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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했던 고백이벤트 이야기

작성일2018.11.09. 조회수568 댓글4

#이야기

뭐야 돈을 달라고?"
 
그는 초조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연신 마른침을 삼키는 그의 얼굴을 보고 나는 어쩌면 이 거래가 내 생각보다
더 수월하게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우리는 땅파서 장사하는 줄 알았어? 애들 밥값이라도 챙겨줘야 할거 아냐."
 
"알았어. 그럼 얼마나?"
 
난 대답 대신 조용히 손을 펴서 들어 올렸다.
 
"뭐 오천원?"
 
"장난하나 그걸로는 인건비도 안나와. 오만원."
 
"오만원? 미친. 무슨 촛불 몇 개 까는데 오만원씩이나 받아 쳐먹을라 그래?"
 
"우리 애들이 좀 잘 먹어야 말이지. 우리도 끝나고 술일라도 한 잔 해야 될 거 아냐."
 
"됐어 이새끼야. 차라리 내가 혼자 하고 말지."
 
"그래? 그럼 그렇게 하시던가. 너 근데 그거 아냐?"
 
"뭐?"
 
'우리 애들중에 xx알지."
 
"알지. 그게 뭐."
 
"걔가 미영(가명)이랑 동네친구란 거. 둘이 엄청 친해. 몰랐지?"
 
"근데 뭐? 둘이 친한거랑 나랑 무슨상관인데?"
 
'그렇지? 별로 상관은 없을거야. 근데 왜 친한 친구끼리는 그런얘기 많이 하잖아?
 그러잖아? 누구누구 선배가 질이 안좋다더라. 여자후배만 보면 정신을 못차린다더라.. 이런거?"
 
"미친새끼... 미영이가 그 말을 믿을 거 같아?"
 
"안믿겠지. 근데 생각은 하겠지. 근데 소문이란게 원래 다 그렇게 시작하는거 아니겠어?"
 
나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만원.. "
 
"뭐?"
 
"준다고 오만원. 이 날강도 같은 새끼야."
 
"그래 잘 생각했어. 나머진 우리한테 맡기고 넌 맘 편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거야 이제."
 
"진짜.. 사고치지 마라?"
 
"새끼.. 쓸데없는 걱정은. 야 장사 처음해? 저번에 못봤어?"
 
나는 그의 어깨를 툭툭 치고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우리 과 후배를 좋아했다. 신입생 환영회때 처음 만난 후 홀딱 빠져서 몇 달 동안을
쫓아다녔다. 그 후배도 그를 어느정도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뭔가 결정적인 계기가 없었다.
그는 이벤트를 준비하기로 했다. 하지만 혼자선 힘에 부쳐 나를 찾아왔다.
전에도 한 번 내가 친구의 이벤트를 도와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계획은 자정에 후배를 불러내 고백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후배가 살고있는 기숙사 근처에서
학교 운동장까지 촛불로 길을 만들고 운동장 한 가운데에서 고백한다는 게 그의 계획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벤트였지만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다. 왜냐하면
그 전에도 다른 친구가 그런 방식으로 고백에 성공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때 그 사전작업을 도와준 사람이 나였다.
 
나는 후배들과 함께 사전준비를 시작했다. 초를 사고 후배의 동선을 파악하고 그 후배와 친한
동생을 시켜 후배의 마음을 다시 확인했다. 맘먹고 준비한 이벤트에서 까이는 것 만큼
당사자를 비참하게 만들고 보는사람을 뻘쭘하게 만드는 일이 없기에 우리는 만전에 만전을
기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태풍이 오고 있었다. 나는 그를 찾아가 다시 물었다.
 
"야 진짜 오늘 해야겠냐? 태풍 온다는데?"
 
"아직 안왔잖아. 벌써 이따 밤에 보자고 얘기까지 했단 말이야."
 
'아.. 그냥 나중에 하는게 나을 거 같은데.."
 
하지만 이미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그는 눈에 뵈는게 없었다.
태풍도 그의 불타는 연정을 꺼트릴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후배들을 데리고
작업을 시작했다. 절반 쯤 완성했을 때,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기껏 세워놓은 초가 넘어지고 굴러다니고 난리도 아니었다.
우리는 초를 땅에 묻다시피 해 겨우 세웠다. 그렇게 모든 세팅이 완성되고 우리는 초에
불을 붙혔다. 하지만 바람때문에 촛불이 픽픽 꺼지기 시작했다.
 
분위기 자체가 러블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먹구름은 잔뜩 껴있고 쓰레기인지 나뭇잎인지
모르는 물체들이 사방에서 굴러다니고 있었으며 휘이잉 하는 바람소리에 중간중간
켜있는 촛불들까지. 분위기는 을씨년 그 자체였다. 고백이라기 보다는 누군가에게
살을 날리는 의식을 행하는 분위기였다.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친 후배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니들 여기서 뭐하냐? 형 뭐해요?"
 
"...보면 모르냐?"
 
"모르겠는데.. 뭐 소환해요? 악마같은거?"
 
"아오.. 저리 안꺼져?"
 
뒤늦게 그가 도착했다. 쫙 빼입고 한 손에는 꽃까지 들고 있었다. 설레임에 가득차 있던
그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야.. 이게 뭐야. 촛불은 왜 중간중간 다 꺼져있고.."
 
"그러니까 오늘은 아닌거 같다고 했잖아..."
 
약속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최소한 촛불이라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결국 울리는 근처 편의점에서 종이컵을 사와 초에다 하나씩 씌우기 시작했다.
더이상 불은 꺼지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고백보다는 찬송가를 부르고 함께 손을 잡고
우리 주 아버지를 울부짖으며 회개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악마소환의식과 여름성경학교 사이에서 갈등하던 우리는 결국 여름성경학교를 선택했다.
차마 그 앞에서 말은 못했지만 정말 없어보였다. 정말 이대로 진행했다간 있던 정도 떨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강행을 선택했다.
 
나는 멀찍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내 저 머리서 후배가 촛불길을 따라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후배의 표정을 확인한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선 이 장소를
벗어나야 한다고 직감했다.
 
마침내 고백이 끝나고, 그는 친한 후배가 하나 생겼다.
 
후배가 돌아가고 나서도 그는 한참동안 촛불로 만든 원 한가운데 서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가 얼굴을 들었다.
 
우리는 정말로 악마를 소환해 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우리는 꽃으로 때리지 말라는 명언이 
그 시간, 그 공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댓글 4

에스엘 · 램********

요약 : 완얼

새회사 · n***

지난번에 봤어

대우건설 · |*********

ㅋㅋㅋㅋㅋㅋㅋ 친한후배가 하나 생겼다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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