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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후배들과 가요제 이야기

작성일2018.11.01. 조회수802 댓글5

#이야기

다른 쓰레기 후배들 에피소드는 #이야기

학교 축제가 얼마 남지 않았었다. 

난 우리과의 행사 준비위원장의 직책을 맡게 되었다. 

말이 좋아 준비위원장이지 하는 일은 노가다 십장과 다름 없었다. 

현수막을 걸고, 천막을 세우고, 필요한 물품들을 만드는 등,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직책이었다. 

그놈의 술이 웬수였다. 

형들, 친구들과 함께하는 술자리에서 단지 노가다판에 잘 어울리는 몽타주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준비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평소에 나서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뒤늦게 거절했지만 이미 늦어버린 후였다. 

대신 나는 한가지 요구조건을 제시했다. 그건 인사권 일체에 대한 권한이었다.

회장 형은 흔쾌히 나의 제시를 받아들였다. 

나는 철저하게 낙하산 인사를 실시했다. 

우리 집에 자주 오는 놈들 순위를 매겨서 위에서 부터 하나씩 추리기 시작했다. 

강당에서 첫 모임을 가졌을 때, 낯익은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불만에 가득 찬 얼굴들이었다. 후배 하나가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아 뭐에요. 형. 이거 꼭 해야 되요?"

"왜 하기 싫어?"

"당연하죠."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평소에 놀고 먹는 것 외에는 아무 일에도 관심 없는 

녀석들이기에 예상했던 일이었다. 

"굳이 억지로 하라는 건 아니고 하기 싫은 사람은 지금 빠져도 돼." 나는 인자한 얼굴로 말했다. 

"진짜요? 그럼 전 빠져도 되요?"

"저두요!"

"저도 안할래요!"

여기저기서 탈퇴를 원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그래? 알았어. 그럼 하기 싫은 사람들은 저기에다 이름 적고 나가면 돼."

"... 이름은 왜요?"

"글쎄.. 왤까?"

나는 연장통에서 망치를 꺼내 만지작 거리고, 현수막에 쓸 각목이 튼튼한 지 이리저리 확인하며 말했다. 

그러자 다들 갑자기 의욕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형! 저 열심히 할게요!"

"그냥 오늘 밤 샐까요?"

갑자기 다들 의욕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진심은 통하는 법이었다. 

우리는 일단 나가서 천막을 치기로 했다.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낀게 심상치가 않았다. 한참 천막을 치는데 아니나 다를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잽싸게 처마 밑으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후배들은 내리치는 비를 맞으며 계속 천막을 치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불만을 털어놓을 법도 한데 녀석들은 묵묵히 서서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언제 당할지 모르는 후두부에 대한 공포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궂은 날씨 속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후배들을 보며 가슴 한 켠이 뭉클해졌다. 나는 생각했다.

아.. 이게 권력의 맛이구나. 이래서 높으신 분들이 그렇게 기를 쓰고 어떻게든 한자리 해보려고 애를 쓰는구나. 

비를 피해 서서 저기 저 버러지들이 비에 젖은 생쥐꼴로 돌아다니는 걸 지켜볼 수 있게 해주는게 바로 권력이구나. 

앞으로도 용의 꼬리 대신 뱀의 대가리가 되야겠다. 기회가 올 때마다 충실하게 권력의 개가 되어야겠다. 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천막을 다 치고나서 나는 후배들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씻고 나서 술을 사다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후배 하나가 물었다. 

"형 축제 때 뭐할 거에요?"

"나? 그냥 주점에서 술이나 먹는거지 뭐."

난 평소에 축제에 충실하게 참여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낮에는 보통 집에서 쉬다가 느즈막히 나가 

주점에서 술이나 마시고 오는게 보통이었다. 

"형 우리 가요제 나가요!"

"가요제?"

"네! 상금이 30만원 이래요! 우리 같이 나갈려구요. 형도 같이 나가요."

"나? 글쎄다.."

녀석은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건 축제 가요제 참가신청서였다. 

종이를 받아들어 거기에 적힌 이름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다 아는 이름들이었고, 

다 노래방에 같이 가 본 이름들이었다. 그 이름들을 면면히 살펴보면서 나는 이대로 나가면 

상금은 커녕 개망신에다가 대학생활의 흑역사로 남을 게 뻔하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먼저 A. 

그렇게 듣기 싫은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묘하게 뽕삘이 있어 모든 노래를 트로트로 만드는 인물이었다. 

본인은 진성과 가성을 넘나드는 목소리의 소유자라고 주장했지만 그의 주장일 뿐. 듣는 사람에겐 

주먹질과 발길질 사이를 고민하게 만드는 실력의 소유자였다.

B. 

랩을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랩을 할 때마다 랩이 아니라 불경을 외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 노래방에 가면 부르는 이름이 MC달마 였다. 

C.

항상 락스피릿을 외치며 김경호나 김종서 혹은 외국의 락그룹 노래를 부르는데 되도 않는 초음파로 

듣는 사람을 항상 괴롭게 만든다. 외계인이 침공하지 않는 이상은 무대에 서지 않는게 옳다.

D.

그 때 한창 소몰이창법이 유행할 때 였는데 소 모는 수준이 알프스 목동 수준이었다. 

자기 말로는 소울이 충만해서 그러는 거라고 하는데 그 정도 소울이면 그에게 필요한 건 

가요제가 아니라 살풀이굿 이었다.

그렇게 천천히 이름들을 살펴보다 나는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내 이름이었다. 

"이 미친새끼들아. 내 이름은 왜 넣었어!"

"형도 같이 나가요."

"뒈지려면 니들끼리 뒈지지 난 왜!"

한참을 욱신각신 한 후에 나는 겨우 내 이름을 지울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녀석들은 그 때부터 매일 우리집에서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 불협화음은 도저히 들어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경찰에 신고할까 하다가 우리집이라서 참았다. 

나는 제발 돈을 줄테니 노래방에 가라고 사정을 했지만 녀석들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나는 스스로 집을 나가는 걸 택했다. 친구네 집에서 쫓겨나듯 피신해있다가 하루가 지난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녀석들은 아직도 집에 있었다. 

노래 연습을 하는 대신 녀석들은 머리를 모으고 뭔가를 골똘히 의논하고 있었다. 

"뭐하냐 니들?"

"팀몀 정해야죠."

아 팀명.. 녀석들은 팀명 성애자 들이었다. 평소에도 모여서 뭐만 하려고 치면 팀명부터 만들어야 한다며 나서는 

놈들이었다. 그 중에 제대로 된 팀명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냐.. 이번엔 또 뭔데?"

"아직 못정했어요."

녀석들은 한참동안 서로 의견을 주고 받더니 팀명을 지었는지 나에게 물었다. 

"형형. 이거 어때요?"

"뭐."

"포기를 모르고 노래하자! 줄여서 포르노!"

"... 보통 그러면 포모노라고 하지 않냐?"

그럼 그렇지.. 머릿속에 든 건 온통 똥뿐인 놈들이었다. 

그 외에도 음악에 경배를 줄여서 음경. 음악과 낭만. 음낭. 등등 온갖 주옥같은 팀명들이 쏟아져 나왔다. 

침대에 누워서 가만히 녀석들의 회의를 듣고 있던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목요일 어떠냐?"

"목요일이요? 그게 무슨 뜻인데요?"

"...그냥 갑자기 생각났어."

녀석들은 지들끼리 그 이름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목요일? 목숨걸고 요번 대회에서 일등을 하자? 이런 뜻인가?"

"글쎄.. 근데 좀 괜찮은 거 같은데? 뭔가 느낌있잖아."

"그렇게. 대학가요제 참가팀 같은 느낌인데?"

"좋다. 이걸로 하자 그럼."

녀석들의 팀명은 그렇게 '목요일'로 정해졌다. 

목요일은 쓰레기 수거하는 날이었다.

댓글 5

롯데로지스틱스 · N*******

와....🍯잼..... 횽 뭔가 가스파드의 선천적 얼간이들 보는 느낌이야. 더줘더줘~~~

기업은행 · 진**

이 필력과 흡입력 무엇?
잘읽었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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