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픽 블라블라

대학시절 개같은남자 고영이같은여자 이야기 EP.6

작성일2018.11.13. 조회수733 댓글3

#이야기
#개와고양이

작은 방 안은 쓸쓸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비어 있었다.
책을 들고 앉으면 책상이 되고,
접시를 올리면 식탁이 되는 테이블 하나와 작은 TV, 두 단으로 된 책장, 행거, 작은 서랍장 하나가 방 안에 있는 전부였다.

책장에는 전공서적과 몇 가지 소설책이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벽에 설치된 행거에는 종류별로 나란히 걸려있는 옷가지들이 한 쪽 벽을 가리고 있었다.

서랍장 안엔 속옷과 티셔츠가 줄을 맞춰 빼곡하게 차 있었다.
깔끔하다 못해 휑한 느낌이 드는 방이었다.
남자의 방치곤 지나치게 깔끔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환이 특별히 남들보다 깔끔을 떤다거나,
결벅을 가지고 있는건 아니었다.

어쩌면 어려서 부터 단체생활을 했기에 생긴 버릇일지도 몰랐다.
지저분함을 못견딘다기 보다는 익숙함에서 오는 습관이었다.
환은 책장위를 손가락으로 슥 훑었다.
먼지가 뽀얗게 묻어나왔다.
행사다 뭐다 여러가지 일에 치이다보니 청소를 하는 것도 잊었다.

빨래통에 제법 쌓인 빨랫감들을 세탁기에 집어 넣고 돌렸다.
그리고 빗자루로 방을 쓸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방안을 청소하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끄응 하는 신음소리가 새나왔다.
무릎이 시큰거렸다.
깨끗해진 바닥을 한 번 둘러보고 나서 환은 침대 위에 걸터 앉아 시큰거리는 무릎을 주물렀다.

아무리 망가진 무릎이라지만 손바닥만한 방 좀 청소 했다고 이렇게 아플리가 없었다.
체육대회 때 무리했던게 그 이유겠지. 라고 환은 생각했다.

이제 한창일 나인데 영감 다됐네.

환의 얼굴에서 씁쓸한 웃음이 번져나왔다.
환은 몸을 일으켜 책상 위를 정리했다.
책상 위에 펼쳐진채로 놓여있는 책들을 서랍장에 꽂아 넣고 한 켠에 널려있는 사진들을 정리했다.
반듯하게 추려진 사진들을 들고 서랍장을 열었다.

환은 사진을 집어넣는 대신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사진들을 보기 시작했다.
다 같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 비에 홀딱 젖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 뒷풀이 자리에서 잔뜩 취해서 세상모르고 자는 희건의 사진을 보니 환의 얼굴에 웃음이 묻어났다.
그렇게 웃으면서 사진들을 넘겨보던 환의 손이 멈췄다.

짐을 정리하다 요안나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 요안나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환은 한참동안 그 사진을 바라보다가 서랍장 안에 사진을 넣었다.
체육대회 이후, 환은 학교에서 요안나와 몇 번 마주쳤다.
요안나는 그 날의 일은 잊은것처럼 웃으며 인사했지만, 그 뿐이었다.
안면이 있는 사람들끼리 흔히 나누는 격식 뿐인 인사였다.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고 나면 환은 한동안 텁텁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처음 며칠동안 환은 그 날 일을 사과할까 생각했다가 그만두었다.
이미 지난 일이었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찝찝한 마음이 남겠지만 시간 속에 흘려보내면 그만이었다.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 환은 세상을 편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기엔 아직 어린나이였지만 스스로 느낀 점은 있었다.

작은 감정의 소모 하나하나가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든다는 점이었다.
그 중 가장 아프게 찌르는 감정은 후회였다.
태엽을 거꾸로 감아도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일어나버린 사건은 아무리 후회해도 되돌아오지 않았다.
자기가 저질러버린 실수도, 맛이 가 버린 무릎도.

물론 살면서 사과를 해야 할 때도 있었다.
예를 들자면 자다가 잘 모르는 여자의 가슴을 만진다거나 하는 일엔 사과가 필요했다.
한 발 더 집어넣으면 좀 더 나아갈 수도 있지만,
돌아오기도 힘들어진다.
그래서 환은 발을 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환은 굳게 닫힌 서랍장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환은 서람장의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희건이었다.

“여보세요.”

“어디냐?”

“집인데요. 청소하고 있었어요.”

“야. 안나네 집에 가서 걔 있는지 좀 확인해 봐.”

갑자기 튀어나온 불편한 이름에 환은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왜요? 전화해보면 되잖아요.”

“전화를 안받으니까 가보라는 거 아냐.
오늘 발표날인데 수업도 안나오고 전화도 안받아. 가서 뭔 일 있나 한 번 보고 전화해라.”

“…알았어요.”

문 앞에 섰지만 선뜻 손이 올라가지 않았다.
환은 한참동안 문 앞에 서서 망설이다 결국 벨을 눌렀다.
안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몇 번 더 벨을 눌러봤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집에 없나 싶어 돌아서는 순간,
문 너머에서 희미하게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환은 그렇게 멍하니 문 앞에 서 있었다.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어.. 나 환인데..”

빼꼼 문이 열렸다.

“어 오빠. 무슨 일이에요?”

“아니.. 회장형이 너 전화도 안받고 연락이 안된다고 한 번 확인해 달라고 해서..”

“희건오빠가요? 자고 있었어요..
아 맞다 오늘 발표였지! 큰일 났네..”

안절부절 못하는 요안나는 파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 어디 아퍼?”

“네.. 몸이 좀 안좋아서.. 아… 어떡하지 늦었네..”

요안나는 서 있는것 조차 힘들어 보이는 표정이었다.

“내가 형한테 얘기해 줄 테니까 좀 더 쉬어.

" “아니에요. 오늘 발표해야 되는데 가봐야 되요.”

“어차피 지금 가도 늦어. 그냥 쉬어.”

툭 내뱉는 내 말에 요안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는 얼굴을 들고 환을 보며 말했다.

“…제가 전화 할게요. 신경쓰지 마세요.”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에 환은 턱 하고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환은 푹 쉬라고 말하려다 그냥 돌아섰다.
방으로 들어와 환은 TV를 켰다.
TV에선 예능프로그램이 하고 있었다.
TV속 연예인들은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연신 웃어대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슬며시 입꼬리라도 올라갔겠지만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신경질적으로 TV를 끈 환은 침대에 몸을 눕혔다. 눈을 감았지만 거북하고 불편한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눈을 감은 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애를 쓰면 쓸수록 생각은 되려 마음속에서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핼쑥해진 얼굴, 기운 없는 목소리,
힘없이 떨리던 어깨,
날 보던 차가운 눈빛, 딱딱한 말투까지.....

걱정이 되는건지, 아니면 화가 나는건지 조차도 알 수 없었다.
다시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환은 감은 눈을 떴다.

“여보세요.”

“야 왜 전화 안해?”

“안나한테 전화 안왔어요?”

“왔지.”

“근데요.”

“근데요는 무슨. 내가 확인해보고 전화 하랬지.”

“안나가 전화 했다면서요. 그럼 됐잖아요.”

나도 모르게 날 선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새끼 이거 오늘 왜 이렇게 까칠해?
사춘기라도 왔냐?”

“아니에요. 끊을게요.”

“감기몸살인거 같다던데. 많이 안좋아 보이디?
말하는 거 들어보니까 많이 아픈 모양이던데.”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글쎄요는 이새끼야. 얼굴 보고 왔으면 알거 아냐. 또 홀랑 말만하고 그냥 왔어?
후배가 아프다는데 불쌍하지도 않냐?
부회장 씩이나 되는 놈이 애들한테 관심이 없냐
약도 못 먹었다니까 가서 약이라도 주고 와.”

“그걸 내가 왜요? 그리고 집에 약도 없어요.”

“야 이 인정머리 없는 새끼야.
그럼 약국 가서 사와. 나중에 확인한다?
그럼 끊는다.”

환이 뭐라 말할 새도 없이 희건은 전화를 끊었다. 환은 멍하니 앉아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방 안에 앉아 있어 봤자 머리만 복잡해 질 뿐이었다.
몸이 으슬으슬해 질 정도로 가을바람은 제법 차가워져 있었다.
환은 팔짱을 끼고 몸을 움츠린 채 약국으로 향했다.
약국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소독약 냄새, 알콜 냄새가 뒤섞인 약국 특유의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데스크에선 한 남자가 약을 사고 있었다.
환은 남자의 뒤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남자는 여러가지 약상자를 꼼꼼하게 살펴 보더니 약사에게 약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또 상자에 써 있는 설명을 다시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기다리는게 지루해지기 시작할 때 쯤에서야 남자는 지갑을 꺼내들었다.
약사는 데스크 위에 있는 약상자들을 전부 다 봉투에 넣었다.
어차피 다 살거면서 뭘 저렇게 고민을 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남자는 뒤를 돌아봤다. 짙은 눈썹에, 뚜렷한 이목구비, 깔끔하게 정동된 머리, 전형적인 미남의 얼굴이었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왠지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얼떨결에 같이 인사를 하고 나서 환은 우리가 구면인지를 생각해봤다.
그 사이 남자는 약국 문을 열고 나갔다.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봤지만 도통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감기약을 사고 집으로 향했다.
환은 되도록 천천히 걸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직도 방 안엔 텁텁한 기억의 잔재들이 둥둥 떠있을 걸 알았기에 환은 걷는다기 보다는 바람에 밀려난다고 하는게 맞을 정도로 천천히 걸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할 때 쯤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입구 앞에서 낯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아까 약국에서 봤던 그 남자였다.
남자는 장이라도 보고 온 건지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원룸 입구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이구나.
오다가다 마주치기도 했겠지.

환은 남자의 얼굴이 낯에 익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남자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오르면서 요안나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를 생각했다.
희건이 시켜서 약을 사왔다는 말이 제일 적당할 것 같았다.

먼저 계단을 오른 그 남자는 2층 복도로 들어갔다. 남자의 뒤를 따라 걷던 환은 그 자리에 멈춰섰다. 남자가 선 곳은 요안나가 살고 있는 방 앞이었다. 남자가 초인종을 누르고 문이 열렸다.
환은 자기도 모르게 계단 사이로 몸을 피했다. 문이 열리고 요안나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 남자의 얼굴을 본 요안나는 당황한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환하게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
그 웃는 얼굴을 보고 환은 그 남자가 낯이 익은 이유를 깨달았다.

그 남자를 본 건 학교에서였다.
가끔 요안나와 함께 수업을 들어가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꽤 친한사이인지 항상 웃으며 얘기를 나누던 걸 봤었던 기억이 났다.
남자가 방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혔다.
환은 덩그러니 서서 손에 든 약봉지와 닫힌 문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계단을 올랐다.
집에 들어 오고 나서 환은 그 남자의 정체에 대해 생각했다.

친구일까? 남자친구?
아니. 남자친구 였다면 전에도 본 적이 있었겠지.

문득 스스로에 대한 생소함이 느껴졌다.
평소의 환은 다른사람의 시시콜콜한 사생활을 가지고 고민할 만큼 오지랖이 넓은 인간이 아니었다.
상관 없다.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었다.
환은 봉투에서 약상자를 꺼내 찬장 위에 집어넣고 나서 침대 위에 걸터앉아 무릎을 만지작거렸다.
꽤 오래 찬바람을 맞으며 걸었지만 이상하게도 무릎은 시리지 않았다.
찬바람을 맞은 탓일까, 감기라도 온 것처럼 가슴 한 켠이 시큰거릴 뿐이었다.

댓글 3

한국타이어 · ☝****

읽기도 싫고 너무 길다 ㅋ

LG디스플레이 · 헬***

옹 필력좋아 재미써..근데 마음이 아프넹

인기 채용

더보기

토픽 베스트

썸·연애
암호화폐
스포츠
자녀교육·입시
회사생활
반려동물
군대이야기
게임
I'm솔로
유우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