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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엄마가 있는 애를 만난 적이 있었다.

삼성SDS · 그********
작성일2022.02.05. 조회수1,173 댓글13

나는 수녀원이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났다. 아주 오래 전에 정신차려보니 내 주변에는 금방 나를 떠나보낼 보모와 나를 울게 만들 형제 자매들이 있었다. 그 어떤 사람이든 내 가족이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고아원 아이가 처음 맞닥뜨리는 차가운 현실은 초등학생 때 일어난다. 처음보는 아이들, 처음보는 콘크리트 시설건물, 처음보는 수녀님들의 시선, 처음 겪는 고아원의 하루 일과. 매일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아침기도를 하고, 일곱시쯤 식빵배식을 받고 매일 먹는 뻑뻑한 빵과 우유를 겨우 삼키고 시작하는 하루.

가끔씩 너무 먹기 싫어 빵을 뭉쳐서 버리다가 들켜서 혼나는 애들을 보면서 등교를 하고, 하교를 하면 늘상 있는 운동장돌기와 단체목욕이 있었다.

그리고 저녁밥을 먹고 잠시 tv시청을 하다가 묵주기도를 하고, 학교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었다. 묵주기도 시간 이후의 저녁 시간은 침묵시간이라 떠들면 안되었다. 평일은 예외없이 이런 엄격한 일과 시간을 지켜야만했다. 이런 일과에서의 예외는 성탄절이나 성모승천대축일과 같은 날과 주말에만 허용되었다.

그래서 나는 초, 중, 고등 학교 수학 기간을 통틀어 고아원생이 아닌 내 또래 아이를 만날일이 없었다. 그것은 오히려 다행이었다. 나는 내 성장기에 고아가 아닌 내 모습을 상상할 길이 없었다. 그 시절의 내 세상에서 부모라는 것을 단어가 아닌 존재로 느낄 일이 없었다는게 어린 나의 행운이었고 지금의 나의 슬픔이었다.

그런데 그 때 나는 엄마가 있는 애를 만난 적이 있었다. 벌써 십수년도 지난 일이었고 그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지나면 지날 수록 생생해지는 이상한 기억이었다. 누구도 공감하지 못할 것 같아 이렇게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세우고 한번 토로해본다.

우리 시설을 운영하는 수녀원은 저소득층을 위한 병원을 함께 운영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접근성도 좋지 않은 오르막길 끝자락에 세워진 건물에, 맘씨좋은 자원봉사자 의사들로 겨우 운영되는 병원이었는데 매일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발걸음으로 용케 절정 만원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병원에 우리 또래 아이를 데리고 오는 사람은 드물었는데(어쩌면 바로 옆에 있는 고아원 건물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느날, 나는 우리 병원을 찾은 사람의 아이가 홀로 병원 앞의 놀이터 그네에서 놀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엄청나게 드문 확률의 부딪힘으로 발생한 만남이었다. 첫째, 그 날은 혹독한 고아원 규칙이 허용했던 홀로 놀이터 접근이 가능한 토요일이었고, 둘째, 겁없이 아이를 고아원 근처의 놀이터에 두고 진료를 받으러간 간이 큰 부모가 있었다.

너무 드문 확률이었기에 나는 같이 자란 고아원 동기 외의 아이를 처음 만나 말을 더듬었다. 급기야는 내가 자리를 피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휩싸였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그 애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추운 날씨에 잠바를 입고 쾌활한 웃음을 짓고, 머리는 양갈래로 묶고 그네를 타고 있었다. 나를 보고 처음 한 말은 '너 여기 사는 애야?'

그 애가 내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 놀랐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가 온누리 교회를 다녀서 같이 다닌다는 그 애는 내게 너는 마리아를 믿느냐고 물었는데, 나는 왜 갑자기 내가 무얼 믿는 걸 묻는지 궁금했지만 아무것도 안믿는다고 대답했다.

얼마인가 같이 그네를 탔었는데 어느새 온누리 교회를 다닌다는 그 애의 엄마가 진료를 마치고 병원 밖을 나왔나보다. 그 애는 야, 엄마 왔다, 하면서 날 손바닥으로 치고는 뛰어갔다. 멀리 점점히 있는 어른들 중에 누가 그 애의 엄마인지 알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그 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오래 전 엄마가 있는 애를 만난 적이 있었다. 가끔씩 기억나는 순간이었다. 그 때 그 애를 만나서 즐거웠었다. 그렇지만 그 애를 아주 잠깐 만나서 다행이었다.

#고아원

댓글 13

에스아이티 · 집*********

실화임?? 고생많았어 , 앞으로는 꽃길걸을거야

새회사 · l***

내가 아는 그 형이 맞나? 씩씩하게 잘 살구 있지?

우리은행 · i*********

잘 살아주고 계셔서 감사합니다. :) 화잇팅!!

경찰청 · i*********

그동안 고생 많았어!!! 네 기도 하느님께서 다 들어주셨을거야. 행복한 가정 꾸려 나가길 바래!!

한국수력원자력 · 망**

뭔가 커서 이런글을 보니 수녀님들이 대단하신분인것 같기도하다

국방부 · :**

올해 글 쓴거 이제 봤네
이따금씩 글이 생각나요

우리은행 · i******

사회밖 사람을 만난게 충격이었구나 나도 비슷한 부산 모 아동복지시설에서 자란 지인이 있어서 비슷한 얘길 몇 번 들었어 그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학교 병원 등에 다녀서 바깥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잘 없다는 얘기 그리고 그 안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고됐는지 들었는데 다행히 내 지인들도 그리고 쓰니도 어른으로 잘 성장한 거 같아 글 잘 읽었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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