고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거기다 생선에 무슨 짓을 한 건지 비린내가 났다. 저렇게 말라 비틀어진 생선에서 비린내가 나게 

만드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자주 나오기는 왜이리 자주 나오는지 하루 걸러 한 번 꼴로 나왔다. 

 

나는 터덜터덜 식당대용으로 쓰는 컨테이너박스로 걸음을 옮겼다. 

거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일을 하려면 억지로라도 먹어야 했다. 

컨테이너 안은 이미 식사를 하고있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다들 일의 연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억지로 밥을 목구멍에 쑤셔넣고 있는 모습이었다.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은 나는 밥을 떠먹는 대신 내 앞에 놓인 생선을 가만히 바라봤다. 

 

나는 조용히 생선에게 인사를 건넸다. 

식판 위의 반찬처럼 나도 슬슬 맛이 가고 있었다. 

 

'안녕 오늘도 많이 여위었구나..' 

 

바짝 구워진 생선은 마지막 순간에 단말마의 비명이라도 외친건지 한껏 입을 벌리고 있었다. 

 

'잔인한 놈들.. 보낼거면 곱게라도 보내 줄 것이지..' 

 

나는 젓가락으로 생선을 휘적거렸다. 얼마 붙어있지도 않은 살점이 톡하고 떨어졌다. 

 

'어디보자.. 사인은 심각한 탈수..' 

 

그렇게 나는 갓 부활한 이모텝마냥 말라비틀어진 생선을 앞에두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미쳐가는 건 나 뿐만이 아니었다. 

 

얼마 후 친구와 나는 점심을 먹기 위해 다시 컨테이너로 향했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줄이 길었다. 

한참 기다리다 반찬통 앞에 선 친구가 갑자기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큭...크..큭큭큭...."

 

"뭐야? 왜?"

 

친구는 계속 웃기만했다. 

 

"더위 먹었냐? 뭐가 재밌다고 쳐 웃고 있어?'

 

도대체 뭘 하고있나싶어 친구를 살펴보니 친구는 반찬통 안에 든 계란찜을 집게로 퍼내고 있었다. 

얼핏봐선 그냥 노란칠을 한 화강암 같았지만 분명 계란찜이었다.

식당직원이 깜빡하고 국자를 빼먹고 온건지 계란찜이 담긴 통엔 국자 대신 집게가 있었다. 

평범한 계란찜이라면 집게로 충분히 집을 수 있었겠지만 계란찜에 무슨짓을 한건지 

그 계란찜은 친구가 집게를 가져다 댈 때마다 순두부처럼 퍼석퍼석 부서지고 있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길이 줄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친구는 계속 실실거리며 부셔지는 계란찜을 집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정신이 나간듯한 친구의 모습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친구는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미."

 

"뭐?"

 

"....루미.."

 

"뭐라는 거야?"

 

"...두루미! 이 두루미새끼! 이걸 어떻게 푸라고 이딴걸 줬어! 죽여버릴거야! 이 개같은 두루미새끼!" 

 

드디어 인내의 한계가 왔는지 친구는 연신 뜻모를 외침과 욕설을 퍼부었다. 

 

"왜그래 미친놈아.. 조용히 좀 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나는 친구를 말렸다. 하지만 그간 쌓인게 많은지 친구는 연신 방언을 쏟아냈다. 

작은 기적은 그때 일어났다. 

여기저기서 동조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작은 울림이 모여들어 어느새 하나의 큰 목소리가 되었다. 

 

"맞아. 여기 음식이 아주 형편없어!"

 

"이딴걸 먹고 어떻게 일하라는 거야!"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는구만!"

 

"여러분 가서 따집시다!' 

 

"갑시다!"

 

성난 군중들은 하나로 뭉쳐 사무실로 향했다. 어떤 이는 젓가락을, 어떤 이는 수저를, 어떤 이는 식판을 든채로 

사무실로 향했다. 그 중심에는 친구가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성난 인부들을 본 사무실 직원은 난처한 표정이었다. 

계란찜으로 시작된 그들의 혁명은 성공적이었다.
결국 업체측에서는 식당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친구는 반찬폭정에서 민중의 입맛을 지켜낸 난세의 영웅 찜다르크로 추앙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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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중공업 라운지

댓글 10

이오테크닉스 · 3****

ㅎㅎㅎ 잼나게 읽었습니다

대교 · 팩*****

형 9호선 밀리는것좀 어떻게 해봐

서울9호선운영 · 9***** 작성자

대댓글 이미지

화승R&A · c*****

필력이 대단하시네요. 작가 데뷔 한표

포스코건설 · 삑*******

형 글 예전부터 읽고 있어 너무 재밌음

삼성중공업 · 프*******

와 필력 ㄷㄷㄷ
형 대단하다

대우건설 · 대**

필력 지리네요 ㄷㄷㄷㄷㄷ

고려개발 · l*******

두루미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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