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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원에서 고아가 만난 외국인 봉사자

삼성SDS · 그*****
작성일2019.09.28. 조회수2,025 댓글18

나는 미혼모의 자녀로 태어나, 수녀원 산하의 병원에서 태를 끊어 울었다. 내 이름은 병원의 간호사가 지어주었다. 내게는 그것이 큰 비극이 아니었다. 자라면서 만날 고통이 더 컸을테니까.

우리 고아원에 언젠가 푸른 눈의 외국인 봉사자가 방문을 하였다. 그것은 우리같은 어린이들에게는 큰일이었고 어른들에게는 늘상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왜냐면 우리 고아원의 정체성은 사실, 외국인으로부터 왔기 때문이었다. 키가 멀거머니 큰 미국인 신부는 한국전쟁 후 한국에 와서 우리 고아원을 설립하였고, 독일의 독지가는 그 사정을 듣고 안타까워 거금을 기부해 기념병원을 설립하였다. 그 시설에서 나의 어머니는 몸을 풀었고 나는 그 병원에서 자랐지만, 그 후 내가 바랄 수 있는 사랑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때 그 외국인 봉사자가 온 것이었다. 이름은 제이슨 라프리, 한창 유행이었던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의 고향에서 온 상냥한 봉사자였다.

그때 내가 그를 대면했던 건, 고아들 중에 가장 공부를 잘했기 때문이었다. 수녀님들은 그와 어떻게든 대화를 나누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나는 더듬거리며 '아이..아이 해브 투 케어 차일즈.. ' 라고 말했다. 제이슨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케어 칠드런.. ? 낫 차일즈.'

그의 어법은 항상 상냥했으며 결코 화를 내거나 짜증내는 법이 없었다. 서툴렀던 중학생인 나는 그로부터 영어를 배웠으며 더 나아가 대화를 배웠다. 그는 항상 내게 하는 말이 있었다. 비 케어. 비 해피.

이는 어쩌면 영미권의 하고많은 어법 중의 하나일텐데 내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에겐 많은 봉사자가 방문하지만 그들은 항상 '건강하니? 수녀님들 말 잘들어야한단다.' 를 골자로 말을 건넸다. 고아 개인의 건강이니 성적을 떠나 행복을 언급한 사람은 그 외국인 봉사자가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비 해피의 의미가 다른 줄 알고 열심히 사전을 찾았다. 그 후 알게 된 건, 해피와 행복은 어떻게 그 발음마저 닮았을까 하는 깨달음이었다.

제이슨 라프리는 대체로 유쾌했지만, 우리가 슬퍼하고 우울해할때 몇가지 쉬운 단어를 섞어 본인의 과거를 설명해주었다.

마이 마더.. 본 식스틴. 어딕티브. 드러그. 벗 아임 해피. 나우. 메이저 마린 사이언스.

기억나는 단어는 그런 것인데 다 이해가 갔다. 그의 어머니는 마약 중독자로 16살에 그를 낳았지만.. 그는 본인의 힘으로 극복했고 지금은 해양과학을 전공하고 머나먼 땅에 와서 행복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 제이슨 라프리는 1년 후 고국으로 돌아간다며 내게 전화번호를 남겨주고 사라졌다.

나는 내가 가장 힘들 때, 그것을 보며 울었다. 주방의 공용 전화기를 몰래 이용하려했다가, 국제전화를 거는 방법을 몰라서 다이얼을 돌리다가 포기하고 돌아섰던 때가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가 빌어주었던 행복은 나날이 갈수록 무거워졌다. 그 옛날, 대서양을 건너 비행기를 타고 온 나라에서 고아원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필히 그만큼의 무거운 사랑을 지녔으리라.

그가 빌어준 행복은 가볍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행복하고 싶었다. 비 해피. 어째서 영어의 해피는 행복과 어감마저 비슷한가. 끝끝내 걸지 못한 전화는 내가 답하지 못했던 그 인사와 비슷하다.

비 케어. 비 해피.

#고아원

댓글 18

새회사 · l*********

간만에 실시간으로 글 보네요. 오늘도 잘 읽었어요. 👏 바라는대로 행복하세요

아시아나IDT · 난****

형 글 종종 보는데 볼때마다 필력에 감탄해.
우리 같이 행복해지자.

한국투자증권 · u*******

진따 책 읽는 느낌..비 해피^^

새회사 · 🍁*******

스스로 잘 챙기구 행복하쟈💗

F&F · c******

진짜 Be Care ! Be Happy ! 울림이 있는 말이야.

한국암웨이 · d*********

감동파괴해서 미안한데...take care 아닌가 ㅠ

서울우유 · 나****

Be happy! 형 나중에 책써도 될 정도의 필력이다

새회사 · 집*********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다가 어쩌다 쓰니 글을 보고, 또 해시태그를 눌러 예전글부터 이 글까지 왔어. 내내 종이를 보기만 하다가 공용 전화기를 들었던 그 날은 쓰니가 얼마나 힘든 날이었을지, 막상 쓰려니 방법을 몰라서 포기했을땐 얼마나 절망감이 들었을지 내가 쓰니가 아닌데도 너무 와닿아 여기까지 마음이 아려왔어. 어린 나이에 작은 솜사탕 하나 손에 쥐지 못해도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데 이렇게 세심한 마음을 가졌던 쓰니에게 솜사탕은 커녕 당연한 것들도 당연하지 못했던 일들이 많았어서, 쓰니 마음에 박혔을 굳은살들이 얼마나 될까 헤아려보다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어서 그만뒀어. 나이가 들면서 물질적인 여유보다 마음에 여유를 갖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는 걸 차츰 깨닫고 있어. 그 사막같은 곳에서 이십년 내내 목말랐다면 올 겨울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예전보다는 따뜻하게 보내길 바라. 이런 인사가 쓰니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조금 어렵지만 미리 메리크리스마스!

삼성SDS · 그***** 작성자

고맙습니다..

코오롱글로벌 · l*********

문장으로 지금 느낌을 표현할 수 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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