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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원에서 나온 고아의 집

삼성SDS · 그********
작성일2022.10.15. 조회수44K 댓글649

나는 미혼모의 아이로 19년의 세월을 고아원에서 보냈다. 그말인즉슨 나는 19년동안은 돈 한푼 내지 않고 내 한몸 뉘일 수 있는 곳을 제공받았다는 것이다.

그안의 삶이 어떠하든, 내게는 집이 있었다. 여름에는 햇빛을 피해 미지근한 보리찻물을 먹으며 더위를 식히고, 겨울에는 텅텅 소리를 내는 라디에이터 옆에서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건 감사할 일이었다.

그건 당연하지 않은 축복이었다. 그걸 그땐 당연하게 여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참 배가 불렀던 고아였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유예받았던 퇴소를 목전에 두었다. 퇴소. 그 느낌을 일반인들은 잘 모를 것이다. 남들은 허름하다 말하는 거적떼기일지라도 몸을 가려주는 천옷을 벗어야하는 느낌이었다. 외면하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느닷없이 다가왔다. 내가 홀로 서야하는 시간이.

다행히 나는 졸업 전에 지금까지 다니는 회사의 입사가 확정되었지만,  그 회사는 기숙사를 제공해 주지는 않았다. 고아원 출신 고아들은 숙식이 제공되는 공장에 취직하는게 일반적이라 내가 특이한 경우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수녀님께 첫월급이 나오기 전까지 지금 지내는 곳에서 계속 지낼 수 있는지 여쭤보았는데, 수녀님은 퇴소를 하면 일단 나가야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뒤에 힘들면 연락을 하라고 하셨다.

퇴소 후 첫 월급이 나오기 전. 그 기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기간이었다. 자립지원금 500만원이 계좌로 들어왔지만 나는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어찌해야 할까? 나는 내일 출근해야하고 집은 없고 수중의 돈은 500만원이 전부였다. 나는 사회를 잘 몰랐고 그래서 그저 어쩔 줄 몰라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 때 내게 조언해준 선배가 있었는데, PreSTC에서 만난 선배였다. SDS에서는 입사 전 트레이닝 코스를 제공해주는데 그것이 PreSTC였다. 그 선배의 조언에 따라 나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낙성대에 위치한 저렴한 원룸을 계약할 수 있었다.

그 원룸은 노부부가 가진 건물 꼭대기에 위치한 원룸이었다. 보증금 500만원, 월세 30만원. 할머니가 계약금으로 50만원을 받아야한다고 했고 나는 그러마하고 눈을 멀뚱히 뜨고 있다가 가벼운 타박을 들었다. 계약금은 계약 당일 현금으로 드려야한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다.

급하게 근처 ATM에서 뽑아온 50만원을 드리고, 두 장의 종이를 겹쳐 도장을 찍었다. 내가 어른이 되어 한 최초의 계약이었다. 그리고 내 삶에서 내가 최초로 마련한 집이었다.

비록 창문이 똑바로 닫히지 않아 우풍이 들고 형광등이 자주 나가는 원룸이었지만 나는 그 곳에서 5년을 살았다. 그 5년동안 집주인인 노부부께서 나를 참 잘 챙겨주셨다. 늦게 퇴근했을 때 현관문 문고리에 걸어둔 비닐 봉투를 볼 수 있었다. 그 안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된장찌개와 오이지 무침이 있었다.

집주인 할머니 할아버지는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결국은 내가 고아인걸 아셨을 것 같다. 내가 방을 뺀다고 이야기했을 때, 어디 갈 곳이 정해졌는지를 물어보셨을 때 확신했다. 그런 분들을 내 첫 집주인으로 만난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나는 오래된 아파트지만 온전히 내 것인 집에서 살고있다. 집이 있다는 건 너무나도 큰 행복이다. 때때로 고아원 시절의 악몽을 꾸다가 깨어났을 때, 나는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이 내 집인  것을 확인하고 안도한다. 내 집이다. 내가 있을 수 있는 곳이다.

#고아원

댓글 649

SK이노베이션 · l*******

형 책 하나 내보는거 어때. 필력이 너무 좋다.
그리구 형처럼 살아갈 사람들과 살아올 사람들이 많을텐데 뭔가 많은 에피소드에서 위로와 감동을 얻을듯

롯데쇼핑 · 한**

앞으로 꽃길만걸으시길 수고했어요

BNK캐피탈 · x*****

내가 고아원에서 아이들돌보는 일을하고싶은데 너무 감정이입이되서 힘들진않을까 검색하다가 이글을발견함 형 썻던 글로 책한번내봐 책을 본인돈을 주고 내서 홍보해도 되고 출판사로 보내도 되고 하니까 꼭 출판해서 앞으로 행복한일만 있었으면 좋겠어

더네이쳐홀딩스 · o*********

글쓴이는 물론 글쓴이와 같은 입장인 사람들에게 앞으로는 축복만 가득하길

작성자가 삭제한 댓글입니다.

롯데쇼핑 · w*********

뭐야 이 사회 부적응자는

국민은행 · I*******

일년이 지나 갑자기 생각나서 들립니다. 이번겨울도 따뜻하게 항생 행복한 일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S-OIL · 낮***

맘이 아프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이 글을 읽고 제 주변을 살피게되더군요 늘 응원하겠습니다 !!!

스타트업 · l*********

이 글을 보고나서 보육원에 매달 기부하고 있습니다.이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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