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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개같은남자와 고양이같은여자 EP.7

작성일2018.11.13. 조회수375 댓글1

#이야기
#개와고양이

EP.7 화해

그때 나는 큰 행사 몇 개가 끝나고 이제는 조금 한가해지나 싶었지만 그건 환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다음 주에 있을 학과 워크숍 준비때문에 환은 눈 코 뜰새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숙소를 정하고, 버스를 대절하고, 신경 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매일같이 회의를 하고, 밤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일이 잦아졌다.
학생회 임원이었던 요안나와도 자연스럽게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날 이후, 환을 대하는 안나의 태도는 전보다 좀 더 냉랭해 진 것 같았다.

물론 환의 느낌이었다. 신경쓰지 말자고 마음 먹었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수가 없었다.
환은 사람 마음이란게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자주 마주치는 사이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신경이 쓰였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온전히 자신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환은 사과하는 대신 모른 척 대수롭게 여기지 않기로 마음 먹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잘못에 대한 죄책감과 불편함을 덜어보려는 속셈이었다.
난 언제나 그랬으니까.

정면으로 부딪히기 보다는 물러서가나 돌아가는 방법을 택했다.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나서야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환은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요안나의 모습을 힐끗 바라봤다.
요안나는 허리를 꼿꼿이 피고 앉아서 미리 조사한 자료들을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으아~ 진짜 못해먹겠네. 배도 고프고. 일단 뭐라도 좀 먹고 하자.”

의자에 앉아서 여기저기 전화를 하던 희건이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정신없이 일을 하던 후배들이 희건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오빠가 사주는 거에요?”

“형. 비싼거 먹어도 되요?”

“그럴까? 간만에 주머니도 두둑 하겠다.
배때기에 기름칠 한 번 해?”

희건은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툭툭치며 말했다.
환은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항상 돈없다고 빌빌대던 인간이 웬일이지? 잠깐.

“형. 그거 학회비 아니에요?”

“맞는데. 왜?”

“미쳤어요? 그걸로 야식 사먹자구요?”

“어. 왜? 안돼?”

“그걸 말이라고해요?”

“왜. 이시간까지 학교에서 뺑이치고 있는데 그정도는 괜찮잖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줘요. 불안해서 형한테 못맡기겠어.”

“뭐냐? 나 못 믿냐?”

“시끄럽고 빨리 내놔요.”

희건은 볼멘 목소리로 구시렁대다가 봉투를 내밀었다.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인간 같으니.
결국 희건과 환이 돈을 모아서 배달음식을 사기로 했다.
희건은 몇 번 툴툴대더니 결국 지갑을 꺼내 들었다.
야식을 먹고 나서 환은 학회실 밖으로 나섰다.

그때의 기억으론 텅 빈 건물 복도는 어두컴컴했다. 환은 복도에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잔 뽑아들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환은 건물 앞 벤치에 앉았다.
달은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구름이 낀 건지, 아니면 오랫동안 종이 위에 빼곡하게 새겨진 글자들을 보느라 눈이 침침해져서인지 환의 눈엔 오늘따라 달이 흐릿하게 보였다.
환은 고개를 들고 한참동안 달을 바라봤다.

“뭐하냐? 추운데 혼자 개폼 잡고 앉아서?”

어느새 밖으로 나온 희건이 환의 옆에 걸터 앉으며 말했다.
다리를 꼬고 벤치에 기대 앉은 희건은 익숙한 자세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냉정한 새끼.. 야박한 새끼.. 맛있는 것 좀 먹겠다는데.. 하여간 도움이 안돼요 도움이..”

희건은 담배를 입에 물고는 연신 투덜거렸다.

“공금횡령으로 잡혀가고 싶어요? 형 설마 벌써 쓴건 아니죠?”

“안썼어 임마. 못 믿겠으면 장부 확인해 보던가.”

“이건 뭐 믿을수가 있어야지.. 철 좀 들어요 제발.”

“뭔.. 니가 우리 엄마냐?”

환을 보며 피식 웃던 희건은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근데 너네 싸웠냐?”

“누구요? 나?”

“그래. 너랑 안나. 둘이 말도 잘 안하는 것 같던데. 설마 너 체육대회 끝나고 사과 안했냐?”

“……”

희건은 딱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너나 철 좀 들어라 너나. 그게 뭐 힘들다고. 그냥 가서 미안하다 한 마디만 하면 될 것 가지고.”

“됐어요. 지금와서 무슨.”

“저 나이때 여자애들이 얼마나 예민한데.. 하여간 섬세함이 없어요… 비웃냐?”

코웃음 치는 환을 보고 희건이 말했다.
평소의 행동을 보면 희건은 환이 아는 사람중에서섬세함이라는 단어와는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희건은 후 하고 담배연기를 내뿜고는 말했다.

“너 안나 좋아하냐?”

갑작스러운 희건의 질문에 환은 커피를 마시다 사레가 들렸다.
환은 한참을 켁켁거리다 희건에게 말했다.

“뭔소리에요. 갑자기.”

“아냐? 아까부터 계속 힐끔힐끔 쳐다보더만.
내가 또 눈치 하나는 빠르잖아. 아냐?”

“그런거 아니에요.”

“그래? 안나 괜찮잖아. 이쁘고. 걔 좋다고 쫓아다니는 애들도 꽤 될껄?
좋아하는 거면 내가 소스를 몇 개 좀 줄려고 했지. 안나랑 나랑 친하잖아. 또.”

“아 뭔소리에요 자꾸.
하여간 쓸데없는 오지랖좀 부리지 마요 형.”

희건은 환을 빤히 쳐다봤다.
당황한 표정을 들킬까 환은 고개를 돌렸다.

“하여간 참.. 정이 안가는 놈이란 말야.
하긴.. 너 같이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 그런 애틋한 감정이 뭔지나 알겠냐?”

“지는..”

환은 작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지는? 지는? 이 새끼 보게. 여자친구도 없는게 뭘 아냐 이거냐? 요즘 매가 좀 부족했지?”

희건의 손이 날아들었다.

“켁.. 아! 진짜!”

그렇게 한참을 투닥거리다 제 풀에 먼저 지쳐버린 희건은 고개를 숙인 채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하여간 요즘 어린것들은 버르장머리가 없어.."

“예 나이 몇 살 더 드셔서 참 좋으시겠습니다.”

희건은 다시 환을 때리려다가 그마저도 귀찮아졌는지 벤치에 눕다시피 기대 앉았다.

“야.”

“왜요?”

“그럼 그냥 먼저 사과해.
뭐 좋아하는 사람이라 앞에서 약한 모습 보이기 싫고, 가오잡고 싶어서 그런거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라며.
그럼 그냥 니 쓸데없는 고집이잖아.
애도 아니고 말 한마디면 끝날일인데 혼자 낑낑대고 있는 것도 꼴보기 싫다 솔직히.
다른 사람도 불편하고.
제일 불편한 건 너일테고. 안그래?”

콕 하고 정곡을 찌르는 희건의 말에 환은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 볼게요.”

“아.. 새끼 고집하고는.
미안해 한마디가 그렇게 힘드냐?”

“……”

사과하기엔 너무 늦었을지도 몰랐다.
환은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한 마디면 된다니까?”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말했지. 소스가 다 있다고.”

그렇게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희건은 마지막으로 담배를 힘껏 빨아들이고 내뱉은 후에 담배를 비벼끄고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먼저 들어간다. 빨리 들어와.
마무리 하고 슬슬 가자.”

희건 들어간 뒤에도 환은 계속 벤치에 앉아 있었다.
환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담배연기 사이로 보이는 달은 여전히 흐릿해보였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내일 보자.
내일도 할 거 많으니까 술쳐먹지 말고 집에가서 자라. 알았냐?”

“오빠나 먹지마요!”

“형이 제일 걱정되는데요?”

“시끄럽고 빨리 기어 들어가!”

그들이 나온건 거의 자정이 다 되어서였다.
인사를 하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
같은 건물에 사는 요안나와 환은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환은 앞서 걸어야 할지, 아니면 뒤에서 걸어야 할지, 나란히 걸어야 할지 고민하다 결국 나란히 서서 걸었다.

그때의 밤공기가 제법 쌀쌀했다.
둘 사이에선 차갑고 어색한 공기만 흐르고 있었다. 유독 집으로 가는 길이 멀게 느껴졌다.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그림자는 걸을수록 가까워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멀었다. 길고 어색한 침묵의 끝에 환은 먼저 입을 열었다.

“..몸은 좀 괜찮아?”

“괜찮아요.”

밤공기보다 차가운 요안나의 말에 환의 입은 다시 얼어붙었다.
집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뭐라고 말을 꺼내보려 할 때마다 굳어버린 입은 머뭇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환과 요안나는 정문 앞에 멈춰섰다.

“들어갈게요. 고생하셨어요 오빠.”

“그래 너도.”

“.. 오빠. 저한테 뭐 할 말 있어요?”

갑작스러운 요안나의 질문에 당황한 환은 머뭇거리다 말했다.

“아니.. 내일 봐.”

“그래요.”

말을 마치자마자 요안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뒤따라 올라가던 환은 2층과 3층 계단 사이에 멈춰섰다.
요안나는 이제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안나야.”

집에 들어가던 요안나는 환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왜요?”

환은 숨을 한 번 들이쉬고나서 그토록 고민했던 말을 꺼냈다.

“미안해.”

“뭐가요?”

요안나는 살짝 미간을 찡그린 채 되물었다.

“그냥.. 체육대회 때 화내서. 미안해.”

“빨리도 말하네요.”

“그러게 좀 늦었네..”
차가운 말이었다.
요안나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환에게는 그 찰나의 순간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내일봐요. 오빠.”

여전히 냉랭한 말투였지만 요안나의 입술 언저리엔 미소가 번졌다.
눈꽃처럼 차갑지만 온세상에 가득 번지는 미소였다.
요안나의 모습은 문 뒤로 사라졌지만 그 미소는 환의 입가에까지 번진채로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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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SOF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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