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9년간 자라난 고아원은 전국에서 손꼽을만큼 규모가 있는 시설이었다. 당연히 여러명의 관리자가 있었고, 총원장 수녀님과 총대리 수녀님, 시설장 수녀님과 부원장 수녀님이 계셨다.

그 중에 총대리 수녀님은 총원장 수녀님을 대리하는, 내가 있던 지역의 원장수녀님이었다. 수녀모 슬라이 밑으로 까만 머리와 엄격한 가르마가 있었고, 입매가 모로 닫혀져 그 엄격함이 그대로 보이는 그 분은 공포의 상징이었다.

침방 수녀님들은 내내 아이들과 부대끼며 희노애락을 겪지만 원장수녀님은 차가운 흰색 사각벽의 사무실에서 상주하며 때로 올라오는 초특급 애물단지 아이들과 소수의 특별한 아이들을 관리했다. 우리 고아원에서 역사적으로 공부를 잘했던 나는 대체로 후자의 입장으로 원장 수녀님을 만났는데, 한번은 전자의 일로 원장 수녀님을 만났다. 수산나 수녀님이 나를 버리고 공개훈시를 당했던 그 때였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대학 입시 때의 악몽을 기억한다. 어느날, 나는 한밤 중에 자다가 원장수녀님의 뜬끔없는 전화를 받았다. 정시 원서를 쓰고 합격발표일이 하루 전날로 다가온 때였다. 수녀님은 대학 합격 문자를 받았는데 너는 어찌 전화를 하지않았냐고 노발대발하며 꾸짖으셨다. 나는 내 합격 사실을 그 전화로 알았고, 대학에서 합격여부를 좀더 빨리 알리며 동시에 학부모 문자를 보낸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 때에 느낀건 실망감이 아니라 그러려니하는 마음이었다. 원장수녀님은 단 한번도 나를 격려하거나 애정이 담긴 말을 해주는 적이 없었다. 질책과 수긍이 우리 사이의 전부였고 그로 인해 그 분은 내게 악몽이 되었다.

시설을 퇴소하고 나는 종종 꿈을 꾸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보거나 하고 싶은 것을 하는 행복한 무지개빛 꿈을 겪을 때, 별안간 원장 수녀님이 등장하고 나는 노스트라무스의 예언을 듣는 사람처럼 절망감에 휩싸여 꿈에 깨었다.

무섭고 슬픈 죄책감에 눌려 매번 도망치는 것이 전부였다. 그게 강산이 변할만큼 오래되었다.

어느 순간 나는 꿈에서 원장 수녀님을 오래 보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벼락치듯 그 사실을 깨달은 그날, 놀랍게도 원장 수녀님이 꿈에 나타났다. 수녀모 슬라이 밑의 머리가 하얗게 센 모습이었다. 나는 공포에 떨 준비를 하다가 별안간 그것을 발견하고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것이 어떤 감정이었는가? 나는 그 안타깝고 괴로운 감정을 뭐라고 부를지 몰랐다. 꿈에 깨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 울었다. 애증이라는 감정을 그 때 알았다..

#고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