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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더웠던 여름 휴가이야기

서울9호선운영 · l*********
작성일2018.10.26. 조회수860 댓글1

#이야기

올해는 유난히 더웠다. 기상청에선 장마가 온다고 했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더위가 계속 되자 친구들과 나는 

휴가를 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친구들과 나는 매년 여름이면 함께 휴가를 갔다.

올 해는 다른 때 보다 휴가날짜를 조금 늦게 잡았는데 하필 올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 둘 씩 휴가를 떠나기 시작했지만 우리의 휴가는 그들보다 한참 뒤였다. 

무더위 때문인지 우린 점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방은 예약 했냐?"

"아직 안했는데?"

"에라이 정신나간 새끼야! 아직도 안하고 뭐했어!"

"뭐야 왜 지랄이야 갑자기 안그래도 더워 죽겠는데." 

"총무란 새끼가 그런것도 안하고 뭐했어 지금까지"

"뭐? 내가 총무였어? 언제부터?"

"너 총무 아니야?"

"난 그냥 돈관리만 한다 그랬잖아."

"그게 총무야 이 병신아! 

"아 그래? 야 근데 이 양갈비는 왜 다섯개야. 사람은 넷인데!"

"그렇게 밖에 안파는 걸 어떡해!"

"사람수 맞춰서 사와야 될거 아냐!"

"냅둬 그냥. 모자라면 저새끼 늑골로 한 세 대 뽑아서 굽지 뭐.."

독기에 가득차서 중얼거리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이번 여행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매년 남들이 가는 뻔한 여행지, 뻔한 휴가대신 특별한 여행을 가겠다며

야심차게 휴가 계획을 세웠지만 그 계획은 매번 실패로 돌아갔다.

지금까지 우리들의 여름휴가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형편없었다' 라는 말이 가장 적절했다. 

몇 해 전 친구가 정말 아는 사람만 아는 숨겨진 명소라며 휴가지로 추천했던 곳은 

정말 꽁꽁 숨겨져 있어 사람의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곳이었다. 

대신 사람뿐만 아니라 물도 없었다. 

"이게 뭐야 이새끼야. 물이 어딨어?"

"그.. 그러게 가뭄이 들어서 그런가. 물이 왜 없지?" 

"목까지 온다며 이새끼야!"

"발목까지 온다는 말을 잘못했나보네..."

"비오면 우리집 앞 길바닥에도 저정도는 차는데.. 개새끼야."

그리고 해가 지난 후, 갑자기 캠핑에 꽂힌 친구가 추진해 갔었던 친구네 집 선산에선 

가자마자 폭우가 쏟아져 비바람을 맞으며 텐트를 쳐야 했다. 휴가라기보단 대민지원에 가까웠다. 

더불어 밤에는 친구의 돌아가신 할머니를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가장 최근에 갔었던 여수에선 시간을 잘못맞춰 바닷가에 들어가자마자 나와야 하는 경험을 했고 

돌아오는 길엔 음식을 잘못먹어 모두가 배탈에 시달렸다. 

결국 지금까지 몇 해 동안 같이 휴가를 가면서 물놀이 다운 물놀이를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우리는 

그냥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된 우리의 이번 휴가지는 가평이었다. 

대신 사람들이 너무 북적거릴까봐 성수기가 끝날 때 쯤 휴가를 가기로 했다. 올 해 우리의 휴가가 

평소때보다 조금 늦어진 건 그 이유때문이었다.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고 마침내 휴가를 떠나는 날이 됐다. 

아침일찍 집에서 나와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장소로 향했다. 다행히 날씨는 화창했다. 

매년 휴가를 갈 때면 비가 와서 걱정이었는데 그 날은 구룸 한 점 없이 화창한 날씨였다. 

되려 그동안 비가 너무 안와서 계곡물이 말라버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우리는 언제 다퉜냐는듯이 화기애애하게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가평에 도착하고 한참을 산을 타고 더 들어가서야 예약했던 숙소가 보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 운영하고 계시는 작은 숙소였다. 

휴가 생각에 들떠서인지 일찍 출발한 우리는 정해진 입실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지만

친절해보이는 할머니는 방이 비었으니 일단 짐을 풀라고 하셨다. 우리는 짐을 풀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토록 원하던 평범한 계곡이었다. 조금 위로 올라가보니 

수심이 꽤 깊어 보이는 곳이 있었다. 바로 옆에 다이빙 하기 좋은 바위도 있는 우리가 항상 

소망하고 갈망하던 그런 장소였다. 숙소앞의 얕은 계곡은 한산한 데 비해 그곳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조금 둘러보다 다시 숙소로 내려왔다. 

슬쩍 숙소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 말고도 두 팀 정도가 더 와있는 것 같았다. 한 팀은 아이들과 같이 온 

가족 이었고 나머지 한 팀은 여자 둘이었다. 그 쪽은 아직 방이 안비었는지 바깥 침상에 걸터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보던 친구가 말했다. 

"야. 저기 여자들끼리만 왔나본데?"

"근데?"

"뭘 근데야. 어떻게 이따가 밤에 같이 합석하자고 해볼까?"

물론 우리의 반응은 몹시 회의적이었다.

"들뜬건 알겠는데 사리분별은 좀 하고 살자."

"뭐하는 사람들인데. 유니셰프야?"

우리는 친구의 말을 무시하고 물놀이를 하기 위해 계곡으로 향했다. 

녀석은 미련이 남는지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다. 

깊은곳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우리는 그냥 숙소 앞에서 놀기로 했다. 

윗쪽보다 깊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허벅지까지는 물이 차는 곳이었다. 거기서 물놀이를 좀 하다가 

우리는 한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재미가 없다.' 

물의 깊이 따위는 상관 없었다. 남자 넷이서 놀면 물이 발목까지 오건 마리아나해구건 그와는 무관하게

재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애써 즐거운 척을 하다가 괜한 물탓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수위를 좀 높여야겠어."

"진짜? 이새끼들.. 오랜만에 놀러나왔다고 많이 대담해졌네.. 알았어."

그러더니 친구는 바지춤을 주섬주섬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미친새끼야. 그 수위 말고. 물이 너무 얕다고! 오자마자 잡혀가고 싶어?"

위쪽의 깊은곳으로 갈까 했지만 이미 사람들이 좋은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직접 수위를 높이기로 했다. 우리는 바닥에서 큰 돌들을 가져다가 물이 빠지는 곳에

하나하나 쌓기 시작했다. 한시간 정도 돌을 쌓기 시작하니 점점 댐의 모양이 되어가고 있었다. 

뙤약볕 밑에서 돌을 나르다가 문득 왜 이걸 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우리 이거 왜 하고 있는거냐?"

"수위 높이자며?"

"어. 근데 이상해. 재미가 없어. 힘들어."

"아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빨리 돌이나 가져와."

즐거운 휴가는 졸지에 노역이 되었다. 

그래도 물길을 막으니 수위가 조금 높아지는 것 같았다. 기분탓일수도 있었겠지만.. 

"야 안되겠다. 뭐 음악이라도 틀어봐." 

"아 진짜 귀찮게 하네.."

친구는 투덜투덜대며 챙겨온 스피커를 꺼내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동안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스피커에선 레미제라블의 ost가 흘러나왔다. 

누가 보더라도 완벽한 노역이었다. 

그렇게 계속 돌을 쌓고 있는데 누군가 계곡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우리와 같은 숙소에 있던 

그 가족들이었다. 그 가족은 물가옆에 주섬주섬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초등학생 쯤 되어보이는 

남매가 있었는데 둘이서 물놀이를 하다가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아저씨들 뭐해요?"

"응?"

"이거 뭐하는 거에요?"

"아? 이거? 이렇게 하면 물이 높아져."

누나처럼 보이는 여자아이는 그 모습이 신기했는지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이거 왜 하는 거에요?"

"이거? 친구를 잘못만나서. 그러니까 너도 친구는 잘 가려서 사귀어야된다. 알았지?"

다른 친구도 거들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안그러면 아저씨들처럼 이런데서 돌이나.."

"뭔소리하냐 애한테!"

그 아이는 계속 우리 주변을 맴돌면서 우리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넌 이름이 뭐니?"

"저요? xx에요. 아저씨는요?"

"아저씨? 그냥 24601이라고 불러."

"그게 뭔데요?"

"있어 그런게.."

그 아이는 우리가 돌을 쌓는게 재밌어 보였는지 동생과 함께 돌을 가지고 나르기 시작했다. 

뜻밖의 인력충원에 우리는 마지막 힘까지 짜내 공사를 마무리 했고 마침내 모든 물길을 막는데 성공했다.

허벅지까지 오던 물은 거의 허리춤만큼 올라왔다. 하지만 더이상 놀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다.

우리는 바위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졌다. 그 사이 아이들과 친해진 친구는 아이들을 데리고 물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우리는 중얼거렸다. 

"그래도 성공하긴 했네 헌팅.."

"그러게.. 나이차이가 좀 많이 나긴 하지만.."

"근데 이건 헌팅이라기 보다는 헤드헌팅 아니냐?"

"뭐 어쨌든 지금은 같이 놀고 있잖아.."

친구의 첫 헌팅 성공상대는 7살과 9살짜리 꼬맹이들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대낮의 피크타임을 노역과 베이비시팅으로 보냈다. 

그리고 밤이 찾아왔다. 

우리는 분주해졌다. 항상 우리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저녁 술자리였다. 

이번 여행 역시 마찬가지였다. 회비의 6할 이상을 식재료를 사는데 투자했다. 

불까지 세팅을 다 마친 후 우리는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고생을 해서 그런지 

고기는 꿀맛이었다. 한창 고기를 먹으면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낮에 봤던 그 여자들도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친구는 고기를 구으면서 그쪽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차마 말을 걸 용기는 없었는지 계속 쳐다보기만 했다. 그렇게 어둑어둑 해가 질 무렵이었다. 

우리는 아이스박스에서 그날의 메인메뉴를 꺼내 들었다. 그건 바로 최고급 한우 등심 이었다. 

보고만 있어도 침이 뚝뚝 떨어지면서 흐뭇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고기가 두꺼워 익히는 데만도 꽤 오랜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이 견딜수 없을 만큼 길게 느껴졌다. 

마침내 고기가 다 익고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고기를 입에 넣었다. 

천국의 맛이었다. 낮시간 동안의 고생을 잊게만드는 그런 맛이었다. 

그렇게 고기의 맛에 취해 있는데 친구가 갑자기 고기를 잘라서 다른 접시에 옮겨담기 시작했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우리는 당황했다.

"너 뭐하냐?"

"이거 주고 합석하자고 할라고."

"고기로 헌팅을 하겠다고.? 미친 지금이 뭔 선사시대냐?"

하지만 친구의 눈은 확신에 차 있었다. 나는 좀 못마땅한 기분이 들었다. 저 귀한 고기를.. 

".. 리스크가 너무 큰 거 아냐?" 

"장난해? 겨우 고기 두 점 가지고?"

"겨우 고기 두 점? 사과해. 한우님 한테 사과해 이새끼야."

우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고기를 들고 기어이 옆 테이블로 향했다. 

한참동안 대화를 나누더니 친구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럼 그렇지.. 

소중한 고기만 날리고 온 친구에게 욕을 한사발 쏟아내주려는데 돌아온 친구가 말했다. 

"옮기자.."

"뭐?"

"같이 놀재."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잠시 서로의 손을 꽉 마주 잡았다. 

역시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우리가 알고 지낸지 20년 만에 처음 있는 쾌거였다.

우리는 달아오른 얼굴을 들킬까 고개를 숙이고 옆 자리로 옮겨 앉았다. 

같이 술을 마시며 얘기하다보니 같은 동네 사람들이었다. 

낯선 장소에서 동향사람을 만나서인지 우리는 금새 친해졌다. 

밤새 함께 술을 마시고 다음날 일어나니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친구들 역시 숙취로 고생하는 듯 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숙취로도 친구들의 뿌듯한 표정은 

숨겨지지 않았다. 밖이 소란스러워 문을 열어보니 어제 같이 술을 마신 여자들이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친구는 잽싸게 다가가 그녀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들이 떠나고 난 후 우리도 슬슬 짐을 싸기 시작했다. 친구놈은 짐을 싸는 내내 

싱글벙글이었다. 평소였다면 피곤해서 집에 가는 내내 곯아떨어졌을 법도 한데 

녀석은 집에 가는 동안에도 연신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모습이었다. 

집에 도착하고 집을 풀면서 친구는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번호를 땄다며 그 번호로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없는 번호였다.

언제나 그랬듯 우리는 아무일도 없던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댓글 1

LG디스플레이 · i*********

ㅋㅋ 이제 왜 조회된지는 몰겠지만 마무리 맘에드네요 ㅎㅎ 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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