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픽 블라블라

고아원과 추석과 아버지라는 이름

삼성SDS · 그*****
작성일2019.09.11. 조회수1,374 댓글12

우리 고아원은 신생아부터 만 19세 전 아이들까지를 모두 커버하는 고아원이다. 심지어 19세를 지나 대학생이 되어 오더라도 너그럽게 품어주는 시설이었다.

우리 시설은 수녀회에서 운영했으므로 침방 수녀님을 엄마 수녀님이라 불렀고, 그 외에는 이모 수녀님이었다. 특별한 위치에 있는 시설장 수녀님, 원장 수녀님, 총원장 수녀님은 별도로 부르기는 했으나 전체적인 맥락은 모계 칭호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부계에는 무지했다. 아버지는 하느님 아버지이고 그 외에는 없었다. 오죽하면 초등 교과서에 있는 아빠라는 단어는 단순 암기에 불과할 단어였을까. 그런 나에게 아버지라는 말을 인식시켜준 강렬하고 최악인 사건은 내가 대학생 때 일어났다.

그 날은 추석 가까운 날에 내가 시설에 방문했었던 때였다. 정문 가까이에 있던 건물 회랑이 아주 시끄러웠다. 그 곳은 정문과 가장 가까웠기에 우리 시설을 나타내는 상징물이 가장 많이 있는 곳이었다. 바뇌의 마리아상이 외부에 서 있었고, 시설이 외부에서 받은 격려 상패와 트로피들이 유리 진열장 안에 걸죽하게 늘여져있는 곳이었다.

평소에는 매우 엄숙하고 차분한 그 곳이 소란스러웠다. 급히 다가가보니 허름한 차림의 장년과 노년층 사이의 남자가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술 냄새와 쉰냄새가 들끓고 주먹을 쥐고 울며 고함을 질렀다.

그 말인즉슨, 딸이 보고 싶다고, 딸을 내놓으라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막무가내로 안으로 들어가다가 수녀님들이 만류하니 주먹으로 치는 시늉을 하다가 진열장을 깼다. 그래도 안되니 엉엉 울며 바닥에 숫제 누워버리는 것이다. 나이가 많은 노수녀님이 어쩔 줄 몰라하다가 졸업생 남자에게 부탁하며 전화하는 것을 보았다.

남자는 딸이 보고 싶다고 술냄새를 풍기며 울었다. 근처에 있는 나의 과거 침방 수녀님이 저 사람은 술마시면 폭력을 휘둘러 위험하다고 알려주었다. 그래도 차마 경찰에는 신고 안한다고, 딸이 시설에 입소하니 그나마 사람되었다고 하였다.

그것이 내가 본 날것의 아버지였다. 나는 그 초라하고 잔인한 장면을 보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불쌍하다는 마음만이 잠깐 스쳐지나갔을 뿐이었다. 그것도 그 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혹여나 딸이 알게 되었을까봐.

나는 지금도 부정에 대해서는 잘 알지못한다. 나를 버린 미혼모 어머니를 고민해도 모자란데, 아버지는 더더욱 생각할 여유가 없지마는.

혹여라도, 그도 그런 초라한 모습일까? 그렇다면 차라리 나를 모르기를 바란다.

#고아원

댓글 12

삼성SDS · 그***** 작성자

제가 겪은 이야기입니다.

공무원 · 나*****

행복한 추석 명절이 되길 바랄게

BGF리테일 · s*****

언니 그 와중에 글 담담하게 잘 쓰네 브런치나 블로그 하면 나중에 초대해줘..ㅎㅎ 내일이면 추석 연휴다 마음 편히 푹 쉬는 연휴 보내길 바라!!

국민은행 · 몰*

아부지들은 왜그러실까요 정말...
근데 전 돌아가시고서야 알았어요
이세상 참 외로우셨겠다..
딸자식. 아들자식 힘들게 키워냈는데 그마음
알아드리지 못했구나
그냥 전 안아드리지못한거. 손 한번 살갑게 잡아드리지 못한게 마음에 늘 걸려요

경찰청 · 정****

경찰에 꼭 신고하세용

LG CNS · 김**

요즘은 글 안쓰시나요? 기다립니다.

현대두산인프라코어 · 보*********

이번 본문은 무덤덤하게 읽었습니다
이전 본문들의 강렬한 기억의 부작용입니다

어제 알았으면 잠못드는 밤이었을 터이고 정주행이 가능했을 터인데(실제로 아수라장 블라에서 밤새 기생했다는) 오늘은 힘들겠네요
그래도 읽는데 까지는 ㄱㄱ

아껴서 차근차근 볼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입니다

중간 정산(?) 느낌으로는 많은 댓글러들이 언급 했듯이 좀 더 오픈된 공간에 올라가는 글이 되었으면 바래봅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는 브런치 정도가 일감으로 보이기는 하네요
이것도 철모르는 꼰대짓인거죠?

이번 본문은 명절 인접이었나 봅니다
통상 명절은 사람에 따라 극명하게 체감되는 의미가 다르기에 불현듯 아버지라는 명제가 나왔는지도 모르겠네요

저포함 우리는 가끔씩 기억 내지는 현실을 애써 도려내고 살고 있지만 그런다고 그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더군요

그것이 무엇이든

그래서 있는 그대로를 직시하는 힘을 키우라고 그리들 떠드나 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술취하신 그분은 잘 사실까요?
흉이 걱정했던 그 따님은 폭풍 성장했겠네요

덧) 너무 본인을 몰아가지는 마시기를 ㅠㅠ

인기 채용

더보기

블라블라 추천 글

토픽 베스트

바오패밀리
암호화폐
나들이 명소
자녀교육·입시
패션·뷰티
육아
유우머
보험
직장인 취미생활
I'm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