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어진(?) 싸이월드에서 시작했는데요.
제가 쓴 엉뚱한 글에 댓글을 꼬박 달아주던 사람이 있었어요.
지금은 기억에도 없는 글이었는데
이러쿵 저러쿵 댓글로 이야기하다가..

먼저 알려준 제 전화번호로 그 사람 전화가 와서는
전화를 하다가 뭐 아이크림(피부 화장품)인가를 보내준다길래
난 부산이고 당신은 경주인데 괜찮다고.. 하다가
한사코 마다하는데도 자기가 언제 한 번 내려오겠데요.

그 사람이 내려오겠다고 통보하는 날이
회사 회식이었는데 불구하고.. 회식하면서 술도 한 잔 안마시고
그 사람 내려온 부산역에 마중을 나갔더래요.

겨울이었는데 펄이 있는 롱코트에 굽 높은 구두.
단정하게 예쁜 외모보다는 고급스럽게 아름다운 첫인상이었어요.
한 손에는 경주빵 포장을 해서는 먹으라고 저에게 건네면서
명함을 주더라고요.

"아 예 명함 감사합니다. 어쩌죠? 전 명함 나눌꺼라 생각은 못했는데..."
그렇게 머쓱하게 인사 나누고

걷는 길마다 맨홀이 많아서 "아 조심하세요 그 높은 굽 맨홀에 빠지겠어요"
수차례 그랬더니..
"맨홀에 굽 빠진 여자친구 있었어요?" 소리에 엄청 웃었던 기억이 있네요 ㅋㅋㅋ

밤에 여길 오신다니, 뭘 하고 뭘 보여드려야 되나.
부산 사람 약간 그런 거 있거든요..
'마 니 붖싼 어디 가서 뭐 해봤누?!?' 하는거,
관광 가이드 강박증 있어요.

태종대 가서 자갈 부딪히는 바다 소리 듣고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어디 근사한 일식집도 아니었고
온갖 상호가 한데 모인 회센타에 가서 광어회에 술 마셨어요.
술은 쏘주 안시키고 좀 더 비싼 술 시키데요. 매화준가 뭔가..

저는 운전하느라 못 마시고.
홀짝홀짝 마시더니만 부산 와서 나 만난 기념으로
자기가 비운 매화주병을 가져가겠데요 ㅋㅋㅋ
아 이 사람 재밌죠?
전 뭐 명품은 모르고 그냥 한 눈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빽에다가
빈 매화주병을 뒤적뒤적 넣는데 그게 어쩜 그렇게 웃기면서도..
의미가 깊던지요. 나 만나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을 저렇게까지 생각해주는 건가? ㅋㅋ
이 때, 마음이 적잖게 녹았던 것 같아요.
술도 한 모금 안 했는데 취한듯이..

경주에서 내려오기 이전에 제가,
'잠은 어디서 해결하세요.' 물었더니
뭐 같이 자면 되죠. 이렇게 말하길래..
"진짜 별꼴이네, 이상한 사람이야" 하면서 호텔방 하나를 예약한 나.....

함께 입실해서는 그 어떤 스킨십도 없이
서로 노곤한 몸으로 침대에 벌러덩 누워 클래식 듣다가..
저 이제 술 마실 수 있으니 남포동으로 나갈래요? 제가 말해서
남포동에서 꼬치구이랑 사케 엄청 마셨어요.

몸도 작은 사람이, 아까 그렇게나 회 먹어놓고
엄청나게 또 먹길래 아 이 사람 증말 이상한 사람이야, 하면서
깔깔거리며 술 마셨네요.

호텔에 돌아와선,
사람이란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어떻게 저렇게 광안대교를 건축할 수 있었을까요? 하는 물음에,
"아 예 정말 대단하죠? 우리 지금 이러고 있는 게 더 대단한 것 같아요" 했어요.

그렇게 조명등 하나 없이 그 밤을 보냈네요.

일에 잠깐 여유가 생겨서 끄적이기 시작했는데
그 때를 생각하니 실웃음이 지어지네요.
그냥 이런 이야기도 있구나, 생각하셨으면 *.*

모두들 쌀쌀한 최근에 평화로이 퇴근하시길..
블라블라 덧붙이면.. 저는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영화 <이장>을 봤거든요.
여러 즐거운 생각들을 할 수 있는 괜찮은 드라마였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